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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밀착취재] 무관심부터 짜증까지…'긴장감 없는' 민방위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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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 '무관심' 공무원 '시늉만' / 한반도 안보 위기 속 인식 부족 지적 / 공공요원, 양해 부탁하며 호소 / 일부 공무원들, 남 일인 듯 잡담 / 해당 지자체 “정말 그렇던가요?” / 사이렌 소리 울려도 참여 저조/ 일부 짜증 섞인 눈빛·통제 무시/“진짜 미사일 쏘면 어쩌나” 우려

세계일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속에 23일 전국에서 대대적인 민방위 훈련이 실시됐지만 일부 지자체 공무원들은 시간 때우기식으로 잡담을 나누거나 건성으로 훈련에 임했다. 일부 시민들은 훈련을 귀찮게 여기고 건물 내 대피 상황에서 멋대로 길을 가는 등 엄중한 한반도 상황과 달리 매우 안이한 모습이었다. 당국의 홍보 미흡으로 민방위 훈련이 실시되는지조차 모르는 시민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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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성건성 훈련, 공공근로 어르신 “뭐 해야 할지 몰라”

“애앵∼∼.” 23일 오후 2시 서울지하철 강남역 1번 출구.

‘제404차 민방위의 날 민방공 대피훈련’을 위해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리자 대부분의 시민은 계단에 멈춰서서 민방위 훈련에 동참했다.

반면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같은 역 12번 출구는 딴판이었다. 젊은 남녀 공무원은 민방위 훈련이 본인들과 전혀 상관없다는 듯 한쪽에 서서 밝은 표정으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원래 이들 공무원은 시민들이 대피소에 남아 훈련에 동참하도록 안내해야 했다.

그 사이 공공근로요원으로 나온 고령의 시민 2명이 경광봉을 바쁘게 내저으며 역사 내로 들어가라고 시민들에게 안내했다. 이들은 지하철역을 나가려는 시민들에게 “잠깐이면 되니 양해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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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공공근로요원으로 민방위 훈련에 동참한 이들은 △오후 2시 훈련 시작 △오후 2시5분 차량 통행 재개 △오후 2시15분 공습경보→경계경보 전환, 보행자 통행 재개 등 기본적인 훈련 진행상황을 전혀 고지받지 못한 상태였다.

공공근로에 나온 A(71)씨는 “어떻게 시민들을 안내해야 하는지 전혀 교육받은 게 없어 뭘 해야 할지도 몰랐다. 훈련 시작 때부터 아무것도 못했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공공근로 요원 B(72)씨는 기자가 “이제 훈련이 끝났다”고 말하고 나서야 민방위 훈련상황이 종료됐음을 깨달았다.

강남구 관계자는 “수서역에서 규모가 큰 훈련을 했고 을지훈련기간이어서 야간근무를 한 직원들이 다 퇴근해 인원이 부족했다”며 “사전교육을 다 했는데 (공무원들이) 정말 그렇게 하던가요?”라고 되물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중앙정부에서 훈련요령에 대해 소개한 유인물을 무려 40만장 배포했고 지자체에서도 교육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훈련 통제하러 나간 공무원들이 시간 때우기식으로 나가 잡담을 나누는 건 공무원의 자세가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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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시민들, 훈련에 눈총도

같은 시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안의 시민들은 민방위 훈련과 관련한 긴장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합실 TV화면에서는 ‘민방위 훈련’ 특집방송이 나왔지만 시민들은 무덤덤했다. 각자 자신의 휴대전화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귓가에 울리는 사이렌에는 관심도 두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대전에서 출장을 왔다는 회사원 김모(32)씨는 “오늘 민방위의 날 훈련이 있는지도 몰랐다”며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황에 적절한 훈련인 건 알겠지만 솔직히 와닿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 송파구에 사는 정모(67)씨는 “예전에는 민방위 훈련을 하면 국민이 열심히 참여했는데 요즘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다”며 “이러다 북한이 정말 미사일이라도 한 발 쏘면 다들 어떻게 대처하려고 그러는지…”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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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방공 대피훈련이 실시된 23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훈련 경보 발령으로 모든 통행이 통제된 거리를 시민들이 평소와 다름없이 걷고 있다.


서울역 바깥에선 훈련을 무시하는 일부 시민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사이렌이 울린 후 오후 2시15분까지 건물 안에서 대기해야 했지만 일부 시민들은 자기 갈 길만 재촉했다. 철도경찰이 시민들의 이동을 통제하며 “역 안에 잠시만 계세요. 지금 밖으로 나가면 안 됩니다”라고 안내를 했지만 본체만체하거나 되레 철도경찰에게 짜증 섞인 눈빛을 보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 종합상황실을 방문해 민방공 대피훈련을 참관하며 “안보불안이 상시화, 고조화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익숙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안보불안에 둔감해지고 있다”며 “이렇게 되면 더 큰 위험을 우리가 스스로 불러오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김선영·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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