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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올림픽, '위험한 도박'이 된 속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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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 다 든 IOC, 그 속사정

최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프랑스 파리와 미국 LA를 각각 2024년·2028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낙점했다. 이번처럼 올림픽 개최지가 한꺼번에 두 곳이 결정된 건 최초다. IOC는 '올림픽 개최지는 개최연도 7년 전에 결정한다'는 본인들의 규정(IOC 헌장 33조 2항)을 깨고, 올림픽 유치를 희망하는 두 도시를 모두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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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안 이달고(오른쪽) 파리 시장과 에릭 가세티 LA 시장의 손을 동시에 들어 올리고 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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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올림픽 유치전에 대해 세계 스포츠계에서는 '패자 없는 게임'이란 말이 나왔다. 실제 유치 경쟁에 뛰어든 도시는 파리와 LA뿐이었고, 두 곳이 모두 기회를 얻었다. 여기에 '올림픽 안정성'을 확보한 IOC까지, 모두가 '윈-윈-윈' 했다는 것이다. 미국 보스턴, 독일 함부르크, 이탈리아 로마, 헝가리 부다페스트는 처음에 올림픽 유치 의사를 밝혔었지만 진작에 발을 뺐다. 경제적 부작용을 우려한 시민들의 반대가 거셌기 때문이다. ▶기사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던 올림픽은 어쩌다 애물단지로 전락한 걸까. 앞서 올림픽을 치렀던 나라를 살펴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속엔 다가올 평창 올림픽을 위한 교훈이 있다.

올림픽 그 前…
유치 성공, 손 벌리기 시작


IOC에서 주관하는 올림픽은 동계와 하계 올림픽이 2년에 한 번씩 번갈아가며 열린다. 보통 '올림픽'이라고만 하면 하계 올림픽을 뜻하는데, 동계 올림픽보다 규모도 더 크고 열기도 뜨겁다. 하계올림픽 종목은 28개에 달하며(2020년부터는 5개 선택 종목이 추가된다), 참가국 수도 200개에 달한다. 한 번 개최하는 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건 당연하다. 동계 올림픽의 경우 종목이 15개, 참가국 수도 80여 개 정도로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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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2011년, 평창이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던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환호하고 있다. (우) 개최지 확정 후 공사에 돌입한 평창. 지난해 최순실 사태가 터진 후 자금 모금에 어려움을 겪어 일부 공사가 지연되고 있다.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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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무슨 돈으로 열리나?
그렇다면 이 천문학적인 돈은 어디서 나올까. 올림픽 개최 비용 마련은 국비, IOC 지원금, 후원금, 기부금, 입장권 수입 등으로 이뤄진다. 평창 올림픽은 예산이 14조 원 수준이다. 이중 도로, 경기장 등 인프라 구축에 투입된 금액이 10조9400억 원(국비 7조6000억 원+지방비 400억 원+민자 유치 3조3000억 원)이다. 실제 올림픽 운영은 스폰서 후원 및 기부금(46.5%), IOC 지원금(18.3%), 입장권 및 기념품 수입(7.2%), 국고 지원(2.5%) 등 총 2조8000억 원 규모로 치러질 예정이다. 물론 이 금액은 후원금 모금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손 벌리기' 애먹는 평창올림픽
이처럼 후원금과 기부금이 올림픽 운영비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지만 평창올림픽은 유난히 후원금 모금에 애를 먹고 있다. 지난해 터진 국정농단 사태가 스포츠계와도 얽혀있는 것이 드러나면서 기업 후원이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7년 전 평창올림픽 유치 성공의 기쁨을 함께 나눴던 국민들의 관심도 뚝 떨어졌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공기업들의 적극적인 후원을 호소하고 나섰다. ▶기사

올림픽 그 後…
성화가 꺼지고 빚더미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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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4조… 역대 올림픽 개최국이 쓴 비용

2013년 영국 옥스퍼드대는 역대 올림픽 개최지의 비용을 추산한 연구 보고서를 내놨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 20년간 올림픽을 개최한 모든 도시에서 '올림픽 후 경기침체(Post Olympic Economy Depression)'가 발생했다. 위 지도는 옥스퍼드대 보고서를 토대로 구성한 각 국가의 올림픽 개최 비용이다. 이 수치는 도로 건설 등 SOC 사업에 드는 비용은 제외한 것으로, 실제 올림픽에 치러진 비용은 이보다 많다.

최악의 빚잔치 벌인 올림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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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C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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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에 빚 청산 … 메인 경기장은 '더 빅 오(The Big Owe)' 오명

CNN이 선정한 '역대 최악의 올림픽'이다. 1976년 올림픽 개최 당시 몬트리올 시장이었던 장 드라포는 "올림픽 개최는 아기 출산보다 적은 비용이 든다"며 자신했지만, 올림픽이 끝난 이후 30년간 빚을 갚았다. 2006년에서야 15억 달러(약 1조6851억 원)의 빚을 모두 청산했다.

이 올림픽을 빚더미로 만든 건 크게 두 가지, 건설 비용과 보안 비용이다. 메인 경기장인 '더 빅 오(The Big O)'는 건설 도중 잦은 사고와 설계 변경 때문에 올림픽 개막식까지도 완공되지 못하였다. 경기를 치를 수 있는 최소한만 완공한 뒤 올림픽을 열었다. 이후 완전히 다 지어지기까지는 10년이 더 걸렸고, 최초 건설 예상 비용의 10배가 넘는 돈이 투입됐다. '더 빅 오(The Big O)'는 '더 빅 오(The Big Owe, 빚더미)'라는 오명을 안게 됐다.

또 다른 복병은 보안이었다. 몬트리올 올림픽 직전에 열렸던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테러단체가 선수촌에 난입해 이스라엘 대표팀 11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자, 캐나다는 대테러 대책에 예산을 초과하는 비용을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 역대 올림픽 사상 가장 엄중한 경비를 펼친 대회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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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C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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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식 경기장' 고집하다 애물단지로 전락

일본의 '과도한 욕심'이 만든 적자 올림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은 1972년 삿포로에 이어 두 번째로 동계 올림픽 개최권을 따내자, 패전국 이미지를 완전히 지우고 자신들의 저력을 전 세계에 알릴 계기로 삼고자 하는 결심을 한다. 그리고 이는 곧 과잉 투자로 이어졌다.

일본은 오로지 올림픽을 위해 경기장 6곳 중 4곳을 최신식으로 새로 지었다. 경기장을 짓는 데에만 57억8000만 달러(약 6조5516억 원)가 투자됐고, 이밖에 신칸센, 공항, 도로 등을 건설하는 데 205억2000만 달러(약 23조2530억 원)가 들었다. 이 비용은 모두 미래의 SOC(사회간접자본) 건설 비용을 당겨 쓰거나, 지방채 발행으로 충당됐다.

이렇게 지어진 경기장들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기장'에 뽑히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올림픽이 끝난 후 경기장은 매년 억대 유지비용을 먹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특히 봅슬레이, 루지와 같은 동계올림픽 종목들은 대중적이지 않은 데다가, 얼음을 얼리고 유지하는 비용이 많이 들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현재 나가노 현은 경기장의 제빙을 멈추고 다른 활용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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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C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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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최악의 국가 부도 불러온 올림픽

108년 만에, '올림픽의 발상지' 그리스에서 열린 올림픽이었지만 그 명성과는 달리 그리스 재정 파탄을 일으킨 발단이 된 대회다. 그리스 정부는 이 대회를 위해 90억 유로(약 12조 원)를 쏟아부었는데, 그중 70억 유로가 빚이었다. 2004년 당시 그리스의 빚은 GDP의 110.6%였는데 이는 점차 늘어 2012년엔 GDP의 165.3%, 2015년 초엔 170%를 돌파했다.

아테네 올림픽 적자의 가장 큰 원인은 그리스의 빗나간 경제효과 예측 때문이다. 그리스는 올림픽을 통해 관광산업 극대화 및 내수 촉진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자국 선수들이 부진하면서 관중 동원조차 실패했다. 게다가 9·11 테러 이후 처음으로 열린 올림픽이었던 탓에 보안 비용도 12억 유로나 지출해야 했다. 올림픽 예산을 집행하는 과정에서는 공무원의 부패 등 그리스의 고질병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리고 이것이 많은 경제학자들이 지적하는 그리스 국가부도의 원인이 됐다. 아테네의 화려한 올림픽 경기장들도 대회 이후 대부분 방치되었는데, 그중 일부는 거대한 난민 캠프로 변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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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고 비용 썼지만… '유령도시'로 남은 소치

역대 동·하계 올림픽을 통틀어 최대 금액인 510억 달러(약 55조 원)가 투입된 대회다. 동계 올림픽이 하계 올림픽 규모의 1/4에 불과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수치다. 냉전을 끝낸 러시아가 독립 후 처음 개최하는 국제 대회였기에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다. 푸틴은 올림픽을 통해 '강대국' 면모를 알리고, 인구 40만 명의 소도시 소치를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만들고자 했다.

의도는 좋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소치는 관광 명소가 되기는커녕, 성수기에도 호텔이 텅텅 비는 유령도시가 됐다. 올림픽 1년 만에 소치의 열차 운행 횟수는 1/10로 뚝 떨어졌고, 일부 노선은 폐지됐다. 올림픽 시설에 투자한 러시아의 재벌들은 손실이 발생하자 정부에 이를 팔아넘기기에 나섰다. 러시아는 버려진 올림픽 경기장을 개조해 2018년 월드컵에 활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대책은 없을까?

많은 국가들이 올림픽을 치른 후 빚에 허덕이자 '승자의 저주'라는 말도 생겨났다. 개최권을 따낸 '승자'에게 내려지는 저주란 뜻이다. 이런 폐해를 막기 위해 일부에선 올림픽 영구 개최를 위한 도시를 만들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리스 연안에 '올림픽 섬'이라는 독립국을 만들자는 건데, 올림픽 인프라 구축에 큰돈이 드는 걸 감안하면 한가지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쉽게 실현될 일은 아니다.

당장 올림픽 개최가 예정된 국가들은 이전의 성공 사례들을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올림픽 개최 도시들은 빚더미에 허덕였지만, 그 와중에 흑자를 남긴 올림픽도 몇 있었다. 물론 그 성공 뒤에는 특별한 노력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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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스키점프대 아래 수영장을 만든 미국 솔트레이크 시티. 스키점프대 아래 축구장을 만들어 여름에 활용하는 평창 알펜시아 경기장. 캘거리올림픽 오벌 경기장. /조선DB·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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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의 승리, 보기 드문 흑자 올림픽
1984년 열렸던 LA 올림픽은 대표적인 흑자 올림픽으로 꼽힌다. 당시 LA는 시민 80%의 반대를 무릅쓰고, 공적 자금을 거의 지원받지 않고 올림픽을 준비했다. 대신 올림픽 로고 사용권을 최초로 기업들에게 팔고 경기장 이름에 기업명을 넣어주는 방식으로 후원금을 모았다. 대신 경기장 건설에는 최소한의 비용을 썼다. 올림픽을 민간 재정 중심으로 치른 첫 사례로 꼽히는 LA 올림픽은 약 2억 달러의 흑자를 냈다.

경기장의 사후 활용
면적 3.9㎢, 여의도 절반에 불과한 미국 뉴욕주의 소도시 레이크 플래시드. 이곳은 1932년과 1980년 두 차례 동계올림픽을 치르며 전세계에 스포츠 휴양도시로 이름을 알렸다. 레이크 플래시드는 한 두 번 쓸 시설은 가건물로 지은 뒤 올림픽이 끝난 뒤 허물었다. 대신 경기장은 대회 이후 일반 시민들이 쓸 수 있도록 신경 써 설계했다. 스키점프대 아래에 수영장을 설치해 놀이시설로 만들고, 봅슬레이와 스켈레톤 경기장도 많은 이들이 쓸 수 있도록 공간을 넓혔다. 미국은 2002년 유타주의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때도 이 선례를 참고했다.

캐나다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선 흑역사를 썼지만, 이후 열린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선 흑자를 냈다. 이 역시 올림픽 시설의 사후 활용이 돋보인 예다. 스키점프대에는 집라인(zip-line)을 연결했고, 여름철엔 스키장 전체를 산악 자전거 코스로 변모시켰다. 또한 캘거리의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인 캘거리 오벌은 30년째 '세계 최고의 빙질'을 자랑하고 있다. 이 덕분에 세계 대표팀이 훈련을 위해 매년 찾는다.


한때 '올림픽 개최국' 타이틀을 얻는 건 많은 나라들의 소망이었다. 우리나라도 1988년 성공적으로 올림픽을 치르며 '한국'과 '서울'을 전세계에 알렸던 역사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올림픽 개최에 따른 경제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것을 수년간의 세월이 증명하고 있다. 단지 올림픽 뿐 아니라 아시안게임, F1 그랑프리 등 여러 국제대회에서 유치 기피 현상이 나타난다. '세계인의 스포츠' 올림픽을 지키기 위해 이제 세계인이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구성=뉴스큐레이션팀 정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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