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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아침을 열며] 개혁에 왕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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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정권의 대통령과 확연하게 대비되는 문재인 대통령의 소통과 탈권위적 행보, 야당이 ‘쇼통’이라고 비아냥거리는 그의 행태에는 국민에게 다가가려는 진정성이 엿보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 100일 전에 군 사조직인 하나회를 전격적으로 해체하고, 자신의 재산을 공개하는 등의 전광석화와 같은 개혁 조치로 지지율 80%를 넘었다. 문 대통령 지지율의 고공행진은 적폐청산과 개혁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지지의 반영이다. 그러나 적폐청산은 국정원의 대선 개입 및 블랙리스트의 작성 주체나 국가권력을 사유화한 인물들의 범죄행위를 단죄하는 한편 구조적으로 똬리 틀고 있는 기득권 연합을 해체할 때 의미를 갖는다.

국기를 문란케 하고, 헌정을 유린한 집단과 세력에 대한 심판은 조기 대선을 통한 정권교체로 구체화됐다. 정권교체가 정치권력의 교체에 그친다면 촛불시민혁명은 미완에 머물고 만다. 주권자로부터 위임 받은 국가권력을 사유화하고 민주주의를 파편화하려는 세력의 교체는 불법과 불의가 관행화한 사회의 구조를 바꿔 나가는 작업이 수반될 때 진정한 의미가 있다. 사회적 격차와 양극화가 고착화하고, 시민대중이 납득하지 않는 지배연합이 공고화한 사회의 구조를 바꿔 나가는 작업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문재인 정부가 임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집중해야 할 부분은 지난 정권 때 규명되지 않은 의혹들과 사건들에 대한 실체적 진실 규명 및 단죄와 함께 공고화하고 있는 부조리한 관행의 제도적 개혁이다. 이러한 작업은 의회의 절차적 정당성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에서 개혁일 뿐이지 기실 혁명적 사고와 역사의식이 전제되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최근 살충제 달걀 사태에서 ‘농피아’가 도마 위에 올랐다. 그 동안 시민들의 인식에서 희미해져 갔던 관피아의 문제가 재조명되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이에 대해 경고했다고 하지만 차제에 구조적 전관의 문제에 대해 정권의 차원에서 천착해야 한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이후와 이전이 달라야 한다는 주장과 사회적 각성이 있었으나 이를 추동할 집권세력의 무능함과 반민주적 행태는 결국 참담한 초헌법적 국정농단만을 가져왔다. 당시 제기된 관피아와 해피아, 군피아, 학피아 등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기득권의 연결고리들로 공고화한 지배연합을 해체하지 못한다면 개혁은 일상적 정책수행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개혁에는 기득권의 저항과 조직적 반발이 있기 마련이다. 정치엘리트와 경제엘리트의 동거, 자본과 권력의 유착이 당연시되는 사회적 관행을 해체하지 못하면 개혁은 허울뿐인 정치적 수사 이상도 이하도 아닌 진부한 단어로 전락하고 만다. 사회적 기득집단과 일반 대중이 격리됨으로써 삶의 방식과 지역, 문화에서조차 이질적 차별성이 강화되는 현실은 사회적 원심력을 증대시킬 뿐이다. 이러한 계층의 블록화를 근본적으로 해소해야 한다는 규범적 인식이 시ㆍ공간적으로 관통해야 한다. 지금은 정권에 대한 지지가 높아 기득권이 숨죽이고 있지만 예기치 못한 사태로 지지율이 빠지는 순간 지배연합의 조직적 저항에 개혁세력이 감당키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

야당에는 적폐청산과 정권이 추진하고자 하는 개혁 정책에 대해 협조할 뜻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여소야대 국회는 문재인 정권이 돌파해야 할 현실적 관문이다. 지금의 정당구도로는 일상적 국정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의 구조적 개혁에 필요한 제도적 혁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집권세력이 현재의 시민적 지지를 유지하면서 이를 대의제 민주주의 과정에 접목시킬 때 일자리, 의료, 보육 등의 복지와 소득 주도 성장도 가능하다.

시민적 압력이 의회에 투입됨으로써 대의제 민주주의가 정치엘리트의 각축장으로 전락하는 폐해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을 때 관피아의 혁파와 사회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다수의 횡포와 중우정치 등의 가능성을 경고한 정치철학은 한국의 성숙한 시민문화와 부합하지 않는다. 촛불시민혁명이 이를 방증한다. 개혁에 왕도는 없다.

최창렬 용인대 교육대학원장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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