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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장애인은 엄마 자격 없나요] 친구들이 놀릴까봐… 장애부모 학교 오지 말라는 자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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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인권감수성 메마르게 하는 가정·학교교육 / 이기심·입시경쟁에 인성교육 등한시 / “단순히 편견 갖지 말라면 될지 의문” / 학교·교사부터 장애 이해 교육 시급 / “인성 교육 시급한 대상, 아이 아닌 부모” / 자녀 인격 형성 영향 커 인식변화 필요 / 형식적 강연 탈피… 공감대 형성 유도를

세계일보

뇌병변 장애 2급인 이수정(38·여·가명)씨는 23일 “딸아이가 점점 나를 멀리하다 엄마의 ‘장애’ 자체를 미워하게 되면 어쩌나 겁이 난다”며 근심어린 낯빛으로 속내를 털어놨다.

“딸이 지난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로 엄마를 바라보는 눈빛이 예전만큼 다정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2학년이 된 올해는 ‘애들이 (엄마를) 이상하게 보는 것 같으니 학교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달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매몰차게 들렸지만 우리 애가 학교 친구들한테서 무슨 모진 말을 들었길래 이럴까 싶어 가슴이 쓰라렸다고 한다. 그는 “장애인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강한 딸로 자라줬으면 한다”며 “아이를 생각하면 솔직히 장애인에 대한 물질적 지원보다 사회와 학교에서 장애 이해 등 인권의식이 제대로 확립되는 게 더 중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의 딸이 겪은 마음의 상처는 비단 장애인 가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혼·조손가정이나 가난한 집 자녀, 스스로 장애가 있거나 외모가 특이한 아이 등은 아동·청소년기에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십상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여서 자신과 타인의 처지를 자연스레 비교하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는 심지어 아무런 잘못도 없이 또래들로부터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면서 자기 가정과 사회에 대한 불만이 증폭되기도 한다. 자녀나 학생들에게 약자에 대한 배려를 잘 가르치기보다 그저 ‘내 자식만, 우리 가족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이기심과 입시경쟁 교육에 치우쳐 인성·인권교육을 등한시하는 가정·학교의 탓도 크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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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무슨 잘못, 학교·교사부터 달라져야

“단단하게 굳어진 사회적 편견을 단지 학생들에게 ‘갖지 말라’며 일방적으로 주입한다고 단번에 그리 될까요?”(신형석, 중학교 사회과 교사)

교육현장의 장애인식 실태와 관련해 취재팀이 심층 인터뷰한 10여명의 초중고 교사들은 충실한 인식개선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거의 모든 비장애인 학생이 획일적인 입시교육을 받고 있는 형편에 1년에 45분씩 두 차례의 형식적인 장애인식 개선 교육은 별 효용성이 없다고 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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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지역 대안학교인 남해 상주중학교 여태전 교장은 “(어려서부터) 학교성적과 집안 재력, 외모 등으로 끊임없이 점수가 매겨지는 아이들에게 ‘장애인 차별을 하지 말고, 편견을 버려라’는 메시지를 설파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블랙 코미디”라고 꼬집었다. 입시경쟁으로 생긴 스트레스를 상대적 약자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에게 풀기도 하는 현실에서 무작정 동료를 진심으로 배려하고 챙겨주는 자세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욕심이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교육 현장에서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인권보호와 건강한 공동체의 중요성 등을 습득하도록 하는 풍토 조성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아울러 입시 위주 교육을 완화하고 제대로 된 장애·비장애 통합교육을 확산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장애이해 등에 대한 내실있는 교육과정과 교사들의 인식개선 교육, 각 학교 편의시설 확충 등이 절실한 이유다.

그러나 장애이해 교육만 해도 교육부 국립특수교육원(www.nise.go.kr)에서 다양하고 유익한 학습자료들을 제공하고 있지만 이를 알거나 해당 자료들을 적극 활용하는 교사는 드문 실정이다. 석지현(31·여) 초등학교 교사는 “학생들에게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 장면들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찍어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제보해보라고 하는 등 열심히 하는 선생님들도 있지만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교사들을 위한 적절한 연수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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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 인식과 태도 변화도 중요

자녀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부모들에 대한 교육도 절실하다. 특수교육학 전공의 30년차 베테랑 교사 A(54)씨도 편견으로 약자에 대한 차별을 당연시 여기는 듯한 학부모를 만나면 답이 안 나온다고 했다. 한번은 자기 반에 자폐가 있는 학생이 배정됐는데, “일부 학부모가 찾아와 ‘모자란 애가 왜 우리 아이들과 같은 반에 들어와 어슬렁거리며 교실을 휘젓고 다니게 하느냐’고 거센 항의를 했다”며 “인식개선 교육이 시급한 대상은 아이들보다 부모들”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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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과 청소년들이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인권존중 의식 등 민주시민으로서의 소양을 갖추려면 부모와 교사들부터 올바른 인식을 갖고 가정과 학교에서 제대로 교육을 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진은 2014년 6월 서울시교육청 주최로 서울 노원구 계상초등학교 다목적실에서 열린 학부모 대상 장애이해 프로그램에서 참석자들이 강사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는 모습. 장애여성공감 제공


한 중학교 교사는 “선진국 사례를 보니 청각장애 제자가 있는 학급의 담임이 그 아이를 위해 틈틈이 석 달간 다른 급우들에게 수화를 가르치는데 모든 학생이 이해하고 따라하더라”면서 “과연 우리나라 학부모들이라면 이해하려 할까. 귀한 학습시간 허비하지 말라며 불만을 제기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일부 시도 교육청에서는 2011년부터 비장애인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장애인권 교육’사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시행 횟수도 적고 학부모 참여율도 낮아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은 “무조건 장애인을 포용하자는 식의 (일방적인) 강연 형식이 아니라 서로의 입장과 실상을 솔직하게 터놓고 토론하는 자리들이 많아져야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인식개선의 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별기획취재팀=이강은·최형창·김라윤 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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