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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배달 중개업체 '갑질'에 영세 꽃집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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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개 화원 10억 떼여, 유사사건 흔해…네트워크 없는 화원들, 울며 겨자먹기 계약]

머니투데이

/삽화=임종철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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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에서 작은 화원을 운영하는 정모씨(49)는 지난해 1000만원 가까이 꽃값을 떼였다. 손님에게 받은 돈을 수수료만 남기고 주겠다던 A 꽃배달중개업체 사장 박모씨(36)가 대금 지급을 미루더니 결국 돈이 없다고 소위 '배째라' 식으로 나왔다.

13일 부산해운대경찰서에 따르면 박씨가 거래처 화원들에게 제때 지급하지 못한 대금은 10억원이 넘는다. 이는 박씨를 고소한 화원 55곳을 기준으로 한 금액으로 고소하지 않은 피해자 70여곳까지 감안하면 총 미지급금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A 업체는 인터넷과 전화로 꽃배달 주문을 받는다. 방송과 인터넷 광고로 손님을 모으고 접수한 주문은 전국 회원사(거래 화원)에게 넘긴다. 판매금의 15~30%는 수수료로 남기고 나머지를 정산해 회원사에게 차후 지급하는 식으로 운영한다.

박씨는 2015년 1월부터 총 3개 브랜드의 꽃배달 중개업체를 경영하다가 대금 미지급으로 경찰 수사를 받았다. 결국 지난달 경찰은 박씨를 사기 혐의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박씨는 다른 사업 관련 특수공갈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박씨의 통장계좌 내역 등을 조사한 결과 꽃배달 서비스로 거둔 수익을 박씨가 운영하는 다른 사업에 투자하느라 정작 대금을 받아야 하는 거래 화원들에게는 돈을 주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화원업계에 따르면 A 업체 같은 중개업체의 대금 미지급 사건은 비일비재하다. 그 위험성을 알면서도 화원들이 당하는 이유는 '꽃'이란 제품 특성 때문이다. 예컨대 '부산으로 꽃을 배달해달라'고 서울 꽃집에 주문하면 서울이 아니라 부산에 있는 꽃집에 대신 물건을 보내달라고 연결해야 장사가 된다.

영세 화원이 단독으로 지역별로 이런 연계 화원을 만들고 장사를 하긴 어렵다. 화원에게는 중개업체가 그 해결방법인 셈이다. TV·인터넷 광고로 손님을 모아 규모를 키운 중개업체들은 그 영향력을 내세워 회원(화원)을 모집한다. A 업체 역시 전국 400개가 넘는 회원을 회원사로 보유했다.

장은옥 한국화훼장식기사협회 부회장은 "대중에게 홍보를 많이 하는 중개업체에 주문이 많이 들어오니 가입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여러 중개업체에 가입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영세 화원들로서는 '이번에는 사기가 아니겠지'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중개업체 대금 미지급 사건들은 유사한 과정을 거친다. 계약 초반에는 대금을 제때 준다. 그러다 3~5개월씩 연체했다가 갚는 경우가 많아지고 마침내 부도를 낸다. 규모가 큰 중개업체가 갑의 위치가 되면서 대금이 밀려도 제때 지급을 요구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업계 종사자들은 법적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씨는 "활발한 온라인 중개사업에 비해 피해 보상체계나 안전장치가 없어 '을'(乙)은 항상 피해를 당한다"며 "에스크로(제3자 결제 대금 예치)를 의무화하는 등 법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민사소송 외에 뾰족한 수가 없다. 경찰 관계자는 "사기 혐의로 처벌은 하지만 피해업체가 돈을 돌려받기는 사실 어렵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화훼산업 정책을 담당하는 농림축산식품부도 이와 관련 다른 (피해 예방) 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입장이다. 중개업체를 이용하는 이런 거래 방식이 기존 프랜차이즈나 하청 관계와 달라서 적용할 법률도 마땅치 않다.

공정위 관계자는 "거래관계 구조에 따라 법 적용이 달라 계약 내용을 파악해야 거래상 지위를 남용하는지 등을 판단할 수 있다"며 "아직 관련 신고가 들어온 것이 없다"고 말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화원협회 등을 통해 보호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권장하고 교육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진달래 기자 aza@, 방윤영 기자 by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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