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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비즈 칼럼] 그렌펠 타워 화재 석 달, 우린 뭐가 달라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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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최돈묵 가천대학교 소방공학과 교수


지난 6월 14일 영국 그렌펠 타워 대형화재가 발생했다. 오는 22일이면 100일이 된다. 그 당시 불길을 잡기 위해 소방관 250여 명, 소방차 45대가 출동했으나 1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화재경보기가 울리지 않았고 당연히 있어야 할 스프링클러도 없었다. 그렌펠 타워는 43년 전 축조한 노후화된 아파트였다. 2012년부터 5년여에 걸친 대규모 리모델링 공사에도 자동소화설비는 설치되지 않았다.

만일 그렌펠 타워 화재 당시 경보기가 울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 결과는 확연히 달랐을 것이다. 두바이 토치 타워 화재 때 경보설비가 작동해 거주자들이 신속하게 대피할 수 있었던 게 인명 피해가 없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현대 건축물이 고층화·밀집화 되면서 작은 화재도 크게 확대될 수 있다. 초기진화 목적인 소방시설은 더욱 중요해진다.

지난 100일 동안 정부 관계부처들은 발 빠르게 대응책을 내놓았다. 소방청과 국토교통부는 지난 8월 ‘고층건축물 화재안전대책’을 발표했고 관련 법 제·개정을 통해 화재예방 및 화재안전 기반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는 계획도 밝혔다. 실제로 고층건축물의 특성상 화재 발생 때 신속하게 외부에서 내부로 진입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건물 내 소방시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게 필수적이다.

우리의 소방 현실을 보자. 건설산업기본법에서 소방시설공사는 전기공사나 정보통신공사처럼 건설공사에 포함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발주자는 전기나 정보통신공사와 달리 소방시설공사업법에 소방시설공사를 분리 발주해야 한다는 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타 공사종류와 통합해 발주한다. 종합건설업체 등이 일괄로 공사를 수주해 전문 소방시설공사업체에 하도급을 주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전문성 및 특수성이 요구되는 소방시설공사가 발주 예정금액의 절반 수준으로 이뤄진다. 소방시설이 저가로 하도급되는 실정이다. 공사비 일부는 중간이윤으로 종합건설사를 배불리며, 낮은 공사비로 인해 저가 품질의 자재가 쓰이고 비전문 인력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설치된 소방시설은 오래가지 못하고 오작동하거나 잦은 고장으로 인명 희생과 막대한 재산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소방시설공사 분리발주는 국민 안전의 확보가 궁극적인 목적이다. 중소기업이 적정 공사비를 확보해 공사를 제대로 할 수 있고, 화재 발생 때 초기대응이 가능해진다. 또한 저가하도급 병폐 해소나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현 정부의 정책 방향과 일치한다 .

그렌펠 타워 화재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제대로 효과를 내려면 소방시설공사 분리발주 입법화가 필수적이다. 100일 기도를 하는 심정으로 소방시설공사 분리발주 입법화 실현을 기원한다.

최돈묵 가천대학교 소방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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