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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정글 속 노키즈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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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한겨레21

8월은 휴가철이기 때문일까요?

이달 내내 온라인 공간을 뜨겁게 달군 이슈는 ‘노키즈존’(No Kids Zone)이었습니다. 각종 게시판과 개인 SNS에선 노키즈존 장벽 앞에서 분루를 삼켜야 했던 젊은 엄마·아빠들의 분노와 이들의 ‘만행’을 고발하는 이들의 삿대질이 시끄럽게 오갔습니다. 모처럼 휴가를 맞은 젊은 부부들이 유모차를 앞세워 평소 가보고 싶었던 카페나 ‘힙’한 레스토랑으로 대거 진출하다 사달이 난 것이지요.

이런 세태를 반영한 것일까요. 노키즈존은 최근 <한겨레21> 육아 칼럼을 장식하는 단골 소재기도 했습니다. 경제학자 우석훈씨는 제1174호(8월14일치 발행) 육아 칼럼에서 노키즈존을 백인석과 흑인석을 따로 운영하던 미국 남부 플로리다의 미식축구 경기장 ‘잭슨빌 스타디움’에 빗대며 깊은 우려를 표했고, 김성훈 <씨네21> 기자는 이번호 육아 칼럼 ‘성미산에서 도담도담’에서 자신이 직접 겪은 노키즈존의 사연을 소개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이번호 <한겨레21>은 노키즈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지난 2주 동안 노키즈존 문제를 깊이 고민한 서보미 기자는 표지이야기에서 만 5살 안팎의 아이(와 그들의 엄마)들을 특정 공간에서 배제하는 데 사용된 노키즈존이 이제 초등학생과 청소년을 배제하는 ‘노초딩존’이나 ‘노틴에이저존’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노키즈존 문제는 내가 적절한 비용을 낸 공간에서 소비자가 누려야 할 권리를 최대한 누리겠다는 ‘소비자 우선주의’ 개념을 넘어 우리 사회 내부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공격적인 비정상성을 드러내는 ‘현상’이 된 게 아닌지 걱정하게 됩니다.

제가 일본에 머물던 2014~2015년 20대 젊은이들은 한국 사회를 ‘헬조선’이라 불렀습니다. 20대가 살기에 너무 힘들고 빡빡해 마치 지옥과도 같은 사회. 20대에 지옥 같은 사회가 30~40대, 그리고 그 윗세대에게 천국일 리 없습니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와 그 뒤 불어닥친 가혹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으로 인해 한국 사회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지는 정글로 변한 느낌입니다. 정글 안에선 이기적인 사람만 살아남습니다. 남을 배려하는 여유를 갖고 공동체 정신을 내세우다간 등 뒤에서 맹수의 엄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최대한 까칠하게 나와 타인을 구별하고, 내가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권리를 주장하며, 한발도 물러서지 않아야 합니다. 그 권리는 수억원의 돈이 오가는 이권일 수도 있고, 단돈 몇백원이 걸린 소소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갑일 땐 최대한 갑의 지위를 활용해야 하고 이것에 도덕적 죄책감을 느낄 이유는 없습니다. 이 더러운 세상 속에 어차피 내일이면 나도 누군가의 을이 될 테니까요.

이같은 한국 사회의 갈등 상황은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두 무능한 정부를 거치며 사실상 방치·악화됐습니다. 그 결과 우리 모두는 나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끼치는(혹은 끼칠 가능성이 있는) 이들을 배제하고 차별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괴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차별과 배제는 마음속에 독버섯처럼 잠복해 있다가 결정적 시기가 되면 폭력적 특성을 드러냅니다. 1923년 9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일본 도쿄에 퍼진 소문은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였습니다. 그 뜬소문으로 최소 6천여 명의 조선인이 잔혹하게 학살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국 사회에서 우물에 독을 넣은 범인으로 지목될 다음 사람은 누구일까요. 외국인노동자,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어린이, 청소년, 노인… 그리고 마침내는 당신과 나 아닐까요?

길윤형 편집장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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