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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박린의 뷰티풀 풋볼]이근호처럼 목숨 건 선수 10명이면 월드컵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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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7 K리그 클래식 FC서울과 강원FC의 경기. 강원 이근호가 드리블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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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뛴 박지성(36)도 대표팀에선 동료들을 위해 헌신했다. 그런데 요즘 후배들은 대표팀에서 자기만 돋보이려 애쓰는 것 같다. 이근호(32·강원)처럼 최선을 다해서 뛰는 선수가 10명만 있으면 월드컵에 충분히 나갈 수 있다. 후배들이 태극마크의 무게를 알았으면 한다".

프로축구 전북 현대 베테랑 공격수 이동국(38)은 지난달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대표팀 선수들이 이근호처럼 마치 목숨 건 것처럼 뛴다면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 나갈 수 있다는 의미였다.

축구대표팀은 31일 서울에서 이란과 아시아 최종예선 A조 9차전, 다음달 5일 우즈베키스탄과 원정 10차전을 앞두고 있다. A조 2위 한국은 3위 우즈베크에 승점 1점 차로 쫓겨 본선행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신태용(47) 대표팀 감독은 2년10개월만에 이동국을 대표팀에 발탁하면서 늘 절실하게 뛰는 이근호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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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근호가 2009년 2월 이란과의 원정 경기를 마친 뒤 인천공항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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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는 한때 '2군 선수'였다. 2005년 K리그 인천에 연습생 신분으로 입단했지만 2군을 전전했다. 그 때 먹었던 '눈물 젖은 빵' 때문인지 이근호는 쓰러질지언정 무릎 꿇지 않는다.

2007년 K리그 대구로 이적한 이근호는 '태양의 아들'이라 불릴 만큼 뜨거운 활약을 펼치며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3골을 터트리며 본선행을 이끌었다.

하지만 유럽 진출 실패와 컨디션 난조로 23명 엔트리에서 탈락했다. 남아공 월드컵 최종 전지훈련지였던 오스트리아까지 동행했지만, 대회 개막을 불과 보름 앞두고 쓸쓸하게 귀국했다.

이근호와 10년 넘게 인연을 맺고 있는 에이전트 김동호 DH스포츠 대표는 "당시 공항에서 근호를 위로하기 위해 여행을 가자고 했다. 근호가 '소속팀(일본 감바 오사카)에 돌아가 축구를 계속해야겠다'고 말하더니, 그날 공항에서 곧장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는 복귀경기에서 골을 터트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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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공격수 이근호가 2012년 11월10일 울산에서 열린 알 아흘리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우승을 이끈 뒤 MVP 트로피를 들어보이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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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선 이근호는 2012년 울산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며 AFC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이근호는 2012년 말 입대한 상무에서는 레슬링·사이클 선수들을 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비인기 종목이라 각광받는 순간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밖에 없는데, 새벽에 체육관에 나가면 늘 그들이 먼저 훈련을 하고 있었다. 나태해지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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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상무 소속 육군병장 이근호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러시아와 조별리그 1차전에서 골을 터트린 뒤 경례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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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는 2014년 브라질 대회를 통해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당시 이근호는 오스트리아의 낙마 아픈 기억을 묻는 기자들에게 "지금은 추억이다. 지금은 추억이다"라고 같은 말을 두번이나 반복했다. "월드컵 출전을 위해 노력했을 많은 선수들을 대신해 책임감을 갖고 임하겠다"고 다짐한 이근호는 러시아와 조별리그 1차전에서 후반 23분 골을 터트렸다. 기습적인 오른발슛이 러시아 골키퍼 아킨페예프의 손에 맞고 들어갔다.

당시 군팀 상주 상무 소속 '육군병장'이었던 이근호은 월급 14만9000원, 연봉으로 환산하면 178만8000원을 받았다. 그해 9월 군복무를 마친 이근호는 카타르 엘 자이시와 연봉 300만 달러(32억5000만원)에 계약했다. 몸값이 무려 1700배 뛴 이근호의 신데렐라 스토리다. 이근호는 힘들었던 시절을 잊지않고 3년째 매년 약 2억5000만원씩 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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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대표팀 공격수 이근호가 지난 6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미친듯이 뛰어다녔다. 당시 한국은 2-3으로 졌는데, 거의 유일하게 욕을 안먹은 선수가 이근호였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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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호랑이'로 불렸던 한국 축구는 요즘 '종이 호랑이'로 신세다.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약체 중국·카타르한테 졌다. 선수들의 정신력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익명을 요청한 한 국가대표 선수의 에이전트는 "중국 프로팀 소속 선수가 대표팀 단체 카톡방에서 연봉을 자랑하고 다른 선수들은 부러워했다"고 귀띔했다.

많은 축구팬들은 대표팀이 비록 패하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축구대표팀은 지난 6월14일 카타르와 월드컵 최종예선 8차전에서 2-3으로 졌는데, 당시 거의 유일하게 욕을 안먹은 선수가 이근호였다. 팔을 다친 손흥민(25·토트넘)을 대신해 전반 33분 교체출전한 이근호는 정말 미친듯이 뛰어다녔다. 경기 후 거의 탈진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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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공격수 이근호(가운데)가 지난 4월6일 상주시민운동장에서 열린 상주와 K리그 클래식 경기에서 치열한 몸싸움을 펼치고 있다. [사진 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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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축구팬은 '이근호의 '우당탕 드리블'을 폄훼하는 이들도 있다. 투박하지만 거침없이 밀고들어가는 드리블도 이근호처럼 근성을 갖고 열심히 뛰어야 할 수 있는거다. 서른이 넘어서도 엄청나게 뛰는거 자체가 대단한거 아닌가'란 댓글을 달았다. 김동호 대표는 "근호처럼 저돌적인 스타일인 부상을 많이 당할수도 있는데, 지금까지 수술을 한번도 안 받았다. 그만큼 자기 관리가 철저한 선수"라고 말했다. 축구인들은 "이근호는 더 이상 동갑내기 라이벌 박주영(서울)의 다운 그레이드 버전이 아니다"고 말한다.

"이근호처럼 최선을 다해서 뛰는 선수가 10명만 있으면 월드컵에 충분히 나갈 수 있다"는 이동국의 말을 이근호에게 전했다. 그러자 이근호는 이렇게 답했다.

"이동국 선수가 그렇게 말해줘서 감사합니다. 제가 팀을 위해 할 수 있는건 최대한 많이 뛰어서 수비수들을 괴롭히는 것 뿐입니다. 전 많이 뛰지 않고서는 잘할 수 없어요. 제 성격이기도합니다. 체력적으로 힘든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대표팀에서 더 힘을 내서 달리겠습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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