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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단독] "정규직화 전환 계획 한 달만에 어떻게 내나요"…속앓이 하는 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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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를 놓고 속앓이를 하고 있다. 정부가 25일까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계획을 제출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한은 안팎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한은을 상대로 지난달 하순 비정규직 전환 규모, 예산소요액 등을 구체적으로 작성해 25일까지 ‘공공기관 비정규직 고용개선 시스템’에 입력할 것을 지시했다. 금융 부문 공공기관 가운데 한은을 비롯해 예금보험공사 등 상대적으로 비정규직이 적은 곳이 대상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한은이 정부 산하 공공기관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은은 특수법인으로 인사나 조직 등은 금융통화위원회가 결정권을 갖는다. 다만 급여 등은 기획재정부 장관 승인을 얻도록 하고 있다. “정부 시책이나 공공부문이 일자리 창출에 나서야 한다는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긴 하겠지만, 정부 산하 공공기관도 아닌데 일정에 맞춰 추진 계획을 내라고 해 큰 일”이라고 한 한은 관계자는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구체적인 정규직화 로드맵 등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실무적인 차원에서도 섣불리 나서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현실적으로 지금의 비정규직 일자리를 정규직화하는 계획을 한 번에 내놓기도 어렵다는 게 한은의 입장이다. 한은의 현재 경비 관련 인력 213명 가운데 83명(39%)은 정규직이고, 130명(61%)는 외부 용역 업체로부터 파견을 받은 인력이다. 또 비서, 서무 직군에서 수십명 정도가 비정규직이다. “현재 일하는 사람들을 한꺼번에 정규직으로 바꾼다고 했을 때 특혜 시비 등을 피할 수가 없는 형편”이라며 “그렇다고 갑자기 직원들을 대거 새로 뽑을 경우 조직 운영에도 어려움이 있다”는 게 한은 측의 설명이다.

게다가 “고용 기간이 긴 정규직으로 전환했을 때 아예 직무가 바뀌거나 정원이 조정될 수 밖에 없다”며 “직무 재조정을 고려하지 않고 비정규직을 무작정 정규직으로 바꿀 경우 발생할 비효율을 감당하라는 건 무리한 요구”라고 한은 관계자는 말했다.

한은은 원래 특수경비(특경), 방호 등 청원경찰 인력 가운데 정규직을 늘리고, 용역 업체 파견 비중을 줄이는 방향으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들 직군에서 신규 채용을 늘려 다소 느린 속도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달성한다는 것이었다. 지난달 경비, 서무 직군에서 정규직 채용 공고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 쪽에서 전환 계획을 일괄적으로 요구하면서 난감해진 셈이다. “정부 쪽과 협의해 한은의 입장을 이야기해 조정해 나가겠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조귀동 기자(ca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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