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르포] “상추 리필이요”…삼겹살집 주인은 뒷목 ‘서늘’

댓글 3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채솟값 천정부지…상춧값 257% 폭등

-가뭄 폭염에 병해충까지…전례없는 흉작

-오징어도 금값…냉동 112.6%↑, 생물 69.3%↑



[헤럴드경제=김지윤 기자] “‘여기 상추 리필이요’ 소리에 뒷목이 다 서늘합니다”

요즘 식당 주인들 사이서 나오는 웃지못할 얘기다. 채솟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쌈채소를 내놓는 고깃집들이 상추 때문에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오죽하면 ‘티도 안나는’ 상추보다 고기 몇점 서비스 하는게 낫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다.

헤럴드경제

[사진=폭염과 폭우 등으로 인한 작황부진으로 상춧값이 257.3% 치솟았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22일 오후 3시께. 서울 서대문구 명지대학교 인근 한 고깃집을 찾았다. 방학 시즌에 점심 때가 지난 삼겹살집은 한가했다. 기자가 들어서자 주인 A씨는 마지막 손님이 머물고 간 테이블을 치우고 있었다.

17년째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주인 A씨는 “여름 채솟값이야 원래 비싸긴 하지만 올해처럼 금값인 적은 없었던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상추를 비롯한 채소는 요즘 고기보다 ‘귀하신 몸’이 됐다. 이른 더위에 폭염, 폭우가 이어지면서 밭에서 재배하는 채소류가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2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7월 생산자물가 잠정치에 따르면 축산물은 4.0% 하락한 반면 농산물은 8.4% 폭등했다. 그중에서도 상추는 무려 257.3% 뛰었다. 시금치(188.0%), 오이(167.6%), 배추(97.3%) 등도 작황이 좋지 않아 전월보다 2∼3배로 치솟은 상태다.

A씨는 “추가요금이나 가격변동은 없지만 지난주엔 상추 4kg 한 박스가 7~8만원까지 올라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시세를 아는 손님들은 리필하면서 미안한 기색을 보이기도 한다”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이곳에는 학생들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영업중이었다. 소주 2500원, 맥주 3000원 이라는 주류값에 값싸고 푸짐한 세트메뉴도 판매중이었다.

‘놀란돼지’라는 스페셜세트에는 삼겹살, 대하, 오징어, 소시지, 열무국수. 이 모든 게 2만5000원(2인기준)에 판매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이 메뉴 구성에도 변동이 생겼다. 오징어가 금값이 되면서 퇴출을 맞게 된 것. 대신 오징어의 형님 격인 낙지가 자리를 채웠다. A씨는 “오징어가 두 배 넘게 올라 차라리 낙지를 소량 넣어드리고 있다”며 “손님들은 오히려 재료가 업그레이드 됐다고 좋아하신다”고 했다.

헤럴드경제

[사진=서대문구 한 삼겹살집, 오징어 가격이 폭등해 세트메뉴의 오징어를 빼고 낙지로 대체했다.][사진=방학 시즌을 맞아 최근 손님이 30% 이상이 줄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오징어도 상추못지 않게 금값이 됐다. 주요 어장인 동해안에서 오징어 생산량이 감소했고 원양어장에서도 올해 상반기 어획량이 평년의 46% 수준인 4만3000t에 그쳐 공급이 어렵기 때문이다. 7월 생산자물가 기준 냉동오징어는 112.6%, 물오징어는 69.3%가 폭등했다.

살충제 계란 여파도 식당의 분위기를 사뭇 바꿔놨다. A씨는 “원래 셀프 계란프라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는데, 요즘 꺼리는 분이 많아 서비스를 잠정중단했다”며 “연일 부정적인 식품 이슈가 뉴스를 도배하고 있어 마음이 좋지 않다”고 토로했다. A씨가 가리킨 곳에는 손바닥만한 프라이팬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한편 이같은 서민들의 비명에 정부는 다음달 중 ‘추석 민생안정대책’을 내놓기로 했다. 추석을 앞두고 내수 진작과 함께 폭염·폭우로 부담이 커진 서민들의 생활 물가를 잡기 위한 조처다.

summer@heraldcorp.com

-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