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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기다리는 맛에 빠진 ‘맛집앞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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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맛집에서 특정 음식을 먹기 위해 줄을 서 본 경험은 누구나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굳이 줄을 서면서까지’였다면 이제는 ‘시간이 얼마나 걸려도 먹겠다’는 시대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속담이 요즘 같이 맞아떨어지는 때도 없다. 서울 종로구의 한 삼계탕 전문점에서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 동아일보DB


11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삼계탕 전문점. 말복인 이날 삼계탕을 먹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식당 입구부터 긴 줄이 만들어졌다. 5분이 지나도 줄은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궁금했다. 근처에 다른 삼계탕 전문점도 보이던데 왜 하필 이 식당에서만 줄을 서면서까지 기다리는 것일까.

“이 부근에서 이 식당이 최고 맛집이죠.” “부장님이 이곳에서 먹자고 해서요.” 저마다 식당을 찾은 동기는 달랐지만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식당 안에 들어서기까지 평균 30분이 걸렸다.

최근 TV 요리 프로그램과 인터넷 블로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전국의 숨어있는 맛집을 쉽게 알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이제 더 이상 숨은 맛집이나 자신만 알고 있는 맛집은 없다. 가격에 상관없이 점심과 저녁 시간 맛집 줄서기는 흔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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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업체 엠브레인에 의뢰해 지난달 25, 26일 20∼40대 일반인 600명을 대상으로 모바일 조사를 실시했다. 한 끼 식사 또는 한 잔의 음료수를 먹기 위해 어느 정도의 시간을 기다릴 수 있는지 물었다. 응답자 96%가 식당에서 5분 이상 줄을 서 본 적이 있는 가운데 61.5%가 30분까지는 기다릴 수 있다고 대답했다. 10여 분의 짧은 식사를 위해 1시간까지 인내심을 가질 수 있다는 응답자도 무려 17.3%에 달했다.

실제 맛집으로 소문난 일부 식당에서는 1시간 기다려 먹는 것은 기본이다.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의 일식집 등은 주말에 2시간을 기다려 먹었다는 ‘소설’ 같은 이야기가 SNS를 통해 나온다. 맛집으로 알려진 서울의 한 냉면집 주인은 “줄을 서다 연인이 싸워 헤어지기도 하고, 잠시 화장실을 갔다 온다며 자리를 이탈했다 싸움으로 번진 적도 적지 않다”고 했다.

그래도 국내 맛집은 다시 갈 수 있어 다음을 기약하지만 외국에서는 사정이 달라진다. 한 음식평론가는 “일본, 유럽 등의 맛집에서는 3∼4시간을 기다렸다가 먹는 관광객이 많다. ‘언제 다시 오겠나’라는 심리에다 SNS에 과시용으로 올리기 위해 이처럼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식당뿐만이 아니라 음료수나 간식을 파는 맛집에서도 줄서기는 필수다. 강원 삼척의 M 제과점은 5000원짜리 꽈배기를 먹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는 풍경이 펼쳐진다. 여자친구와 함께 오전 8시부터 기다렸다는 박민수 씨는 “다행히 꽈배기가 품절되기 전에 구매를 했지만 내가 이렇게까지 해서 먹어야만 하나라는 자괴감이 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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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입장에서 줄을 서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줄서는 집=맛집’이라는 인식 때문에 번호표나 대기명단을 일부러 사용하지 않는 곳이 많다. 한 레스토랑 대표는 “일부 식당은 개업할 때 친척, 지인들을 부르거나 사람을 고용해 줄을 세우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지호 경북대 심리학과 교수는 ‘맛집 줄서기’의 심리에 대해 “최근 똑같은 비용을 쓰더라도 가치 있는 소비를 원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며 “여기에 기다려서 먹는 것을 재미로 여기거나 SNS의 영향으로 희소성을 추구하는 이가 늘고 있다”고 했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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