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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식품박물관]辛고집, 세계인의 맛 사로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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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호 회장 “매운 라면이니까 ‘신라면’”

매운 맛의 비결은 고춧가루, 마늘, 생강

시장서 ‘행(幸)’라면, ‘푸’라면으로 혼동도

‘식품업계의 반도체’ 글로벌 라면으로 성장

이데일리

[이데일리 강신우 기자] “매운 라면이니까 ‘辛(매울 신)’ 라면으로 합시다.”

◇‘식품위생법’ 개정 끝에 신라면 상표명 획득

1986년. 그러니까 신라면이 세상에 나오기 직전 신춘호 농심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경영진은 반대했다. 한자를 상품명으로 쓴 전례도 없었고 당시 브랜드 제품은 대부분 회사명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발음이 편리하고 ‘매운라면’이라는 제품속성이 분명히 드러난 데다 한자를 사용해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그래서 탄생한 이름이 ‘辛라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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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이 많았다. 당시 식품위생법상 상품명은 한글로 해야 하고 외국어 병기 땐 한글표시보다 크게 할 수 없었다. ‘辛’이 라면보다 크게 표기되는 신라면은 이 법에 걸렸다. 신 회장은 이해할 수 없었다. 수천 년간 한자문화권인 한국에서 한자를 외국어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한지, 즉각적인 의미전달과 이미지 부각이 생명인 상품명에서 한글보다 한자를 크게 쓸 수 없다는 규정이 합리적인지 반론을 제기했다. 불필요한 규제가 식품산업을 저해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결국 보건사회부(保健社會部·현 보건복지부)에서 농심의 건의를 받아들여 1988년 10월 법 조항을 개정했다. 이후 신라면은 농심의 단독 상표명으로 등록됐다.

◇매운 맛의 비밀은 일명 ‘다데기’

신라면은 신 회장의 라면철학을 집대성한 제품으로 꼽힌다. 신라면의 매운 맛의 비밀은 무엇일까. 소고기의 깊은 맛과 고춧가루의 얼큰한 맛이 조화를 이룬 ‘매운 맛’, 이 맛을 찾기 위해 신라면 개발팀은 신 회장의 지시에 따라 전국서 재배되는 모든 품종의 고추를 사들여 실험했다. 위장을 혹사해 가며 하루 20번이 넘게 매운 국물을 마시며 스프 개발에 몰두했지만 번번이 실패. 어느 날 개발팀에서 나온 작은 아이디어가 없었다면 신라면은 세상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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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렁탕 등에 넣어 먹는 일명 ‘다데기’다. 얼큰한 맛을 내는 데 쓰는 양념의 하나로 고춧가루와 마늘, 생강 등의 재료를 적절히 배합해 만든다. 여기서 착안해 개발한 것이 신라면 스프다. “하루에 평균 3봉지 정도의 라면을 매일 먹어가며 초시계로 시간을 재고 비커와 온도계로 물의 양과 온도를 정확히 측정해 가면서 맛을 판단해야 했다.”(신라면 개발팀 A연구원) 스프만으로는 승부수를 띄울 수 없었다. 쫄깃하면서도 부드럽게 넘어가는 면발을 위해 200여 종류가 넘는 면을 만들어 테스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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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맛과 매운맛이 조화를 이룬 얼큰한 감칠맛을 가진 라면. 이렇게 해서 세상으로 나온 것이 농심 ‘신라면’이다. 당시 개발팀은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지만 어디에 내놓아도 자신있는 제품이었다”고 말했다.

신라면이 출시되자마자 매출은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다. 출시 이후 석 달 동안에만 30억원에 육박하는 판매고를 시작으로 이듬해에는 180억원을 웃도는 매출을 올리며 국내 라면시장의 대표 주자로 뛰어 올랐다. 신라면이 인기 반열에 오르자 이름에 얽힌 에피소드도 많다. 한자 ‘辛(매울 신)’ 자를 ‘幸(다닐 행)’자로 혼동해 “행라면 주세요”라고 하거나 한자를 모르는 이들은 ‘푸라면’으로 통했다.

“농심 브랜드 그대로 나가 ‘한국의 맛’을 알려야 한다.” 매운 맛에 익숙하지 않은 미국인에게 신라면을 판다는 것은 큰 모험이었다. 그러나 신 회장의 이른바 ‘매운 맛’에 대한 철학은 해외서도 통했다. 한국 식품 최초로 미국 전역 4692개 월마트(Wal-Mart) 전 점포에 입점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현재 미 국방부와 국회의사당 등에서 라면류로는 처음이자 유일하게 판매되는 라면 역시 신라면이다.

◇“국민을 위해 라면을 만들었다”

신라면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신 회장이 ‘맛있는 라면’에 대한 고집 때문이다. 신 회장의 라면 사랑은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서 회장은 자신의 장인인 신 회장에게 농심 창립 50주년 기념식에 맞춰 ‘라면 조각상’을 선물했다. 서 회장이 농심의 성장동력이었던 라면을 조각물로 만들어 장인에게 존경의 뜻을 표시한 것. 서울 대방동 농심 본사에 있는 이 조각상은 김병호 작가의 작품으로 너비 3m, 높이 4m의 라면 모양으로 만들어 졌다.

신 회장은 “맛있는 라면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평생을 라면과 살았다. 그는 지인들에게 “나는 서민을 위해 라면을 만든 적이 없다. 라면은 서민만 먹는 것이 아니다. 국민을 위해 라면을 만들었다”는 말을 자주 하곤했다. 신동원 부회장은 “1982년 업계 최초로 안성에 스프전문공장을 세울 정도로 라면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며 “국민이 먹는 라면이라는 신 회장의 말처럼 고품질을 지향했고 이후 신라면과 너구리 등의 제품이 계속 출시되면서 농심의 성장을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신라면, 전세계 ‘민간외교관’ 역할 톡톡

신라면은 연간 국내·외에서 약 6000억원치가 팔리며 식품한류 신화를 다시 쓰고 있다. 어느덧 사나이 울리는 라면에서 세계인을 울리는 글로벌 라면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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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게는 일본, 중국에서부터 유럽의 지붕인 스위스 융프라우 정상, 중동 및 그동안 수출실적이 없던 이슬람국가, 네팔 히말라야 트래킹 코스, 지구 최남단 칠레 푼타 아레나스까지 세계 방방곡곡에서 ‘민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유럽 알프스 최고봉, 해발 4000m가 넘는 스위스 ‘융프라우(Jungfrau)’. 이곳 전망대 매점에는 신라면컵을 팔고 있다. 유럽의 지붕 융프라우가 신라면의 이름과 맛을 알리는 지구상 가장 높은 농심의 교두보인 셈이다.

지구 최남단에는 ‘신라면집’이라고 불리는 라면가게도 있다. 남미 칠레 남쪽 끝 마젤란 해협에 있는 인구 12만의 도시 ‘푼타 아레나스(Punta Arenas)’. 아르헨티나의 우슈아이아와 더불어 지구 최남단 도시 타이틀을 달고 다니며 남극으로 가는 관문인 이곳에 한글로 ‘辛라면’ 간판을 단 라면가게 ‘신라면집’이 자리 잡고 있다. 칠레를 여행하는 한국 관광객들이 주로 다녀가면서 자연스레 붙여진 이름이다.

신 회장은 “단순 소박하나 정직하고 인정이 넘치는 마음,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농사를 짓는 겸허한 마음으로 기업을 운영하겠다는 생각은 내가 지난 반세기 동안 회사를 이끌어 오면서 지키려고 애쓴 철학이었다”며 “그런 정신이 있었기에 세상이 바뀌어도 끊임 없이 새로운 트렌드를 창조하며 식품문화를 이끌 수 있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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