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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ESC] 삼겹살 구이, 베를린의 솔푸드로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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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예술가의 도시이자 최근 가장 힙한 클럽 문화의 중심지, 독일 베를린. 유럽 최대 규모의 ‘베를린 국제 가전박람회’(IFA)가 열리는 매년 9월마다 전세계의 언어가 한군데에서 뒤섞이는 진풍경을 마주치게 되는 도시다. 지난달 28일부터 일주일간 ‘아이에프에이’ 취재차 베를린에 머물렀다. 일이 끝난 시간에는 소시지와 맥주의 나라이자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객이 가장 사랑하는 도시 베를린의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을 찾아 나섰다.

베를린의 트렌드를 만나고 싶다면 무조건 방문해야 하는 곳이라는 디제이(DJ) 친구의 말에 의심의 여지없이 ‘중앙’이라는 뜻의 ‘미테’(Mitte) 지구로 향했다. 서울의 경리단길과 청담동을 합친 듯, 수더분한 구멍가게와 세련된 편집숍이 한데 섞인 분위기가 묘했다. 해가 중천인 오후 3시, 머리에 구멍이라도 낼 듯한 더위를 피해 일단 어디로든 들어가고 보자 싶어 고개를 들었더니 익숙한 한국어가 보였다. ‘미테 지구에서 길을 잃으면 가운데에 위치한 식당 ‘고고기’의 위치만 파악하면 된다’고 말했던 현지인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힙스터의 동네 한복판에서 한식 고기구이를 판다고? 미심쩍은 마음으로 발을 들여놓자마자 ‘베를리너’(베를린 거주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결을 알게 됐다. 한옥 구조를 본떠 만든 실내에 전통 자개 무늬가 새겨진 테이블과 반상이 가득한데, 그 자체로 세련되고 이국적이었다. 구운 삼겹살이나 달콤하고 짭조름한 불고기는 실패하기 힘든 ‘불멸의 성공 아이템’이니 음식에 대한 또 다른 기대도 솟아올랐다.

자리에 앉으면 각종 나물과 정갈하게 썰어낸 김치, 한국에서나 보던 상추쌈이 상에 오른다. 소시지와 생햄, 치즈도 조금은 지겨워지는 찰나, 널찍한 돌로 만든 불판에 구워 나오는 ‘삼겹 고기’와 김치찌개를 주문했다. 소주도 좋겠지만 베를린에 왔으니 화이트 와인 리슬링 한 잔 곁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잔 홀짝이는데 드디어 등장하는 고기! 홀린 듯 쌈을 집어 들고 삼겹살 두 점과 김치까지 야무지게 쌓아 입에 밀어 넣었다. 특별할 것도 없는 고기구이라고 생각했던 스스로를 책망하게 만드는, 놀라운 감칠맛이었다. ‘역시 한국인은 밥심이지’ 되뇌며 ‘베를리너 바이세’(Berliner Weiße. 베를린에서만 양조하는 맥주의 한 종류) 한 잔 추가한 뒤 호기롭게 공기 밥도 주문했다. 삼겹살 얹어 밥 한 숟가락, 이어 김치찌개 한 숟가락 떠먹으면 맵고 짜고 자극적인 그 맛에 온몸이 반응했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먹는 한식의 새삼스러운 맛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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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도 채웠겠다, 저녁까지는 시간도 남았으니 소화도 시킬 겸 길 위쪽으로 슬슬 걸어 올라갔다. 오후 4시부터 문을 여는 비어 가든에 앉아 알트 맥주와 베를린 스타우트를 한 잔씩 시켜 동료와 노닥거리다 보면 어느새 해 질 녘. ‘베를린은 하늘색도 예쁘지, 한국 가기 싫다’ 농담을 주고받다 빚쟁이처럼 몰려드는 허기를 채우러 길을 다시 나섰다. 돌아가는 날까지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마셔야지. 초가을의 베를린을 내 배에 가득 담아 가야지.

백문영(<럭셔리> 라이프 스타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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