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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교민 모이면 중국 떠날 얘기” 우울한 베이징·상하이 한인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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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교 초기 ‘차이니즈 드림’은 옛말

중국 상품 질 좋아지며 시장 뺏겨

사드 갈등 해결돼도 회복 쉽지 않아

교민 상권 타격에 베트남 이주 급증

식당 사장 “중국 온 후 가장 힘들어”

중앙일보

중국 상하이·베이징 교민 상권이 된서리를 맞았다. 지난 22일 상하이 훙취안로 한인 상가의 한식당 앞에‘상가 양도’란 안내문이 붙어 있다. 그 옆 가게도 간판을 뗀 채 영업을 중단했다. [프리랜서 장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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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상품 유통업에 종사해 온 50대 남성 강모씨에게 중국 상하이는 제2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이었다. 10여 년 전 국내에서 사업에 실패한 그가 옷가방 하나만 들고 도착해 맨손으로 재기에 성공한 곳이 상하이다. 그런 그가 상하이를 떠나 다음달 사업 근거지를 베트남 하노이로 옮긴다. 21일 만난 강씨는 “지난해 여름부터 손님이 끊기고 매출이 줄었는데 지금도 회복 기미가 없다. 주 고객인 교민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발길 끊은 단골고객에게 연락해 보니 상당수가 베트남으로 옮긴 상태였다”고 ‘결심’을 한 이유를 설명했다.

상하이는 한·중 수교 초기 초코파이와 신라면에서 최근의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차이니즈 드림’의 성공신화를 써 내려온 곳이다. 중국 진출의 최일선에 서 있다는 자부심이 유난히 강했던 상하이 교민들이지만 요즘은 서넛이 모이면 탈(脫)상하이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교민 신문 ‘상하이저널’에는 하노이나 호찌민 아파트 광고가 실리고 여행업체는 교민들을 모집해 베트남 시장조사 투어를 보내기도 한다. 물류업체에서 일하는 S씨는 “자동차 관련 업체를 제외한 거의 모든 직종이 중국을 떠나고 있다”고 말했다.

민항(閔行)구 훙취안(虹泉)로 일대의 교민 상권은 궤멸 직전의 위기다.지점을 여럿 낼 정도로 번성하던 ‘천사마트’는 지난달 거액의 빚을 남긴 채 문을 닫았다. 21일 밤 둘러본 100곳 이상의 식당 중엔 좌석의 3분의 1 이상을 채운 가게를 찾기 힘들었다. 문을 닫고 ‘상가 양도’ 안내문을 내건 곳도 눈에 띄었다. 한식당 ‘다락방’의 최재영 사장은 “2002년 중국에 온 이래 가장 힘든 시기”라며 “예전에도 고비가 없진 않았지만 극복 가능했다. 지금은 개인 능력으론 극복하기 힘든 수준”이라고 말했다.

교민 상권이 된서리를 맞은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따른 반한감정으로 중국인 고객들이 발길을 끊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교민 발걸음도 확연히 줄었다. 실적이 나빠진 기업들이 주재원 숫자를 줄였고 남은 주재원도 경비 절감을 위해 호주머니를 닫고 있다. 올 초 주재원 수 500여 명을 헤아렸던 이랜드의 철수는 교민 상권에 실질적 타격과 심리적 충격을 동시에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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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의 한인타운 왕징(望京)도 사정은 비슷하다. 단적으로 드러나는 게 교민 자녀들이 다니는 베이징 한국국제학교의 학생 수 감소다. 조선진 교장은 “올 들어 주재원 가정의 갑작스러운 귀임이 잦아졌고 지방 발령과 베트남 발령도 크게 늘었다”며 “초등학교가 특히 심해 3개 반을 2개 반으로 줄였다”고 말했다.

교민 감소로 한인촌 집값이 떨어지는 현상도 나타났다. 한국 교민들이 집값을 올려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왕징 집값이 한국인 철수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늘푸른부동산의 중국인 직원 쑨광윈(孫光允)은 “왕징 다시양(大西洋)아파트 200㎡형의 경우 지난해 월임대료 2만4000위안(약 410만원)이던 게 10% 이상 내렸다”고 말했다.

교민 상권은 사드로 직격탄을 맞긴 했지만 그게 원인의 전부가 아니란 점에 더 심각성이 있다. 상하이 주재 경력 12년의 이동한 코웨이상하이 총판 대표는 “중국 진출 기업의 채산성 악화와 이에 따른 교민·주재원 철수는 사드 이전인 3~4년 전부터 시작된 현상”이라며 “중국 상품의 질이 높아지면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 한국 상품이 시장을 뺏긴 게 근본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사드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황금 경기를 회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교민들 사이에 퍼져 있다. 한·중 우호의 첨병 역할을 자처해 오던 중국 교민들의 깊은 시름 속에 24일 한·중 수교는 25주년을 맞는다.

상하이·베이징=예영준·신경진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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