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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관객 시선을 잡아라…세계 공연 별들의 전쟁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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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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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에든버러는 맑은 하늘에 느닷없이 다녀가는 여우비가 반복되며 우리의 초가을처럼 쌀쌀하다. 하지만 이렇게 변덕스럽고 궂은 날씨 속에서도 왕가의 기품과 영광이 서린 중세도시 곳곳에서 축제의 열기가 후끈 달아오른다.

오전 9시 로열마일(Royal Mile)을 찾았다. 에든버러 성부터 홀리루드하우스 궁전에 이르는 2㎞ 남짓한 거리다. 그 옛날 왕족들의 전용도로였지만 이제는 프린지 페스티벌(지난 4일부터 28일까지)의 중심지가 된 로열마일은 이른 아침부터 공연 관람객들로 북적인다. 에든버러 인구는 약 55만명에 불과하지만 축제 기간에는 무려 450만명(BBC 보도)이 찾는다.

에든버러의 축제 분위기는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프린지 페스티벌, 군악제가 한꺼번에 치러지면서 그 절정에 달한다.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은 세월이 흐르면서 유럽의 국가들과 타 도시들이 경쟁적으로 축제를 개최하면서 상대적으로 빛이 바랬다. 대조적으로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에 정식으로 '초대받지 못한 손님'들의 잔치였던 프린지 페스티벌은 오히려 그 몸집을 불려나가며 축제의 메인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프린지 페스티벌은 매년 규모를 키워왔다. 70주년을 맞은 올해도 물론 작년 기록을 갈아치웠다. 축제가 열리는 한 달 동안 무려 58개국 3390여 단체의 작품이 공연된다. 공연 횟수로 치면 5만3000회가 넘고, 공연장도 300개에 달한다.

프린지 페스티벌은 약간의 참가비만 내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대신 참가비용은 물론 홍보와 마케팅도 단체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사무국의 역할은 워크숍 개최, 프린지 참가 안내, 아티스트 토크와 네트워킹 미팅 개최 정도다. 이 때문에 관람객들에게는 축제이지만 참가하는 공연단체들은 치열한 생존경쟁을 펼쳐야 하는 전쟁터와 같은 곳이다. 프린지 페스티벌의 평가 기준은 현지 매체들의 리뷰와 별점이다. 관객 확보는 물론 향후 해외 진출 성과도 미리 가늠해 볼 수 있어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로열마일을 비롯한 에든버러 전역은 개성 넘치는 호객꾼들의 각축장이다. 홍보 전단을 나눠주는 이들과 잠재 고객들 간 치열한 공방이 펼쳐진다. 행인들에게 쥐어진 수많은 전단지들 대부분은 불과 몇 초 사이에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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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처음 진출한 우리 공연예술단체들은 체계적인 사전 홍보와 마케팅 없이 좋은 리뷰와 별점을 받기란 쉽지 않다. 좋은 공연장을 차지하는 것도, 좌석을 채우는 것도 힘에 부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곳까지 오는 데 드는 경비도 부담스럽지만 현지에서 헤쳐 나가야 하는 난제들이 더 만만치 않다.

이번 축제 공식 부문에는 쇼핑 콩쿠르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초청받아 눈길을 끌었다. 프린지에서는 '코리아 시즌'이라는 이름으로 '타고' '앙상블 수' '스냅' '꼭두' 등 비(非)언어극 4개 작품이 참가했다. 개별 참가작도 14개에 이른다. 예년 평균 7개를 훨씬 상회하는 숫자다. 70주년을 맞은 해이니만큼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리라는 예상에 우리 단체들을 바라보는 우려의 시선도 많았다. 하지만 현지에서 만난 우리 공연단체들의 표정은 생각보다 훨씬 밝고 자신감이 넘쳤다. 넌버벌 퍼포먼스 '타고:코리안드럼2'로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참가하는 그룹 '타고'의 김병주 대표는 "총 16회 공연 중 6회나 매진됐다. 객석 점유율도 85% 이상으로 지난해보다 휠씬 높다"고 말했다.

올해 처음 페스티벌에 참가한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연극 '메데아 온 미디어'는 "언어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미디어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 던지는 질문이 날카롭다"(더 리스트)는 호평과 함께 별 셋 평점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더 가디언(The Guardian)'지의 추천 공연 27개 중 하나로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극단 관계자는 "훌륭한 작품성도 자랑할 만하거니와 사전에 언론 홍보를 치밀하게 계획한 덕분"이라며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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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 관람 중인 김선영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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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든버러 프린지에서의 성공 여부는 전 세계에서 온 관객, 1000명 이상의 공연예술 관계자 그리고 1000개 이상의 매체를 대상으로 한 홍보·마케팅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문화체육관광부의 에든버러 프린지 참가 지원은 항공료, 화물료 등 참가비용을 덜어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올해부터 참가단체의 홍보·마케팅을 보다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사전에 에든버러와 영국 현지 주요 언론사, 프로모터, 프린지 사무국 소식지 등 다양한 홍보채널을 풀가동했다. 에든버러 프린지 공식 프로그램북 광고는 물론 각 단체별 작품 소개 등 주요 정보를 담은 홍보 책자도 제작해서 배포했다. 주영 한국문화원은 런던에서 별도의 쇼케이스를 열어 사전 홍보를 했다. 이 밖에 참가를 희망하는 공연단체들을 대상으로 홍보전략 세미나와 컨설팅, 영국 현지 코디네이터 활용 지원, 온라인 배너광고 등 다각적인 지원이 이뤄졌다.

에든버러 프린지에 참여하는 공연예술단체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이들의 국제무대 진출을 위한 공공의 지원은 이제 현지 '관객 개발'을 위한 홍보·마케팅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밤 10시가 훨씬 넘은 시각, 로열마일은 공연 팸플릿을 나눠주는 공연단체 사람들의 발길로 여전히 분주하다.

[에든버러 = 김선영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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