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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청춘직설]‘추석 차례’ 가짜 전통과 싸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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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섭섭해하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않겠는가?(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논어>를 열자마자 보이는 공자의 한마디다. 나는 군자 발끝에도 못 미쳐 내가 하는 일, 그러니까 음식 문화사 탐구를 잘 가늠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잘 삐진다. 가령 “설렁탕은 선농제에서 시작됐다” “한국사상 최초로 커피를 마신 사람은 고종이다” 하는 사람 앞에서는 순간 얼굴이 발그레해지고 한 번은 쏘아붙이게 된다. “낭설 수집을 음식 문화사 공부로 착각하면 그 다음이 없어요.”

부끄럽게도, 내 군자답지 못한 면모를 자주 들키는 계절이다. 추석을 앞두고 차례 상차림을 묻는 전화가 잦다. 대중매체는 여전히 홍동백서(紅東白西:붉은 과실은 동쪽에 흰 과실은 서쪽에), 조율이시(棗栗梨시:대추·밤·배·감의 차례로 놓기) 같은 진설법을 가르치려 든다. 이 철만 오면 무엇이 차례상에 오를 수 있고, 무엇은 올라서는 안되는가 하는 문제에 정답을 내야만 차례를 지낼 수 있는 것처럼 군다. 다시금 발그레한 얼굴로 단언한다. 홍동백서, 조율이시 같은 말은 꺼낸 쪽에서 증명하라고. 예서는 이런 규약을 논한 적이 없다. 명절 앞두고 기억할 말은 딱 한마디, “가가례(家家禮)”뿐이다.

가가례, 집집마다 예가 다르다, 집집마다 저마다의 예를 따른다는 말이다. 추석의 차례와 손님맞이를 두고 남의 집에다 감히 감 놔라 배 놔라 할 것도 없고, 내 조상께 예 갖추고 오랜만에 겨레붙이 모이는 데 남의 집 눈치 볼 것 없다는 뜻이다. 고려시대 이후 예서의 기본으로 자리 잡은 <주자가례(朱子家禮)>, 18세기에 이를 조선화한 <사례편람(四禮便覽)> 어느 책도 차례 상차림을 규범화한 적이 없다. 이이는 1577년에 간행한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 차례에는 지내는 그때 나는 식료로 음식을 해 올리되 별다른 게 없으면 떡과 과실 두어 가지면 된다고 설명했다.

차례는 원래 축문도 읽지 않고 술도 한 번만 올리는 간소한 의식이었다. 이는 그동안의 민속학 조사가 밝힌 바이고, 오늘날 성균관 전례연구위원회에서 되풀이해 강조하는 바다. 추석 차례는 별 탈 없이 한 해의 수확을 앞두고 있음을 조상에게 알리는 의식이었다. 추석은 농번기를 앞두고 모두가 쉬어가는 휴일이었다. 차례 음식은 올벼로 빚은 술, 구할 수 있는 과일, 그리고 지역이나 집안의 특색 있는 음식으로 충분했다. 퇴계 이황은 간소한 제사와 차례를 강조했다. 그 뜻을 진성 이씨네는 오늘도 이어가고 있다. 파평 윤씨 윤증(尹拯·1629~1714) 고택에 전해오는 차례에 쓰는 상은 가로 99㎝, 세로 68㎝에 지나지 않는다. 후손들은 이 상에 과일 셋, 나물, 밥과 국, 그리고 어포와 육포만으로 제물을 차린다. 차례 상차림은 집안 형편과 사는 곳의 지리적 특성에 따라 다른 게 당연하다. 낙지, 문어, 상어, 홍어, 통북어, 꿩, 부꾸미, 파인애플, 바나나, 카스텔라 등 홍동백서며 조율이시에 들지 않는 제물이 보이는 편이 도리어 자연스럽다. 1970년대 이후 대중매체가 추석 차례에 무슨 대단한 규약이 존재하는 듯 굴었으나 이는 소비와 과시의 시대를 맞아 새로 “만들어낸 전통”일 뿐이다. 감히 동포에게 낯을 붉히랴. 낭설로 쌓은 억지가 불편할 뿐이다. 낭설과 억지가 빚은 가짜 전통은 명절에 깃든 평화와 휴식의 풍경, 공동체의 정다운 마음을 바래게 했다.

이에 더욱 삼삼한 문헌이 정학유(丁學游·1786~1855)의 가사 <농가월령가>이다. 정학유는 산과일이 익어가는 음력 8월을 “뒷동산 밤대추는 아이들 세상”으로 노래했다. 명절 쇠며 쓸 식료는 북어와 젓갈용 조기로 충분했다. “신도주(햅쌀술), 올벼송편, 박나물, 토란국”만으로 차례 지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제물은 이웃집과 나누어 먹었다. 차례를 지내고서 며느리는 “말미”, 곧 휴가를 받아 친정으로 떠났다. 삶은 개고기에 떡고리와 술병을 챙겨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남의 집 따님에게, 시적 자아는 얼굴은 좀 폈는지 묻는다. 그러고는 위로 겸해 당부한다. “중추야 밝은 달에 지기 펴고 놀고 오소.” 보름달 아래서 마음껏 놀다 오란 말이다. 밤과 대추를 차지한 아이들, 이웃과 나누는 소박한 제물, 그리고 가사와 농사에 지친 여성의 휴식, 여기 추석의 본래 뜻 명절의 원래 모습이 깃들어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았으면 해서다. 그 마음으로 굳이 문헌을 불러내 낭설과 억지부터 물리친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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