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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빌딩에 충돌하는 박쥐,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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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막스플랑크 연구소




영화에서는 배트맨이 한밤중에 박쥐 떼를 이끌고 빌딩 숲에 나타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럴 수 없다. 박쥐는 고층 빌딩 외벽을 둘러싼 창유리를 감지하지 못하고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독일 막스플랑크 조류학연구소의 스테판 그레이프 박사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최신호에서 "박쥐는 창유리처럼 매끈한 수직 물체에 대해서는 초음파를 이용한 위치 확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빌딩에 충돌한다"고 밝혔다.

박쥐나 돌고래는 자신이 낸 소리가 물체에 부딪혔다가 돌아오는 반사파를 감지해 위치를 파악한다. 메아리로 길을 잡는 이른바 반향정위(反響定位·echolocation)이다.

연구진은 실험실에 인공 터널을 만들고 자연에서 생포한 큰생쥐귀박쥐〈사진〉 21마리를 풀어놓았다. 한쪽 면에는 창유리처럼 매끈한 금속판을 수직으로 세웠다. 착시(錯視) 효과를 배제하기 위해 완전한 암흑 속에서 실험했다. 박쥐 21마리 중 19마리가 최소한 한 차례 이상 금속판에 충돌했다.

연구진은 표면이 거친 물체는 초음파 일부를 박쥐에게 다시 반사하지만, 금속판이나 창유리는 완전한 평면에 가까워 초음파가 대부분 들어온 쪽과 다른 방향으로 반사된다고 설명했다. 결국 박쥐는 빌딩을 허공으로 여기고 돌진하다가 충돌한다는 것. 박쥐는 금속판에 근접해 수직으로 반사된 초음파를 감지하고서야 급선회할 수 있었다.

그레이프 박사는 "멸종 위기 박쥐가 사는 곳 근처의 빌딩에서는 충돌 방지를 위해 초음파 소음을 발생시켜 위치를 알려줄 필요가 있다"며 "외벽에 덜 매끈한 재료를 쓰는 방법도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만약 창유리가 수평으로 있다면 어떻게 될까. 연구진은 2010년 박쥐가 수평으로 놓인 유리로 하강해 마치 물을 마시는 듯한 행동을 하는 것을 관찰했다. 수평 물체에서 초음파가 멀리 반사돼 사라지는 곳은 자연에서 호수나 연못과 같은 수면이기 때문이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yw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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