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19 (화)

사드로 노출된 '이름 뿐인 동반자'…한·중 관계 현주소는

댓글 8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썰렁한 한·중관계 현주소는 / 中 몽니에 현지기업·교민 직격탄 / ‘정경분리’ 암묵적인 공감대 깨져 / 전체 업종 매출 40% 감소 조사도 / 中 투자자, 당국 눈치에 투자 쉬쉬 / 전문가들 “변화 인정… 활로 찾아야 / 경쟁관계로 패러다임 전환 필요”

세계일보

4반세기를 이어온 한·중 관계가 기로에 섰다. 지난해 7월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이 경제협력 분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면서 양국 교류가 크게 위축됐다. 양국은 1992년 수교 이후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북한 변수와 이에 따른 한·미동맹 강화 등으로 협력과 갈등을 되풀이하면서 긴장관계를 유지해왔다. 반면 경제 분야에선 상호보완적 구조를 구축하며 두 나라 모두 ‘윈윈’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는 양국이 ‘정경분리’ 원칙에 대한 암묵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선을 넘지 않도록 노력한 결과다.

그러나 사드 갈등 이후 안보 이슈가 경제협력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북핵 변수를 고려할 때 앞으로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변화된 한·중 관계를 빨리 인정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나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세계일보

◆사드 후폭풍, 현지 기업·교민에 직격탄… “생각하고 싶지 않은 악몽”

지난해 7월부터 조성된 사드 갈등 국면은 우리 문화·관광산업에 직접적인 타격을 줬을 뿐만 아니라 통상무역 등 경제 부문에도 점차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의 수출품이 점점 중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중국 측 파트너와의 계약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특히 중국 진출 기업과 교민이 겪는 불안감과 경제적 피해는 점점 커지고 있다.

전체 업종에서 약 40%의 매출이 감소했다는 중국한국인회의 자체 조사도 있다. 엔터테인먼트산업에 종사하는 기업인 A씨는 지난해 7월 사드 갈등 이후 겪은 상황에 대해 “지옥이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악몽이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난해 8월 론칭을 목표로 중국인과 함께 합작회사를 추진했지만 7월 이후 갑작스럽게 투자하지 않겠다고 통보해와 파산 위기에 몰렸다. 다행히 지난 4월 한국에서 자금을 새로 투자받아 사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불안해서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호소했다.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글로벌혁신센터(KIC)가 올해 들어 베이징에서 몇 차례 주최했던 한국 벤처기업 스타트업 발표회에서도 중국 투자자들은 한국 기업에 투자한다는 소문이 나지 않도록 참가자 명단을 공개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언론 인터뷰에도 익명을 전제로 응했다.

한국 제품은 통관에서부터 어려움을 겪으며 중국 소비자의 외면으로 판매대에서 사라지고 있다. 한국 제품이라는 표기가 있으면 현지 유통·판매업체 등이 보이콧하는 실정이라고 한 교민이 전했다. 롯데마트는 사드 갈등 이후 영업정지가 6개월째 풀리지 않은 가운데 중국 정부로부터 추가 제재를 받게 됐다. 23일 북경청년보 등에 따르면 롯데마트의 일부 발전기가 에너지 과다 사용을 이유로 몰수당해 경매 대상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일보

세계일보

◆질곡의 25년, 새로운 관계 설정 필요… “보완적 관계에서 경쟁적 관계로”

한·중 양국은 1992년 수교 이후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다. 2003년 노무현정부에서는 ‘전면적 협력동반자 관계’, 2008년 이명박정부에서는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외적 성장을 했지만 북핵 등 한반도 안보 상황에 따라 양국 관계는 살얼음판을 걸었다. 한반도 급변 사태 가능성이 높아질 때마다 ‘이름뿐인 동반자’라는 한·중 관계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곤 했다.

2012년 1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때가 대표적 사례다. 당시 정부는 중국과 경제적 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외교·안보적 협력도 공고히 해왔다고 자부해왔지만 김 위원장 사망 이후 한국 정부는 약 52시간 동안 중국 당국과 외교소통 마비 사태를 겪었다.

세계일보

‘한·중 수교 25주년 리셉션’ 행사장 입장 김장수 주중 대사(오른쪽)와 천주(陳竺)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 부위원장이 23일 베이징 그랜드 하이엇 호텔에서 열린 ‘한·중 수교 25주년 리셉션’ 행사장에 입장하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사드 배치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은 사드가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훼손한다고 판단한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핵 공격 능력에 대한 최소한의 반격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는 방어망 구축에 사드가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중국 정부의 ‘전략적 이익’ 훼손과 우리 정부의 ‘생존 논리’가 부딪치면서 2015년 망루외교로 전성기를 자랑했던 양국 관계는 사드 이후 급속히 냉각됐다. 이 같은 충돌의 배경에는 과거 상호보완적이던 양국 경제협력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사실도 요인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이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경제정책을 변화시키고, 고부가가치산업 육성 등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 과거 양국 경제협력의 기반이 됐던 분업구조가 약화하면서 상호 보완성이 약화하고 경쟁적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병유 한국무역협회 베이징지부장은 “사드 갈등이 해소되더라도 우리는 중국과 더욱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대중 관계 설정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고 있다”고 밝혔다.

베이징=이우승 특파원 wslee@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 Segye.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