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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플라스틱을 名品으로 만드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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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가구의 원조 '카르텔' 클라우디오 루티 회장 방한]

패션 브랜드 최고경영자 출신… '카르텔' 세계 가구 名家로 키워

유리처럼 투명한 플라스틱 의자, 경찰 시위 진압용 방패서 착안

"명품의 조건은 가격 아닌 품질"

"값비싼 물건이어야 명품이라는 생각에 반대합니다. 명품이란 질 좋은 물건에 어울리는 말이고, 그런 의미에서 플라스틱도 충분히 명품이 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가구 회사 카르텔(Kartell)의 클라우디오 루티(71) 회장이 13일 서울 한남동 디뮤지엄에 전시된 자사 제품들을 살펴보며 말했다. 1949년 창업한 카르텔은 세계 최초 플라스틱 의자(1964)를 만든 플라스틱 가구의 원조다. 루티 회장은 디뮤지엄에서 14일 개막하는 '플라스틱 판타스틱: 상상 사용법' 전시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20세기 기적의 소재' 플라스틱의 예술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리로, 에토레 소트사스나 알레산드로 멘디니 같은 세계적 디자이너들의 작품과 함께 카르텔 제품도 다수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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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서울 한남동 디뮤지엄에 전시된 카르텔의 의자 ‘엉클 짐’에 앉은 클라우디오 루티 회장. 폴리카보네이트 소재를 사용한 디자이너 필립 스탁의 2004년작으로 가격은 421유로(약 57만원)다. /장련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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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티 회장은 1988년 카르텔 수장이 되기 전까지 고급 의류업체 베르사체 최고경영자를 10년간 지냈다. 그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경영인이지만, 오늘날 카르텔을 세계 디자인계 명가(名家)로 키운 주인공으로 평가받는다. 필립 스탁, 론 아라드 같은 스타 산업디자이너들과 적극 협업하는 전략으로 200만개 이상 팔린 의자 '루이 고스트' 등 히트 상품을 잇따라 선보였다. 루티 회장은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성"이라며 "창의성을 위해선 디자이너가 자유로워야 하고 회사에 매여 있으면 불리하다"고 말했다.

루티 회장은 "베르사체 시절부터 여러 차례 한국에 왔지만 늘 백화점과 매장만 둘러봤다"면서 "미술관에 전시된 제품을 보니 새로운 기분"이라고 말했다. 전시장에는 카르텔 제품들로만 구성된 방도 있다. 그중에서도 유리처럼 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플라스틱의 일종) 의자가 주를 이룬다. 등받이 없는 스툴부터 2명이 앉을 수 있는 소파까지 다양하다. 최초의 투명 폴리카보네이트 의자 '라 마리'(1999)는 공개 당시 고객들이 약해 보인다며 앉기를 꺼리자 디자이너 필립 스탁이 직접 망치로 두드려 보이며 안심시켰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폴리카보네이트로 가구를 만드는 아이디어는 경찰의 투명하면서도 단단한 시위 진압용 방패를 보며 착안한 것입니다. 가구용으로 투명도가 더 높은 소재를 개발하는 데 1년 반이 걸렸죠. 투명한 플라스틱은 유행을 타지 않고, 어떤 스타일이나 소재와도 잘 어울린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루티 회장은 "플라스틱의 매력 중 하나는 가격이 합리적이라는 점"이라면서도 플라스틱은 값싼 소재라는 일반적 인식에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폴리카보네이트는 기존의 폴리프로필렌보다 세 배나 비싸다"면서 "그런데도 그 소재를 쓰는 것은 그만큼 품질이 좋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리섬유를 함유한 초경량 플라스틱 같은 신소재를 디자이너와 함께 계속 연구합니다. 가격이 합리적인 건 플라스틱이 싸구려여서가 아니라 수공예에 의존하지 않고 대량생산을 하기 때문이지요. 그게 산업디자인의 본질입니다."

[채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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