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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 “태극마크 달고 뛴다면, 단 1분이라도 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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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실핏줄 터진 축구대표팀 맏형

은퇴할 나이에 드라마 같은 복귀

해피엔딩 될 수 있다는 생각도

9개월 뒤 본선, 내겐 너무 먼 미래

항상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경기

황선홍 선배처럼 불운 날리고

활짝 웃으며 월드컵 마무리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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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은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펴고 “알로하”라고 외치는 하와이식 인사를 했다. 대표팀에서 골을 넣으면 미스 하와이 출신인 부인 이수진(38) 씨와 아이들을 위해 꼭 하고 싶은 세리머니다. [프리랜서 오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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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잠에서 깬 기분이다. 괜찮은 꿈을 꾼 것 같은데,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그런 꿈….”

2년 10개월 만에 축구대표팀에 발탁돼 18일간 모든 걸 쏟아부은 이동국(38·전북)의 소감이다. 13일 전북 완주의 전북현대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그는 왼쪽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팀의 맏형이라는 중압감에 눈의 실핏줄이 터졌는데, 그 여파가 아직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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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전북 완주의 전북현대 클럽하우스에서 만난이동국은 왼쪽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팀의 맏형이라는 중압감에 눈의 실핏줄이 터졌는데, 그 여파가 아직 남아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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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지난 6일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10차전 원정경기에서 우즈베키스탄과 0-0으로 비겼다. 조 2위로 본선에 진출했지만, 팬들은 답답한 경기력에 실망감을 나타냈다.

그래도 짧은 출전시간이었지만 공격다운 공격을 보여줬던 그에겐 박수를 보냈다. 이동국은 후반 33분 교체 출전해 온몸을 던졌다. 후반 40분 헤딩슛은 크로스바를 맞혔고, 후반 44분 슈팅은 골키퍼 선방에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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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현지시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분요드코르 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경기. 한국 이동국이 헤딩슛을 시도하고 있다. [타슈켄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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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젊을 때 천운을 다 썼나 보다”고 농담을 건넨 뒤 “헤딩은 공을 이마와 미간 사이에 맞혀 땅에 찍으라고 배웠다. 비슷한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늘 생각했는데, 지나치게 정석대로 했나 보다”고 말했다.

이동국은 지난달 31일 최종예선 9차전 이란전에서는 후반 43분 교체 출전했다. 고작 6분을 뛰었지만, 서운함은 털끝만큼도 없다. 그는 “다시 대표팀에서 1분이라도 뛸 수 있어 감격했다. 막내 시안이(3)에게는 아빠가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모습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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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과 막내아들 시안이. 이동국은 "시안이에게 아빠가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모습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사진 이동국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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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형 이동국은 대표팀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게 후배들을 챙기고 다독였다. 훈련 도중 공 뺏기 게임을 하면서는 연기를 곁들인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우즈베크 원정을 떠나면서는 가족들에게 “만약에 지면 거기(우즈베크)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했던 그는 후배들에게 “가슴에 유서를 품고 가자”고 말했다. 농담 속에 진심을 담아 후배들을 독려했다. 후배들에게 “대표팀 밖에서 보면 개개인만 빛나려 하는 경우가 있더라. 동료를 반짝이게 해야 팀 전체가 빛난다”고 팀 플레이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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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9차전 한국 대 이란 경기. 이동국이 0-0 경기 종료 후 아쉬워하는 김진수를 쓰다듬어주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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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에선 “한국 축구가 월드컵 본선에 한 번은 못 나가봐야 정신 차린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이동국은 “‘우리 국민들은 월드컵을 볼 권리가 있다’는 생각으로 최종예선에서 뛰었다. 마지막 2연전이 축구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경기였다”고 말했다.

2000년 전후 이동국의 국가대표 경기사진을 보면 대부분 무릎에 테이핑을 하고 있다. 당시 그는 무릎 인대를 다친 상황에서도 청소년팀부터 올림픽팀, 국가대표팀(A팀) 소집에 모두 응했다. 그에게 태극마크는 그만큼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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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란과 아시안컵 8강전에서 골든골을 성공시키고 기뻐하는 이동국. 그는 무릎에 테이핑을 하고 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이동국은 “우즈베크전이 끝나고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지만 기쁘지 않았다. 후배들이 다가와서 ‘형, 수고했어요’라고 말하는데, 뭔가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응어리를 시원하게 풀고 싶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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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현지시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분요드코르 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경기. 한국 이동국이 패스 연결에 실패하자 아쉬워하고 있다. [타슈켄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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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실 이미 은퇴했어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에 대표팀으로 돌아왔다. 서울에서 6만 관중의 함성을 들으며 전율을 느꼈다”며 “드라마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드라마는 대개 해피엔딩이지 않나. 그래서 혹시 뒤에 숨겨진 에필로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에는 최종예선 같은 모습으로는 끝낼 수 없다는 의지가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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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BBC는 지난 6일 러시아 월드컵 본선진출국을 소개하면서 한국의 주요선수로 이동국을 꼽았다. 그러면서 “주목하라. 월드컵 열리는 내년이면 39살이 된다”고 소개했다. 그에게 5번의 월드컵 출전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총 출전시간은 51분, 한 경기 만큼도 안 된다. 그에게 월드컵은 풀지 못한 숙제다.

그는 “월드컵 본선이 열리는 9개월 뒤는 내게 너무 먼 미래”라며 “(본선 최종엔트리에서) 떨어져도 섭섭하지 않을 것 같다. 항상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경기를 한다. 물론 또 한 번의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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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클로제(오른쪽)는 2014년에 36세 나이로 출전해 월드컵 역대 최다골 신기록(16골). 황선홍은 2002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행 이끌며 화려하게 은퇴. [중앙포토]




황선홍(49·서울 감독)은 1994 미국 월드컵 볼리비아전에서 수많은 찬스를 날렸다. 평생 들을 만큼의 욕을 다 들었고, 대인기피증에 시달렸다. 4년 뒤 황선홍은 98 프랑스 월드컵 출국 전날, 중국 평가전에서 깊은 태클을 당했다. 무릎 전방십자인대가 끊어지면서 본선에서 벤치만 지켰다. 하지만 2002 한일 월드컵에서 34세의 나이로 4강 진출을 이끌었고 화려하게 은퇴했다.

이동국은 “황선홍 선배님은 불운의 아이콘으로 불렸지만, 마지막에 활짝 웃으며 마무리했다. 나도 마지막에 웃으면서 나가는 꿈을 꾼다. 다만 그 타이밍을 못맞춰서 선수생활이 길어지고 있을 뿐이다”며 웃었다.

완주=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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