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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박정배의 한식의 탄생] 살에서 수박향이 은은… 임금님께 올린 귀한 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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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은어

조선일보

은어구이.


기품 있는 은백색에 은은한 과일향이 나는 은어(銀魚)는 여름철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상상력을 자극한 생선이었다. 바다와 맞닿은 강 하구에서 태어나 강을 거슬러 오르는 은어는 이끼를 먹고 자라는 탓에 비린내가 없고 수박향 혹은 참외·오이향이 난다. 은어의 품질은 과일향이 얼마나 농후하냐에 따라 결정된다.

자연산이 양식보다 몸집이 크고 향이 짙다. 몸집이 커지고 향이 나기 시작하는 6월의 은어는 '버들은어' 혹은 '수박은어'라 부르는데, 이때부터 산란 직전인 9월까지가 제철이다. 허균(許筠·1569~1618)은 도문대작(屠門大嚼)에서 '은어는 영남에서 나는 것은 크고 강원도에서 나는 것은 작다'고 했다. 강의 폭이 좁고 길이가 짧은 강원도의 은어는 먹이 경쟁이 심해 성장이 더디기 때문이다.

은어는 조선 시대 젓갈이나 식해, 구이 등으로 다양하게 즐겼다. 세조 때 문신 성현(成俔·1439~1504)의 허백당집(虛白堂集)에 나오는 것처럼 '가늘게 회(膾) 쳐 산초, 생강 곁들여' 먹기도 했다. 경북 울진 왕피천이나 안동, 경남 밀양·하동은 예부터 은어 산지로 유명했다.

안동 은어는 6월 삭선(朔膳·매달 초하루 임금에게 올리는 음식) 진상품이었다. 안동에서는 여름에 잘 삶은 국수를 찬물에 씻어 은어 육수에 만 '은어 국수'를 먹었다. 안동뿐 아니라 경상도 여러 지역에서 은어 국수를 즐겼다. 울진 왕피천에서도 은어를 '푹 삶은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는 것으로 비린내가 없을 뿐만 아니라 구수하고 담백한 맛이 별미'(1973년 9월 1일자 조선일보)로 먹었고, 낙동강 줄기 낙천(洛川)에서도 (은어를) 건진국수 꾸미로 얹어 먹었다.

1960년대 공업화와 산업화, 농약 사용의 본격화로 강물이 오염되면서 1 급수에 사는 은어는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고, 은어 국수는 전설이 되었다.





[박정배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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