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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토)

이런데도 믿어야 할까요…식약처 뒷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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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그래픽뉴스]

2008년 ‘멜라민 분유’부터 2017년 ‘살충제 달걀’까지

‘오락가락’ 해명·‘늑장 대응’· ‘안이한 대처’ 일관

“오히려 국민 불신 키운다” 지적도



연일 ‘살충제 계란’으로 시끄럽습니다. ‘먹거리 안전’을 책임지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함께 미숙한 대처로 국민들에게 뭇매를 맞고 있죠. 최근 논란이 된 ‘생리대’ 이슈도 마찬가집니다. ‘의약외품’으로 분류되는 생리대 역시 식약처 소관인데요, “식약처가 소극적으로 대처한다”는 원성이 쉬이 가라앉지 않습니다.

어쩐지 이런 논란, 기시감이 듭니다. 그래서 찾아봤습니다. 10년 전에도, 5년 전에도, 지난해에도 국민들은 불안에 떨었고, 식약처는 안이한 대처로 비판받았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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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멜라민 분유

2008년 중국발 멜라민 분유 파동을 기억하시나요?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청은 늑장 대처로 도마에 올랐습니다. 파동이 일어난 지 열흘이 지나서야 해당 성분이 포함된 모든 중국산 식품의 수입을 중단했죠. 이미 안전성 확인 없이 시중에 풀린 제품이 수두룩한데다 원산지 표시도 허술해 ‘사후약방문’이란 지적도 있었습니다.

식약청은 지난 26일 검사가 끝나지 않은 품목 305종의 판매를 금지했다가, 이날 같은 품목에서도 유통 기한별로 멜라민 검출 여부가 다르게 나오자 애초 검사 대상으로 선정한 품목 428종 전체를 다시 판매금지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태도를 보였다.

당시 다른 부처 관할이라는 이유로 멜라민 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고, 임기응변식 대응이 소비자의 혼란을 키웠다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더 큰 문제는 지난해 3월 중국산 사료를 먹은 개와 고양이들이 병에 걸리면서 멜라민이 문제로 부각됐지만 식약청은 이를 농수산식품부 관할로 치부해 수입식품 독성 검사 항목에 포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결과 어떤 제품에 멜라민이 들어갔는지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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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석면 베이비파우더

이듬해에는 ‘석면 베이비파우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시중에 팔리는 베이비파우더 및 어린이용 파우더 중 ‘탈크’(활석) 성분이 포함된 12종에서 석면이 나온 겁니다. 당시 식약청은 이미 탈크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방치했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2004년 식약청이 의뢰해 작성된 보고서에 이미 탈크의 안전성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베이비파우더 제품에 함유된 석면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아직 알 수 없다”라며 부모들의 불안감을 키웠습니다. 유럽이 2005년부터 규제한 점을 지적하자 “우리가 좀 늦은 것 같다”는 입장만 번복했죠.

식약청은 여러 나라에서 위험성이 제기됐는데 왜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우리가 좀 늦은 것 같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보건 당국의 늑장 대처로 유럽연합보다 3~4년 정도 오래 수많은 유아들이 발암물질에 노출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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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2011년, 중금속 수산물

이번엔 수산물입니다. 2010년 서울시가 낙지머리 속 먹물과 내장에서 중금속 카드뮴이 기준치의 최대 15배 넘게 검출됐다고 발표했습니다. 이후 서울시와 식약청은 안전성 공방을 벌였고 당시 식약청은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렸죠. 

그런데 2011년 부산에서 일부 꽃게와 대게, 낙지의 내장에서 또다시 중금속 기준치를 초과한 카드뮴이 3년 연속 검출됩니다. 당시 식약청은 “국제적으로 많이 먹지 않는 내장에 대해선 기준치를 만들지 않으므로 연체류와 갑각류 내장에 연체류 근육(살코기) 기준치를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인체에 유해하다는 증거는 없지만 종합관리체계를 만들어 총노출량 중심의 안전 관리를 하고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대책은 그 다음해에야 나왔습니다. 식약청은 2012년 뒤늦게 내장을 포함한 꽃게와 낙지 등의 중금속 안전관리를 강화하는 기준을 마련했습니다. 꽃게 껍질 등에 붙은 내장에 밥을 비벼먹는 국민들의 식습관을 감안했다는 겁니다. 원래 내장을 뺀 낙지의 중금속 기준은 납과 카드뮴 모두 2ppm 이하였지만 내장을 포함할 경우 카드뮴 기준치를 3ppm이하로 새로 정했습니다. 꽃게와 같은 갑각류도 내장을 포함할 경우 납 2ppm 이하, 카드뮴 5ppm 이하로 기준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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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가습기살균제’ 성분 치약

이번에는 치약이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성분의 한 종류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 혼합물(CMIT/MIT)이 치약에 포함된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죠. 당시 식약처는 치약 149개 제품을 회수하면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회수 조처는 했는데 인체에 치명적인 해를 가하는 것은 아니다” 아리송한 설명입니다.

식약처가 “비록 사용해서는 안 되는 성분이 검출됐지만 극미량이어서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라고 덧붙였지만 “업체의 입장만 대변하고 있다”는 소비자들의 거센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더 큰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은 이런 상황을 방치하고 있다가 뒤늦게 자신이 문제점을 적발한 것인 양 시치미를 떼고 있는 식약처입니다.

식약처는 지난 9월26일 이례적으로 다음날치 신문의 초판 마감까지 지난 시각, 치약에 CMIT/MIT가 함유된 것으로 확인됐다는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이 자료 배포는 정의당 이정미 의원실 보좌진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제출된 문서까지 추적해 어렵게 확인한 성과를 가로챈 것입니다. 자신들의 노력은 언급조차 없는 식약처발 기사를 보고 당황한 이 의원실에서 추궁하자, 식약처 관계자는 이 의원실의 제보로 기사를 쓴 한 조간 신문의 다음날치 초판 기사가 저녁에 미리 나온 것을 입수해 보도자료를 작성했다고 털어놨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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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살충제 달걀과 생리대

이쯤 되면 낯설지 않습니다. 이번 ‘살충제 달걀’ 사태에서도 식약처는 ‘오락가락’ 해명으로 오히려 불안을 키웠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전문가들도 한 목소리로 우려를 표합니다. 

“이번에 검출된 5개 살충제 성분 가운데 일부는 독성이 강하고 일부는 발암성이 있다. 게다가 살충제가 든 달걀을 지금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먹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안전성을 단언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때도 유해물질 허가, 생산, 판매, 사후관리 모두가 제대로 작동이 안 됐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총체적인 난맥상이 드러난 것이다.” - 정진호 서울대 약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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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물질이 검출된 생리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식약처는 문제가 된 ‘릴리안’ 생리대를 정기 품질검사에 포함하겠다고 밝혔다가 파장이 커지자 “‘릴리안’ 검사 결과에 따라 전수조사도 검토하겠다”고 한 발 물러났습니다. 

■‘청→처’ 승격 됐지만 안전관리 예산은 줄어든 식약처

박근혜 전 대통령이 ‘불량식품’을 ‘4대 악’(惡)으로 지정했던 것 기억하시나요? 2013년 1월, 박근혜 정부 인수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소속 식약청에서 총리실 소속 식약처로 승격합니다. 입법과 정책 집행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게 된 셈이죠. 국민 건강을 보다 엄격하게 관리하라는 뜻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지난해 책정한 2017년도 안전 관리 예산은 오히려 삭감됐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2017년도 식약처 예산안을 분석한 결과 식품안전관리(7억1000만원), 수입축산물 검사(5억6000만원), 수입수산물 검사(3억6000만원), 의약품안전관리(15억원), 화장품지도점검(2000만원), 의약외품안전관리(4억8000만원), 의료기기안전관리(6억7000만원) 등 약 43억원 가량이 감액됐다”며 “국민들의 식품, 의약품, 의약외품, 의료기기 등에 대한 안전성 우려가 커질 것 같다”고 꼬집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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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있는 공무원, 국민의 욕심일까요

류영진 식약처장은 22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무책임한 답변과 태도로 논란이 됐습니다. 심지어 이낙연 국무총리의 질책을 “총리께서 짜증을 냈다”고 표현했습니다. 식약처의 올해 업무계획 자료를 보면 맨 첫 장에 ‘처음부터 끝까지! 식약처가 책임지겠습니다’라는 문장이 적혀있는데요, 이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남 탓’을 하는 류영진 처장의 태도에 비난이 쏟아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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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과천청사를 찾아 “공직자는 국민과 함께 깨어 있는 존재가 되어야지, 정권 뜻에 맞추는 영혼 없는 공직자가 돼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한정된 인력과 예산으로 모든 먹거리 제품이나 의약품 등을 상시 감시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건강과 직결된 사안을 담당하는 부처인 만큼 신속하고 책임있는 대응을 요구하는 건 무리일까요? ‘영혼있는 공무원’, 국민의 욕심으로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그래픽 강민진 기자 rkdalswls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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