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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소득주도 메커니즘 곳곳서 작동안해…투자 감소 부메랑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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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득주도성장론 허와 실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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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모델을 처음 고안한 것으로 알려진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의 구상은 간단하다. '실질임금 증가(소득분배 개선)→소비·투자 증가→노동생산성 증가→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임금을 인위적으로 올리면 기업이윤이 줄어 투자와 수출에 부정적일 수 있지만, 주머니가 두둑해진 가계가 소비를 늘려 총수요를 늘리는 효과가 더 크다는 논리다.

하지만 전달 경로별로 위험 요소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선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을 대폭 강화하면서 영세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1차적 피해를 본다는 점이 한계로 꼽힌다. 저소득층과 자영업자에 대한 소득 보조 대책, 하도급 거래 공정화 등 패키지 정책을 개발하고 노사정의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담론이 제시되지만, 패키지 정책 중 어느 한 곳에서라도 불협화음이 나고 기업들이 다르게 움직인다면 선의가 왜곡된 결과를 빚을 수 있다. 특히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시장 개혁 과정이 경직성을 더하는 쪽으로만 작용하면 경제에서 지속적으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기업의 민간 일자리 수 자체를 줄일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속 가능성도 문제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분 중 예년 상승분보다 높은 부분을 재정으로 지원하겠다고 했다. 또한 가계소득을 증대하기 위해 각종 생활비용을 감소시키는 복지정책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경제·고용·복지가 함께 가는 이른바 '황금 삼각형' 모델이다. 하지만 복지정책을 성장정책으로 소개하면서 보편적 증세에 나서지 않는 것은 고령화 추세에 비춰볼 때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게 쉽지 않다는 비판이 계속 제기되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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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난 소비가 투자로 이어진다는 가정도 엉성하긴 마찬가지다. 한국은 폐쇄경제가 아니라 수출입이 자유로운 개방경제이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늘어난 소득을 중국의 값싼 공산품을 사는 데 써버리면 한국 공장의 가동률 증가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게 된다.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임금 주도 성장 전략으로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경기 진작을 도모할 수는 있으나 그 효과가 빨리 소진되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는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이윤 주도 성장, 특히 연구개발(R&D) 등의 무형자산에 대한 투자, 기술 혁신에 대한 투자,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 그리고 사회적자본 등 총요소생산성 향상에 대한 투자만이 중·장기적인 성장정책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임금 증가가 노동생산성 증가로 이어진다는 가정도 반박의 여지가 많다. 임금이 상승하면 기업이 오히려 공장 자동화 등을 통해 자동화와 고용 축소로 대응할 수 있다. 소득주도 성장론의 모태는 노동자들이 협상력이 약해 노동생산성에 비해 임금을 덜 받는다는 전제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현실 세계에서 임금체계-고용의 움직임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경제학계에서 설왕설래를 거듭하는 소득주도 성장론은 한국의 경우 속도가 문제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른바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린다고 해도 과연 가계가 소비를 늘리고 이를 바탕으로 기업이 투자를 늘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만약 경제성장 속도가 가계소득 증가보다 늦다면 기업의 순이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고 결국 도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소득주도 성장을 제대로 구현하려면 공급 측면에서 수출을 늘려 파이를 키우고, 이를 토대로 내수경제로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득주도 성장 모델은 사실상 경기 대응적 성격이지 성장정책으로 보기 어려운 만큼 경제·산업·노동 전반에서 종합적인 개혁 청사진을 마련하지 않으면 재정 파탄으로 귀결되는 위험한 실험이 될 수도 있다.

국책 연구기관 관계자는 "더욱이 현재 소득주도 성장론이 정교한 이론과 정책을 통해 접근하기보다는 분배론에 기초한 정치논리로 급진적으로 추진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김규식 기자 / 이승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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