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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흥행작 내도 적자…공연계 모순 혼자 떠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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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수로 프로젝트’ 최진 대표 궂긴소식으로 돌아본 공연계

좁은 시장·톱배우 출연료 인상 등 과열경쟁 탓 제작비 껑충

작품 만들수록 수익구조 나빠져…정부지원책 내실 못 채워


한겨레

아시아브릿지컨텐츠의 ‘김수로 프로젝트’ 14탄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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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명망 있는 공연제작자의 부고가 공연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공연제작사 아시아브릿지컨텐츠의 최진 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김수로 프로젝트’로 알려진 아시아브릿지컨텐츠는 창립 이후 7년간 연극과 뮤지컬 등 굵직한 공연 20편을 제작했다. 계속된 흥행 성공에 고무되어 2015년에는 영화 <마차 타고 고래고래>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러나 2년 전부터 수익 악화로 흔들리기 시작했고, 결국 회사는 지난 3일 서울회생법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지난해 비슷한 이유로 극단 적도의 홍기유 대표가 세상을 떠난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연달아 두 명의 동료를 하늘로 보낸 공연계 인사들은 황망해하고 있다. 두 제작자가 스스로 삶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에 무력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경영난을 겪긴 했지만 두 제작자는 대중으로부터 사랑받는 흥행작을 다수 제작했기 때문이다.

연극·뮤지컬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공연계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이번 사건을 ‘개인의 비극’으로 치부한 채 공연 제작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실무적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이런 일은 언제라도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실례로 뮤지컬 시장만 봐도 그 규모는 몇년 새 빠른 속도로 성장했지만 제작사들의 수익구조는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한겨레> 8월17일치 ‘살아남으려 창작뮤지컬’ 참조) 박병성 뮤지컬 평론가는 “작은 시장 안에서 많은 작품이 쏟아지다 보니 과열경쟁이 벌어졌고, 그로 인해 제작비가 상승하면서 수익이 나도 크지 않게 된 것이다. 종종 뮤지컬계에서 들리는 출연료 미지급 사태나, 건실한 뮤지컬 제작사의 파산 소식은 이런 열악한 시장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현재 공연시장을 진단했다.

유희성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 또한 공급 과잉으로 인해 전체 시장이 아무도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로 변했다고 꼬집었다. 유 이사장은 “갖가지 지원정책 덕분에 뮤지컬이 활성화될 수 있었지만, 이러한 지원책이 시장의 양적 팽창만 가져왔을 뿐 부실한 내실을 채우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 회장을 지낸 손상원 정동극장장은 이렇게 운을 뗐다. “며칠 전 만난 후배 제작자는 누적적자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다고 했다. 흥행에 성공해도 수익률이 낮은데, 심지어 실패하면 손실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그는 공연계 선배들이 십시일반으로 제작에 어려움을 겪는 후배들을 도왔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작품이 흥행에 실패하면 그 경제적 타격이 개개인에게 돌아간다. 또한 스태프와 출연진 등 현장 인력이 제대로 개런티를 챙기지 못하는 사례도 허다하다. 그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구조를 개선하려면 정부와 공연계가 나서야 한다며 “정부는 안정적으로 공연을 제작할 수 있게 정책을 마련하고, 공연계는 무리하게 공연을 제작하지 않는 자정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손상원 극장장은 외국 사례도 해법의 하나로 들었다. “외국에선 신인 프로듀서가 공연을 올릴 경우, 극장프로듀서연합회에 공연 3주치 보증금을 낸다. 그리고 3주간 공연실적을 따져 러닝코스트를 넘기면 보증금을 돌려주고, 넘기지 못하면 그 돈으로 배우·스태프에게 개런티를 지급한다. 이밖에도 외국의 다른 좋은 제도를 차용해 우리 실정에 맞게 적용할 때가 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연계 관계자는 “예매사이트 5위에 들어도 수익 내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뮤지컬 공급을 조절할 수 있는 곳은 결국 공공극장밖에 없다. 공공극장이 나서서 뮤지컬 대관을 줄여야 할 때가 왔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톱배우들을 중심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뛰는 개런티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우 간의 큰 소득격차도 문제지만, 제작사 사이를 오가며 몸값 경쟁을 부추기는 매니지먼트사의 비윤리적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작자 중 이 문제의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사람이 몇이나 될까. 톱배우를 잡으려 경쟁적으로 출연료를 올려온 탓에 제작자 대부분이 피해자인 동시에 공범이다. 결국 해결책을 내기 위해 머리를 모아야 하는 것도 공연인들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정인석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 회장은 이번주 안으로 협회의 공식 발표가 있을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김일송(공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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