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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이슈&현장] 절차적 정당성 잃은 ‘생리대 파문’… 결국 소비자 혼란 부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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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촉발 시민단체 운동 도마에

세계일보

“생리대 안전성 문제를 제기해 당국의 관리 기준 강화를 이끌어 내는 시민단체 본연의 역할을 했다.” “특정 기업과의 교류로 각종 의혹 또는 오해를 낳고 문제 제기 과정에서 불공정한 모습을 보였다.” ‘부작용 생리대’ 논란을 촉발한 시민단체 여성환경연대에 대해 이같이 상반된 평가가 적지 않게 나온다. 이 단체의 문제 제기를 통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생리대 전수조사와 인체 위해 평가에 나서게 됐지만, 이 과정에서 한 기업만을 노출해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각종 의혹을 양산하며 사회 혼란을 일으켰다는 비판도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번 생리대 논란은 생리대 안전성 문제와 별개로 기업 또는 정부와 거리두기, 공정성 유지하기 등 절차적 정당성 측면에서 일부 시민단체 운동의 문제점을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이 논란은 법정싸움으로 옮겨갔다.

◆릴리안만 노출… 비공개 원칙 지켰어야

이번 논란은 지난 3월까지 여성환경연대가 생리대 안전이라는 생활밀착 주제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강원대 김만구 교수팀에 연구를 의뢰한 결과 주요 생리대 10개 제품에서 22종의 유해성분이 모두 검출됐다며 익명으로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제품명을 알려 달라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대해 이 단체는 “시간과 비용 문제로 일부 제품만 선정했고 시험에서 나타난 유해물질에 대한 법적 기준이 없어 브랜드를 밝혀도 리콜 등 보상이 되지 않는 데다 검출 시험의 목표는 특정 제품이 아니라 생리대 유해물질 전반에 대한 문제 제기와 제도 마련이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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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난 8월 김 교수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총량이 가장 높은 제품은 깨끗한나라의 ‘릴리안’이었다고 언급하자, 여성환경연대는 릴리안만을 대상으로 피해 사례를 모은 뒤 기자회견을 열었다. 제품명 비공개 원칙을 깨고 특정 제품을 공개한 것이다. 또 김 교수 측이 “유해성분 분석만 했고 위해 평가는 하지 않았다.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알 수 없다”고 밝힌 것과 달리 “제보자 3009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릴리안 사용 후 49%가 자궁 관련 질환으로 병원을 찾았다”며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인체 영향에 대한 여성들의 두려움을 자극했다.

이때부터 생리대 논란은 일회용 생리대의 안전성 여부와 별개로 여성환경연대에 대한 각종 의혹으로 번졌다. 여성환경연대의 운영위원에 생리대 점유율 1위 업체인 유한킴벌리 간부가 포함돼 있고, 강원대 에코피스리더십센터에 유한킴벌리가 후원한 사실이 알려지며 이 단체가 특정 기업에 편향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시험 대상에 유한킴벌리 제품도 있을 텐데 결과를 모두 공개하라는 여론이 비등하자 여성환경연대는 비공개 원칙을 내세우며 권한을 식약처에 떠넘겼다. 식약처는 익명으로 강원대 측의 시험 결과를 대리 공개한 지 며칠 만에 모든 제품을 실명 공개했다. 이 결과에 따르면 총휘발성유기화합물(TVOC) 수치가 가장 높은 제품은 깨끗한나라의 릴리안으로 나타났다. 여성들의 사용량이 가장 많은 패드인 일회용 중형 생리대 중 국제암연구소(IARC)가 규정한 1, 2군 발암물질 검출량이 가장 높은 제품은 유한킴벌리의 좋은느낌이었다. 시험에 쓰인 전체 11개 중 발암물질 총량이 가장 많은 제품은 면생리대(트리플라이프 ‘그나랜시크릿면생리대’)였지만 세탁하거나 삶으면 유해성분 수치가 확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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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정부와 거리두기… 시민단체 신용에 관건

여성환경연대처럼 많은 시민단체들이 자체적으로 진행한 시험을 토대로 당국의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운동을 하고 있다. ‘살충제 달걀’의 위험성을 알린 한국소비자연맹도 자체 검출 시험을 한 뒤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처럼 시민단체에서 사회적 파장이 큰 자료를 생산해낼 때는 독립성과 공정성을 더욱 철저하게 유지하고 의혹이나 오해를 살 수 있는 여지를 둬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과)는 “비정부기구(NGO)의 정신을 살리려면 기업과 정부와 거리두기를 하면서 독립적으로 활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성환경연대는 생리대 안전성 문제를 제기하면서 유한킴벌리와 인적 교류, 과거의 후원 등의 관계를 맺었고 경쟁 업체의 제품만을 대상으로 피해 사례 제보를 받으며 의혹을 키웠다.

제품 선정에서부터 불공정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성환경연대는 소비자가 실제 구매한 생리대 판매량이 아니라 각사에서 제품을 만들어낸 생산량을 기준으로 업체 순위를 정했다고 한다. 팬티라이너의 경우 2개사에서만 5개 제품을 고르면서 깨끗한나라는 2개 모두 향 제품을 선정했고 유한킴벌리는 1개만 향, 2개는 향 없는 제품으로 선택했다. 향 제품일수록 TVOC 검출 수치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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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깨끗한나라는 “시험 대상 제품의 선정 기준과 선정 주체, 제조일자, 시험방법 등을 공개하라”고 요구했지만 여성환경연대는 아직까지 일부 내용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 있다. TVOC는 제조일자가 오래된 제품일수록 대기 중으로 일부가 날아가 검출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공정한 시험을 위해선 제품 제조일자를 맞춰야 한다.

식약처와 공정거래위원회, 환경부 등 정부기관은 조사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내부 지침이나 가이드라인 형태로 안정성 조사 방법과 기준을 정해놓고 있다. 식약처의 경우 시험 검체를 수거할 때 제조번호나 유통기한을 맞추고 관련 표시가 없을 때는 품종, 제조회사, 수출날짜 등을 고려한다.

이현미·김준영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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