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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떠나는 아이짱, 골프 실력 그 이상 특별한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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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토 아이, 에비앙 끝으로 은퇴

우즈 들러리 세운 일본의 국민 스타

미국 진출 후 거리 늘리려다 슬럼프

그래도 항상 웃음 잃지 않고 경기

동료들 모두 “가장 마음 좋은 친구”

LPGA 9승에 세계 1위 오르기도

이번에 우승 못하면 메이저 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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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토 아이는 두차례 우승했던 에비앙에서 마지막 라운드를 치른다. 4세 때 골프를 시작한 그는 LPGA 투어에서 9승을 거뒀지만 메이저 대회에선 아직 우승하지 못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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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일본프로골프투어 던롭 피닉스 토너먼트는 거액의 돈을 주고 타이거 우즈(미국)를 초청했다. 당시 일본 기자들이 우즈에게 가장 궁금한 건 우즈가 아니었다. 일본 기자들은 기자회견장에서 우즈에게 10대 여자골퍼인 미야자토 아이(32·사진)에 관해 물었다. 다음날 일본 스포츠신문에는 “우즈도 아이짱(미야자토 아이의 별명)을 높이 평가한다”는 등의 기사가 실렸다. 당시 일본 투어 신인 미야자토는 전성기의 타이거 우즈를 들러리 세울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우즈와 비슷한 점도 있었다. 미야자토의 프로 전향 발표를 일본의 방송사들이 생중계했다. 위축되던 일본 여자프로골프 투어는 미야자토 덕분에 반등했다. 새로운 대회가 생겨나고, 상금도 늘었다. 우즈의 빨간색 셔츠처럼 미야자토 아이는 무릎까지 오는 양말을 유행시켰다.

일본의 골프용품 회사들은 ‘아이짱’ 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했다. 브리지스톤은 그의 두 오빠(키요시, 유사쿠)도 함께 계약하는 조건으로 아이짱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일본여자프로골프투어에 데뷔한 미야자토는 그해 5승, 이듬해 6승을 거둔 뒤 미국 진출을 선언했다.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투어 퀄리파잉스쿨에서 12타 차로 우승했다.

그러나 미국에 가서는 잘 안됐다. 거리를 늘리고 구질을 바꾸려다 드라이버 입스에 걸렸다. 미야자토는 한국의 신지애(29)를 보고 힌트를 얻어 슬럼프에서 벗어났다. 샷 거리가 길지 않은 신지애가 성공하니 자신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장기인 쇼트게임을 다시 갈고 닦으면서 본래의 모습을 찾았다.

2010년 5승을 거두면서 세계랭킹 1위에 올랐지만 2013년부터는 또 부진했다. 2010년 미야자토는 퍼트 1등이었는데 2014년엔 138위로 거의 꼴찌였다. 미야자토의 퍼터가 망가진 이유는 신기의 퍼트로 LPGA 투어를 휘어잡은 박인비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미야자토 아이가 이번 주 에비앙 챔피언십을 마지막으로 은퇴한다. 일본에서 수퍼스타로 군림하다 미국으로 건너간 뒤엔 굴곡이 많았다. 그러나 미야자토는 항상 웃었고 주위 사람들을 기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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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토 아이는 두차례 우승했던 에비앙에서 마지막 라운드를 치른다. 4세 때 골프를 시작한 그는 LPGA 투어에서 9승을 거뒀지만 메이저 대회에선 아직 우승하지 못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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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못하던 2006년 동료들이 저녁식사에 초대하자 사전을 가지고 나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미야자토는 로레나 오초아(멕시코)와 더불어 LPGA 투어의 천사로 불렸다. 오초아는 은퇴 경기에 “가장 좋은 친구”라면서 미야자토를 찍어 함께 경기했다. LPGA 커미셔너 마이크 완은 “지구상에서 미야자토 아이처럼 좋은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기자에겐 라운드를 마친 뒤 성적이 나빠도 일본 기자들에게 매 홀 상황을 친절하게 설명하던 미야자토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미야자토에 이어 2위를 한 적이 있는 허미정(28)은 “미야자토를 나쁘게 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중학교 1학년 때 주니어 한·일전에서 만났을 때 나에게 일본어 숫자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가장 멋진 선수가 투어를 떠난다”고 아쉬워했다.

캐디와의 우정도 본받을 만하다. 그는 LPGA투어 12년 동안 마이크 시본이라는 캐디와 함께 했다. 지옥 같다는 드라이버 입스, 퍼트 입스를 다 함께 겪어냈다. 2010년 미야자토가 5승을 했을 때 상금왕은 최나연, 올해의 선수상은 청야니가 차지했다. 당시 미야자토는 “올해의 캐디는 마이크”라고 했고, 그 캐디는 “내 마음의 올해의 선수는 미야자토”라고 했다.

1985년생인 미야자토는 한국 선수들, 특히 막강한 88년생 선수들과 활동시기가 겹친다. 미국에서는 박인비·신지애·최나연 등과 경쟁하면서 영향을 주고받았다. 이보미·김하늘 등은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뒀는데 미야자토로 인해 투어가 커진 덕도 봤다고 생각된다.

은퇴무대인 에비앙과 미야자토의 인연은 깊다. 그가 첫 우승을 한 곳, 또 유일하게 두 번 우승한 곳이 알프스에 있는 에비앙이다. 미야자토가 우승한 대회는 에비앙 마스터스다. 2013년 메이저 대회로 승격되면서 에비앙 챔피언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미야자토는 에비앙 챔피언십에서는 챔피언이 되지 못했다. LPGA 9승을 했지만 메이저 우승은 없다. 은퇴 경기에서 우승을 못한다면 메이저 무관의 여왕으로 남게된다. 아직 기회는 있지만 세계랭킹 106위로 밀린 미야자토의 우승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래도 1m55cm의 작은 키로, 한 없이 느린 템포의 스윙으로 세계 최고와 겨뤘던,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미야자토의 마지막에 박수를 보낸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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