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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유전자 가위로 바이러스 제거한 '청정 돼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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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과학자들이 돼지 몸에 있는 바이러스 유전자를 원천적으로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돼지는 심장이나 신장 같은 장기의 기능이나 크기가 사람과 비슷해 이식용으로 연구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이종(異種) 장기 이식은 돼지에 있는 질병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옮겨올 가능성이 있어 상용화를 가로막았다. 바이러스 문제 해결에 이어 최근 면역거부반응을 없앤 돼지도 잇따라 개발됐다. 장기이식용 돼지 연구가 급물살을 타면서 머지않아 이식수술을 기다리다가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유전자 가위로 바이러스 DNA 제거

미국 하버드대 의대 조지 처치 교수와 바이오 기업 이제너시스(eGenesis)의 루한 양 박사 연구진은 지난 11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돼지 고유의 바이러스를 없앤 복제 돼지를 탄생시켰다고 밝혔다.

조선비즈

자료:이제너시스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미국에서는 현재 11만7000여 명이 장기이식을 기다리고 있지만 올해 장기이식을 받은 환자는 1만7000여 명에 그쳤다. 돼지 장기로 사람 장기를 대체하는 이종 장기이식은 이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인 것이다.

문제는 돼지 DNA에 '돼지 내인성(內因性) 레트로바이러스(PERV)' 유전자가 끼어 있다는 점이다. 과거 돼지에게 감염된 바이러스가 오랜 진화 과정에서 돼지 DNA와 한몸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험 결과 이 바이러스는 사람 세포에 감염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자칫 새로운 질병이 발생할 수 있다. 에이즈도 동물에게 감염되던 바이러스가 사람으로 옮겨오면서 발생했다.

연구진은 먼저 돼지 DNA를 모두 분석해 25군데에서 레트로 바이러스를 찾아냈다. 다음에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썼다. 유전자 가위는 목표가 되는 DNA에 달라붙는 유전물질과 절단 효소를 결합시킨 형태다. 연구진은 유전자 가위로 레트로 바이러스를 모두 제거했다. 바이러스가 잘린 자리에는 돼지의 정상 DNA가 복원됐다.

다음은 복제 과정이었다. 바이러스를 제거한 돼지 세포를 돼지 난자와 융합시켜 복제 수정란을 만들었다. 최종적으로 대리모 8마리에서 복제 돼지 30마리가 태어났으며, 절반이 장기이식을 할 수 있을 정도인 4개월 반까지 자라는 데 성공했다. 돼지들은 모두 DNA에서 바이러스가 사라진 상태였다.

면역거부 원천 차단한 돼지도 탄생

이종 장기이식을 가로막는 또 다른 장벽은 면역거부반응이다. 과학자들은 돼지의 면역거부 유발 유전자를 바꾸는 연구를 진행했다. 미국립과학원(NIH) 연구진은 2015년 면역거부와 관련된 유전자 3개를 바꾼 돼지의 심장을 원숭이에게 이식해 945일까지 생존하는 기록을 세웠다.

우리나라는 최근 미국을 따라잡았다. 국립축산과학원은 올해 돼지 유전자 하나를 없애고 사람 면역 유전자 두 개를 집어넣은 돼지 '사랑이'를 탄생시켰다. 축산과학원 황성수 박사는 "또 다른 3가지 유전자를 바꾼 돼지도 현재 세포 단계까지 발전했다"고 말했다. 세포를 복제해 유전자 3개를 바꾼 돼지가 늘어나면 원숭이에게 장기를 이식하는 실험에 들어갈 수 있다.

돼지 몸에서 사람 장기를 키우는 방법도 있다. 올 초 미국 소크연구소 과학자들은 사람 세포를 원시 상태인 줄기세포로 바꾼 다음, 돼지 수정란에 주입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대리모 자궁에 착상한 수정란은 28일이 되자 사람 세포가 자란 것이 확인됐다. 돼지 수정란에서 심장을 만드는 유전자를 없애고 사람 줄기세포를 넣으면 돼지 몸에서 이식용 사람 심장을 키울 수 있다는 말이다. 황성수 박사는 "앞으로는 의사들과 함께 사람과 같은 영장류에 돼지 장기를 이식하는 경험을 축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면역거부가 덜한 각막이나 췌도는 실제 환자에게 이식하는 단계이다. 박정규 바이오이종장기사업단장(서울대 의대 교수)은 "내년부터 돼지 각막과 췌도를 실제 환자에게 이식할 계획"이라며 "이종 장기이식을 상용화하려면 관련 법규도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yw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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