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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김명수 후보자 "31년 판사의 수준 보여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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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과 배석자 없이 1시간 비공개 면담]

"무거운 마음으로 대법원 왔다… 나에 대한 우려 불식시킬 수 있다"

춘천서 서초동으로 관용차 대신 버스·지하철 타고 홀로 이동

김명수(58) 대법원장 후보자는 22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를 찾아 양승태(69) 대법원장과 면담했다. 두 사람은 배석자 없이 1시간가량 대화했다.

두 사람이 법원행정처 일부 간부가 김 후보자가 회장을 지낸 국제인권법연구회 세미나를 축소하도록 간섭한 일을 논의했는지가 법원 안팎의 관심거리였다. 양 대법원장은 지난 4월 두 차례 진상조사를 지시했고, 두 차례 사과를 했다.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법원행정처 컴퓨터에 '문제 판사'들을 뒷조사한 블랙리스트 파일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진상조사팀이 거듭 '의혹이 사실이라는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했지만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을 중심으로 재조사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 일부 판사는 단식을 하고 있다.

대법원은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김 후보자는 만남에 앞서 "대법원장님을 뵙고 앞으로 인사 청문회나 이후 절차에 대해 가르침 받기 위한 자리"라고만 했다. 그는 기자들이 '블랙리스트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이냐'고 묻자 "나중에 (국회) 청문회 절차에서 자세하게 밝히도록 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법원 내에선 어떤 방식으로든 재조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와 가까운 한 판사는 "김 후보자가 '후배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못 돼 미안하다'는 말을 주변에 자주 했다"고 전했다.

그는 "대법원에서 3년간 재판연구관을 했는데 오늘은 어느 때보다 무거운 마음으로 왔다"며 "어제 지명 발표 이후 저에 대해 분에 넘치는 기대와 함께 상당한 우려가 있다는 것도 알게 돼 청문회를 통해 기대에는 부응하고 우려는 불식시킬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저는 31년 5개월 동안 사실심(1·2심) 법정에서 당사자들과 호흡하며 재판만 해온 사람"이라며 "그 사람이 어떤 수준인지 이번에 보여드릴 것으로 기대한다. 두렵지만 (대법원장직이)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으면 아마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김 후보자는 행정 업무를 다루는 법원행정처 등에서 근무한 경력이 없고, 줄곧 재판을 담당했다. 법원 관계자는 "판사의 본분인 재판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는 자부심을 내비친 것 같다"며 "사건 당사자들의 법원에 대한 불만도 잘 아는 만큼 해결책도 찾을 수 있다는 얘기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김 후보자는 이날 혼자 춘천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내린 뒤, 2호선 지하철을 이용해 대법원에 왔다. 버스표를 직접 끊은 까닭에 대법원 관계자들도 동선을 잘 몰랐다고 한다.

법조계에선 그가 일부 노동 사건이나 집시법 관련 대법원 판례에 비판적 의견을 내비친 판례평석(評釋)이 화제가 됐다. 판례평석은 판례에 대한 평가나 분석을 담은 글이다. 그는 2005년 발간된 우리법연구회 논문집에 게재한 논문에서 기업의 정리해고 실시에 반대하는 파업을 정당한 쟁의행위로 인정하지 않는 대법원 판례를 비판했다. 그는 또 2002년 발간된 대법원 판례해설에선 경찰이 죄수복을 입고 거리를 행진하는 시위를 사전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저지하다 문제가 생겼더라도 국가 배상 책임은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신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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