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8 (목)

[단독]용어 만들고 UCC 창작하고 …국정원 심리전단 여론전, 문건으로 확인

댓글 9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진보세력 고사 방안 개발ㆍ보고

국정홍보 글 6000건 게재 성과 과시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 심리전단의 활동 상황 등이 담긴 내부 보고서를 중앙일보가 23일 입수했다. 보고서에는 '여론전' 방법과 성과가 적혀 있다. 당시 국정원이 국정 지지율을 높이고 진보 세력의 활동을 방해하기 위해 ‘좌티즌’ 등의 용어를 만들고, UCCㆍ3D게임ㆍ만화 등을 직접 제작했다는 내용도 있다. UCC(사용자 창작 콘텐트)는 일반 인터넷 사용자들이 만든 동영상 등을 일컫는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국정원 내부 보고서는 2009~2011년에 작성된 문서 총 30페이지 분량으로 ①심리전단 주요 업무 보고 ②원장님 지시사항, 대통령과의 대화 홍보 방안, 4대강 사업 논란 대응 등 현안 보고 ③원세훈 국정원장 모두발언 ④붙임 문서(일간지 칼럼 등)으로 네 종류다. 검찰에 따르면 이 보고서들은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이 최근 국정원에 요청해 제출받은 문건에 포함돼 있다.

보고서 내용에 따르면 국정원 심리전단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 취임 4일 뒤인 2009년 2월 16일에 「국정원 심리전단 주요 업무 보고」문서를 작성했다. 보고서 말미에는 “심리전단은 원장님의 지휘방침을 받들어 업무역량을 배가, 대통령님의 국정철학을 구현하고 성공적 국정운영을 뒷받침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경주해 나가겠습니다”라는 다짐이 적혀 있다.

중앙일보

국정원 심리전단이 2009년 2월 16일 작성한 ‘주요 업무 보고’ 문건. ‘좌티즌’ ‘北바라기’ 등의 용어가 국정원에 의해 개발ㆍ학산돼 있음이 적혀 있다. 또 원세훈 국정원장과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 다짐이 담겨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문건에 따르면 국내 심리전 방안은 ①친북좌파 무력화 ②국론결집ㆍ국민통합 ③국가관ㆍ안보관 확립 등 크게 3가지였다. 그중 친북좌파 무력화의 방안에는 좌파 불법성 규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해악상 폭로, 좌편향 교과서 개정 여론 확산을 통한 좌파 고립ㆍ고사 유도였다. 심리전단은 건전 보수단체를 측면 지원하고 차세대 보수세력을 육성하는 등 보수세력 기반 확충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세부 추진계획으로 ‘전교조 백서’ 발간 등으로 전교조를 고사시키고 친북좌파에 대응하는 소설과 영화제작 등을 지원해 문화심리전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원 전 원장 측은 23일 "해당 문서가 작성됐을 때(2009년 2월) 챙겨야 할 안보 상황이 많아 원 전 원장이 심리전단의 보고를 받지 못했다. 원 전 원장은 이 문서를 본 적도 없다. 재판에서 여러 사람이 증언했듯이 원 전 원장은 심리전단의 활동 내용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국정원 심리전단이 2009년 2월 16일 작성한 ‘주요 업무 보고’ 문건. 국내 심리전 방안으로 좌파의 고립ㆍ고사를 유도하고 건전 보수단체를 측면 지원해 친북좌파를 무력화 시켜야 한다고 쓰여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국정원 심리전단의 국내 심리전 세부 추진계획. 전교조 백서를 발간해 전교조를 고사시키고 좌파에 대응하는 문화 산업을 지원한다고 쓰여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정원, “아고라 등에 MB찬양 글 6000건, 주요 일간지 칼럼 게재” 성과 보고
보고서에는 국정원이 어떤 형태로 여론 조작에 개입했는지도 나타나 있다. 2009년 12월 4일에 작성된 「‘대통령과의 대화’ 계기 국정지지도 제고 전략홍보 결과」 문건에 따르면 국정원은 같은해 11월 27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원안수정문제 등 국정 현안을 설명하는 TV 특별생방송 출연을 전후로 'VIP의 진정성ㆍ소통리더십 부각, 좌파의 폄훼기도 차단을 위한 전방위 전략 홍보활동'을 전개했다.

중앙일보

국정원이 2009년 12월 4일 작성한 문건. 아고라 등에 게시물 6000여건 게재, 1일 평균 2500여건 찬반투표 참여, 전문가 협조로 주요 일간지에 칼럼 게재 등이 성과로 보고돼 있다. 글자위에 그어진 선들은 축약 보고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보고서에는 “(포털 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등에 VIP 말씀 공감, 정부정책 지지, 좌파공박 토론글·댓글 등 총 6000여 건을 게재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 중 아고라에는 총 14건이 ‘베스트 토론글’로 등재돼 네티즌 10만여 명이 열람했다"는 문구도 나온다. 해당 게시글은 '자유선진당은 가출말고 집으로 돌아오라' , '특별생방송 ‘대통령과의대화’ 토론 프로를 본 소감' 등으로 모두 정부 정책을 지지하고 야권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방송 이후 1일 평균 2500여 건의 찬반투표에 지속해서 참여하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이는 국정원 대선 개입 댓글 사건에 연루된 김모씨가 지난 18일 원 전 원장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찬반 투표는 테스트 차원이었다”고 말한 것과 180도 다른 내용이다.

국정원은 교수 등 전문가의 협조를 얻어 언론에 정부 정책을 옹호하는 내용의 칼럼을 게재하도록 했다. 문건에 따르면 국정원은 중앙대 김모 교수에게 부탁해 주요 일간지 한 곳에 야권이 주장하던 세종시 건설 주장을 비판하는 내용의 칼럼을 실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당시 나는 국정원의 연락을 받은 적도 없고, 내 소신대로 쓴 것 뿐이다. 왜 내 이름이 국정원 문서에 적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보고서에는 “‘자유주의진보연합’ 등 건전단체를 조정, ‘대통령과의 대화 지지ㆍ정치권 각성촉구’ 요지 성명 및 논평 발표 유도”라는 대목도 들어있다.

◇‘좌티즌ㆍ北바라기’ 용어 만들고 UCCㆍ3D게임 제작도
보고서에 따르면 국정원은 ‘좌티즌ㆍ北바라기’ 등의 용어도 직접 만들어 확산시켰다. 이는 원 전 원장의 취임 초기 당시 문건인 「국정원 심리전단 주요 업무 보고」(2009.2.16) 에 “좌파 공박 심리전 용어 개발ㆍ확산”의 예시로 나와 있다.

국정원 심리전단은 전방위 사이버 역량 강화 방안으로 사이버 모니터링 강화 통한 초동단계 신속 대처, 보수 파워블로거·사이버 논객 육성 통한 사이버 대응역량 확충, 온라인 안보체험 3D 게임 통한 네티즌 안보 계도 등을 제시했다.

2010년 하반기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 거센 반발에 부딪히자 심리전단은 「좌파의 ‘4대강사업=복지예산 감소’ 주장 강력 공박」(2010.9.13)이라는 문건 통해 “좌파들의 악소문 유포를 규탄하는 사이버심리전을 전개 중”이라고 보고했다. 특히 이 문건에는 ‘좌티즌’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중앙일보

국정원 심리전단이 2010년 9월 13일 작성한 4대강 사업 관련 문건. ‘좌티즌’이라는 용어가 들어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정원 심리전단은 자신들이 만들어 유포한 UCC를 네티즌이 만든 것으로 둔갑시키기도 했다. 보고서에는 ‘4대강 사업을 하면 복지가 줄어든다고요?'라는 제목의 UCC를 심리전단이 제작했다는 내용과 이를 소개하는 기사가 2010년 9월 13일자로 언론 매체에 실렸다는 내용이 있다. 해당 기사에는 “‘4대강 사업을 하면 복지예산이 줄어든다’는 일각의 주장에 반박하는 네티즌 UCC가 동영상 포털사이트를 통해 배포됐다”고 적혀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심리전단은 주요 포털사이트에 “4대강 첫 준공 부산 화명 낙동강변 너무 잘해놔서 미안타!” 등의 문구가 적힌 광고를 싣고, “4대강, 지금 안하면 후회한다” 등의 게시물을 다음 아고라에 올리기도 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g@joongang.co.kr

▶SNS에서 만나는 중앙일보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포스트]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and JTBC Content Hub Co., 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