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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설의 아시아 신화로 읽는 세상] (1) ‘대륙 정벌’ 하겠다는 장수설화…현실서 늘 당하는 한반도의 소망 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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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각의 무쇠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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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씨는 제주도의 소수 성씨다. 옛 문헌인 <영주지>나 <고씨세보>에 기록되어 있는 탐라국 신화에 따르면 제주에 제일 먼저 거주했던 성씨는 고(高), 양(良), 부(夫)씨다. 조선시대 문인 양성지가 편찬에 관여한 <고려사>는 그 순서를 양, 고, 부로 기록했다. 그래서인지 고씨와 양씨는 순서를 두고 한때 소송을 벌인 일도 있다.

하지만 고씨를 앞세우든 양씨를 앞세우든 부씨는 늘 끝에 온다. 현재 제주 부씨의 숫자도 양씨나 고씨에 비해 현저히 적다. 문헌에서도 실제 인구에서도 제주 부씨는 소수자이다.

그런데 부씨 집안의 굿에서 모시는 조상신이 있다. 혈통의 조상과 달리 일월조상이라고 한다. 굿에서 호명하는 상징적·신화적 선조다. 신의 이름은 부대각! 일월처럼 빛나고 일월처럼 세상과 씨족공동체의 시원이 되는 이름이다. 제주신화 가운데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 부대각 신화는 여러모로 흥미롭다. 제주에서 부씨와 부대각 신화의 위치가 강대국 사이에 끼여 고생하는 한반도의 처지를 자꾸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부대각 본풀이’(본풀이는 신화의 우리말)의 문을 열고 아시아 신화의 숲으로 들어가봐야겠다.

부씨 집안에 아들 삼형제가 난다. 큰아들이 열다섯, 둘째가 열, 셋째가 다섯 살 되었을 무렵 소·말을 돌보라고 들에 내보낸다. 아들들이 뭘 하나 뒤따라간 아버지는 깜짝 놀란다. 소를 공처럼 던지고 받으면서 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들의 힘에 놀란 아버지는 그날 밤 자는 아이들의 겨드랑이에 날개가 솟아 있는 것을 발견한다. 집안이 망할까 두려웠던 아버지는 인두로 날개를 지진다. 이 자식 살해 사건의 현장에서 첫째와 둘째 아들은 죽고 어린 막내만 살아남는다. 차마 막내의 날개까지 지지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여기까지만 듣고 보면 천생 아기장수 설화다. 이 전설은 우리나라 전역에 퍼져 있는데, 나라를 뒤엎을 힘을 지니고 태어난 영웅 이야기다. 장수의 표지는 겨드랑이에 돋은 날개, 즉 장수가 성장한 뒤 타고 다닐 용마다. 그런데 대개의 아기장수는 역적이 되리라는 불안감에 사로잡힌 부모에 의해 살해된다. 왕조 시대를 살았던 하층민들의 집단적 심성이 빚은 살해다. 멸문지화를 당하느니 희생양을 잡아 피해보자는 보존욕망의 소산이다.

영웅이 죽지 않았으니 이야기는 계속된다. 막내아들은 열다섯 살이 넘자 펄쩍 뛰면 (제주)평대리에서 성안까지 날아가고, 다시 한번 뛰어오르면 평대리까지 날아왔다. 가히 슈퍼맨이나 헐크 수준이다. 한번은 집안 식구들이 모두 제사에 간 틈에 소도둑이 든다.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 도둑, 소년 장사는 성안에 있다가 단박에 알아보고 날아와 도둑을 딱 잡는다. 이 사건 뒤에 막내아들은 제주에는 못 살겠다며 한양으로 올라간다.

한양 산천 여기저기를 날아다니는데 하루는 방이 붙었다. 어찌된 일인지 나라에서 키우던 말, 국마가 산에서 내려와 사람들을 해치니 잡아주면 천금의 상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제가 잡아 오겠습니다.” 나라의 약속을 받은 소년 장사는 펄쩍 남산으로 뛰어올라 사방을 살핀다. 그때 내려오는 국마를 향해 “내가 누군 줄 아느냐? 와서 무릎을 꿇어라!” 호통을 친다. 그러자 말이 벌벌 떨면서 무릎을 꿇는다. 소년 장사는 국마를 잡아 어전에 바친다. 한양에서 큰 벼슬을 했다고 ‘부대각’이란 별명도 생긴다.

제주의 양창보 심방(무당의 제주도 말)이 구연한 이 신화에는 말의 정체에 대한 정보가 없다. 하지만 국마는 부대각을 알아보고 무릎을 꿇었다. 그렇다면 이 말은 아기장수와 같은 영웅의 짝인 용마일 가능성이 높다. 부대각에 대한 다른 전승에 따르면 문제를 일으킨 것은 국마가 아니라 호랑이였다. 부씨 종친회 부회장이었던 부봉룡씨의 이야기다. 그러나 호랑이는 구전 과정에서 호환(虎患) 이야기와 부대각 이야기가 섞인 결과일 수 있다. 왜냐하면 국마를 잡아 나라에 바친 부대각의 행위와 부대각 신화의 결말이 하나의 협화음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호랑이가 되면 그 화음이 깨진다.

부대각의 공을 인정한 조정은 소원을 묻는다. 부대각 신화는 이 대목에서 우리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비약한다.

“군사 삼천, 군함 서른세 척을 주십시오.” “무엇을 하겠느냐?”

“한번 대국을 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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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각은 천금의 상급을 말하지 않고 군사를 주면 대국을 치겠다고 대답한다. 여기서 대국은 그저 큰 나라가 아니라 바로 중국이다. 우리나라 신화 속에서 이런 말을 하는 영웅은 부대각뿐이다. 왜 대국인가? 그리고 왜 조정은 일개 섬 출신 장사에게 군사를 내어주는가?

부대각의 고향인 제주 평대리 도깨동산에 가면 ‘부시흥망사비’가 있다. 전체 이름은 ‘통정대부만호부공시흥망사비’. 비문에 따르면 그는 (탐라국의 왕인) 을나왕의 후예로 6대에 걸쳐 어모장군(조선시대 무신 정3품 품계)을 배출한 무인 가문의 7대손이다. 힘이 장사였는데 숙종 4년 무과에 급제, 나중에는 통정대부 만호에 제수된다. 한데 당시 제주목사가 6대조 어모장군 부유겸의 묘가 성산읍 식산봉에 있는 장군바위를 정면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에 훗날 대장군이 태어나리라는 풍수 전설을 믿고 군사를 보내 장군바위를 깨버린다. 그리고 부대각마

저 제거하려고 호시탐탐 노리다 그가 만호가 되어 제주로 건너올 때 암계를 써 수장시켰다고 한다.

이 비문은 사실일까? 무오년(1678년) 과거 합격자 명부인 <무오정시문무과방목(戊午庭試文武科榜目)>을 보니 을과에서 1등을 한 것이 맞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는 부유겸도 부시흥도 보이지 않는다. 비문의 내용은 아마도 집안의 가전(家傳)으로 내려온 부시흥의 사적일 것이다. 이 망사비의 기록을 인정한다면, 부대각이라는 별명을 지닌 부시흥은 무용을 갖춘 제주의 무장이었으나 억울하게 죽은 인물이다. 그것도 제주목사로 상징되는 조선 조정에 의해 암살된 영웅이다.

그런데 지금 읽고 있는 ‘부대각 본풀이’는 망사비의 부대각을 다른 존재로 그려낸다. 한양 근무를 마치고 제주로 귀환하다 암살된 것이 아니라 국마를 굴복시킨 공신으로 묘사한다. 망사비는 부대각과 조정의 대결 관계를 설정하고 있지만 본풀이는 조정의 자리에 대국을 배치한다. 대국이 부대각의 맞수로 부각되면서 한양 조정은 부대각의 후원자가 된다. ‘부대각+조정’↔‘대국’의 구도인 셈이다. 이런 구도를 미국과 맞서는 북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중국과 대립 중인 한반도(+미국)의 관계에 비긴다면 상상력이 과도한 것일까?

최치원은 당나라에서 문장으로 크게 이름을 떨친 신라인이다. 최치원을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 <최고운전>이나 <최문헌전>은 그를 금돼지의 아들로 태어난 영웅으로 그린다. 어린 영웅은 트집을 잡아 신라를 공격하려는 대국 황제와 맞선다. 황제는 돌함 속에 물건을 숨기고 무엇이 들었는지 맞히라고 한다. 난관에 봉착한 조정은 벼슬과 상급을 내걸고 해결사를 찾는다. 알에서 깬 병아리가 함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꿰뚫어 본 소년 최치원은 멋진 시로 해답을 제시하여 황제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다. 나중에는 ‘천하가 내 땅’이라는 황제와 맞서 황제를 굴복시키고 사죄까지 받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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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는 늘 대국에 당하지만 상상력으로는 대국을 이긴다. 아니 한번 이겨보고 싶은 것이다. 약자의 자연스러운 소망이다. 그렇다면 제주 무속신화의 부대각은 대국을 쳐부수었을까?

군사를 이끌고 부대각은 대국이 아니라 제주로 향한다. 명분은 이렇다. “아이고 이번에 가면 살아서 돌아올 건가 죽어서 돌아올 건가. 가면서 선조라도 한번 돌아보고 가는 게 자손의 도리가 아닌가?”

부대각이 선조의 묘소에 참배하러 입도하자 평대리 부씨 집안에선 난리가 난다. 영웅의 입도를 환영하지 않고 두려워한다. ‘저 사람을 그냥 놔뒀다가는 우리 집안이 망할 것’이라는 공포다. 집안사람들은 공포를 해결하기 위해 선산에 올라간다. 선산을 돌아보니 뒤에 장군바위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이 바위 때문에 장군 하르방이 탄생했다고 믿은 마을 사람들은 바위를 쇠방망이로 부수어 버린다.

장군바위가 깨지자 어찌된 일인지 일기가 불순해진다. 안개가 잔뜩 끼어 대국으로 향하는 전함을 띄울 수가 없다. 하루 이틀 한 달이 지나도 안개를 걷히질 않는다. 시간만 까먹는 사이 군량이 바닥나 군사들이 굶어죽게 되었다. 부대각은 뒤늦게 깨닫는다. ‘안개가 아니라 내 눈이 어두워진 게 아닌가, 선산의 영기가 내 눈을 어둡게 해버렸구나!’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부대각은 존재를 건 결단을 내린다.

“나 하나 죽으면 너희들은 다 산다.”

여기서 ‘너희들’은 군사들일 수도 있고, 부씨 집안일 수도 있다. 제주도민 전체일 수도, 한반도 주민 모두일 수도 있다. 부대각은 대국과의 대결을 포기하고 죽음과의 대결을 선언한다. 죽자, 죽어서 옥황상제에게 가서 따지자.

부대각은 무쇠방석을 내려달라고 하늘에 빈다. 그러자 하늘에서 무쇠방석이 내려온다, 한데 무쇠방석이 물에 둥둥 뜬다. 부대각이 방석에 올라앉아도 가라않질 않는다. “내가 누군 줄 아느냐? 어서 물 아래로 인도해라!” 국마처럼 호령을 듣고서야 무쇠방석은 가라앉는다. 한국 신화에 희귀하게 등장했던 대국과의 대결 구도는 이렇게 물속으로 가라앉아 수장된다. 집안사람들에 의해 살해되는 아기장수 전설의 전형적인 결과로 돌아간 셈이다. 그래서 한양 조정을 괴롭히던 국마가 미리 제거된 것이 아니었겠는가.

결말은 허망하지만 이것이 소수자의 존재성인지도 모르겠다. 희생신화의 관점에서 보면 부대각은 자신을 제물로 바쳐 모두를 구한 것이다. 종교적 영웅들은 모두 예수처럼 자신을 희생하여 세계를 구원하려고 한다. 부대각은 부씨 집안의 조상신일 뿐만 아니라 제주 굿의 종교적 영웅이기도 하다. 부씨 집안사람들은 못 찾은 시신 대신 헛 봉분을 써놓고 지금도 제사를 지낸다. 이 의례에서 그들은 무엇을 기념하는 것일까? 부대각의 고귀한 희생일까? 무쇠방석을 타고 옥황상제에게 따지러 가려 한 그의 결연한 의기일까?

부씨 집안과 부대각의 신화는 세상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부대각은 소수자의 다른 이름이고 이야기다. 이것은 미얀마의 로힝야족, 다람살라의 티베트인들, 사드에 포위된 성주 주민들, 무쇠방석 위에 떠 있는 한반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필자 조현설

한국 고전문학·구비문학을 전공했다. 서울대 교수(국문학)로 한국 신화를 포함한 동아시아 신화와 서사문학을 탐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동아시아 건국신화의 역사와 논리>(2004),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2006), <마고할미신화 연구>(2013) 등이 있다. 논문은 ‘해골, 삶과 죽음의 매개자’(2013), ‘천재지변, 그 정치적 욕망과 노모스’(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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