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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정윤아의 ‘컬렉터의 마음을 훔친 세기의 작품들’] 중국 갑부가 사랑한 모딜리아니의 누드화 택시기사 출신 컬렉터 1700억에 산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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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부터 정윤아의 ‘컬렉터의 마음을 훔친 세기의 작품들’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세계적인 미술 경매업체 홍콩 크리스티의 정윤아 이사가 현대미술 시장의 형성 배경과 전개 과정, 미술 시장에서 갤러리와 경매의 역할, 독특한 화상과 도발적인 컬렉터의 등장 과정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할 예정입니다.

아름다운 누드화에 홀려본 적이 있는가? 누드화 중에서 딱 한 점만 가질 수 있다면 당신의 선택은? 가장 ‘누드스럽다(nudest)’는 평을 들은 바 있는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1884~1920년)의 ‘비스듬히 누운 누드(Nu couch, 1917~1918년)’는 어떨까? 여기 그 한 점을 위해 상상 초월의 천문학적 액수를 과감하게 지불한 한 남자가 있다. 리우 위창(Liu Yiqian, 1963년~)이라는 중국인 컬렉터다. 드라마틱한 인생이란 점만 본다면 모딜리아니와 그가 그린 최고의 명작 중 한 점을 거머쥔 리우의 삶은 제법 닮아 있다.

리우는 문화혁명의 격동기에 상하이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친구들이 학교에 갈 때 핸드백이나 잡동사니 물건을 팔기 위해 노상을 펼쳐야 했고, 면허증을 딸 수 있는 나이가 되자 택시 기사로 길에 나섰다. 하지만 중학교 중퇴의 학력이 무색할 정도로 그는 아주 명석한 사람이었다. 중국에 경제 개방과 개혁의 물결이 일자 일생일대의 기회임을 직감, 그 물결에 거침없이 올라탔다. 1980~1990년대에 주식 거래를 통해 막대한 부를 쌓기 시작한 것. 이후 부동산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자를 늘려나갔으며, 현재 그의 자산 규모는 1조5000억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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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듬히 누운 누드’, 모딜리아니, 1917~1918년. 리우 위창이 2015년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낙찰받은 작품으로 모딜리아니의 누드화 중에서도 최고로 꼽힌다. 2017 Christie`s Images Lim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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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태리에서 태어난 모딜리아니의 삶은 리우와는 정반대로 드라마틱하다. 타고난 예술적 재능과 감각, 그리고 그것을 일찍이 알아본 어머니의 따뜻한 격려와 아낌없는 지원, 게다가 누구라도 반할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외모까지. 그러나 예술가로서 모든 것을 갖춘 그가 서른다섯의 짧은 생을 마감한 곳은 누추하기 짝이 없는 파리의 한 자선병원이었다. 뼈를 에는 추운 날씨에 온기라고는 없는 손바닥만 한 작업실에서 술과 마약에 찌든 채 의식 불명 상태로 침대에 웅크리고 있던 그를 이웃이 발견해 병원으로 옮긴 지 이틀 만이었다. 자신의 작품들만큼이나 아름다웠지만 병약했던 모딜리아니는 어린 시절부터 줄곧 그를 괴롭혀온 결핵에 무참히 삼켜져 그렇게 초라하게 숨을 거뒀다.

모딜리아니의 삶은 여러 측면에서 고흐를 연상시킨다. 천부적인 재능과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 생전에는 그림 한 점 팔지 못하고 서른일곱에 자살로 생을 끝내버린 고흐 말이다. 게다가 모딜리아니에게는 비운의 잔느가 있었다.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감금되다시피 부모 집에 머물던 그녀가 그의 사망 소식에 아파트에서 몸을 던진 것이다. 그녀만큼 불운한 예술가의 신화를 극대화한 완벽한 조력자가 또 있을까.

별을 노래하는 로맨틱하고 낭만적인 화가이자 조각가. 보헤미안 천재 예술가의 이미지. 그런데 놀랍게도 이 완벽한 신화의 주인공인 모딜리아니의 실제 삶에 대해 남겨진 자료는 극히 적다. 1906년 파리 이주 후, 로트렉과 세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시기가 있었는데, 자존심 강한 그가 이 초기 작품 대부분을 스스로 파기했다. 때문에 남아 있는 작품들은 몇 년간의 전성기 시절로 제한돼 있다. 마티스, 피카소, 브랑쿠시 같은 당대 주요 미술가들과 장 콕토, 앙드레 살몽 같은 문인들과도 활발하게 교류했지만 생전에 그에게 주어진 개인전 기회는 딱 한 번뿐이었다. 1917년, 누드화를 모은 전시회가 그것이다. 그러나 야심 차게

준비한 이 전시마저 대실패로 막을 내렸다. 윈도 진열대에 걸려 있던 누드화로 인해 전시 오픈 불과 몇 시간 만에 경찰이 들이닥쳐 일시적으로 문을 닫아야 했다. 윈도 진열대에서 누드화를 뗀 후에야 겨우 전시회를 지속할 수 있었지만 포르노 화가라는 오명만 얻은 채 전시회는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이런 일화를 상기하며 리우가 자신의 미술관 컬렉션을 위해 거금을 들인 모딜리아니의 누드화를 다시 보자.

이 작품은 특히 공을 들인 탓에 개인전 이후에 완성되긴 했으나 전시에서 선보인 누드화와 같은 연작 중의 한 점이다. 포르노처럼 보이는가? 우리의 시선으로 볼 때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여전히 뻔뻔스러울 정도로 에로틱한 것은 분명하다. 드러내놓고 섹시하며, 에로틱한 동시에 기묘하게 우아하고, 세련된 그림이지 않은가? 젊고 매력적인 익명의 누드 모델은 음부를 드러냈음에도 부끄럽기보다는 확신에 찬 듯 소파에 편안하게 기대어 누워 있다. 소파의 거친 표면과 대조를 이뤄 그녀의 부드럽고 따뜻한 피부가 더욱 육감적으로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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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벗은 마야’, 고야, 1800년경. 고야의 이 누드화 역시 획기적인 것으로 평가되지만 구도와 색채 등을 비교할 때, 모딜리아니의 누드화가 얼마나 모던한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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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기대어 누운 누드라는 전통적인 주제에 대담하게 모던한 구도를 도입해 조형적 우아함과 급진적 창조성을 동시에 획득하고 있다. 고전적인 이상주의와 감각적인 사실주의, 거기에 모더니스트 발명이 조화롭게 한데 어우러진 작품으로 모딜리아니의 누드화 중에서도 가히 최고의 명작이라 할 만하다. 당대 전통을 거스른 혁신적인 누드화로 평가되는 고야의 ‘옷을 벗은 마야’조차도 이 누드화에 비하면 다소 전통적으로 보일 정도로 모던하다.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인 미, 동시대적이면서도 영속적인 미를 포착하고자 한 화가의 열망이 완벽하게 실현돼 있지 않은가? 이로써 이 작품은 모딜리아니의 신화가 비극적이고 짧은 생애 동안 찬란하게 빛난 그의 예술성에서 기인함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최고 중의 최고를 얻기 위한 대가. 아마도 그것이 리우가 이 작품에 거액을 지불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

리우는 부를 축적하기 시작하면서 미술품 컬렉션에 지대한 열정을 쏟아왔다. 중국 고미술에서부터 동서양과 시대를 넘나드는 방대한 컬렉션을 선보이기 위해 2012년, 부인 왕웨이와 함께 상하이에 롱미술관(Long Museum)을 설립했다. 이후 두 개의 지점을 신설, 운영 중이며, 2018년에는 네 번째 지점이 개관 예정에 있다. 어떤 이들은 리우, 왕웨이 부부가 유명하고 비싸기만 하면 무조건 사들이는 취향 없는 컬렉터라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뉴욕 경매에서 모딜리아니의 누드화를 낙찰받은 직후, 한 인터뷰에서 그는 당당하게 밝힌 바 있다. 중국인들이 해외에 나가지 않고도 가능한 한 많은 명작을 볼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그렇다면 과연 리우는 이 누드화를 위해 얼마를 지불했을까? 약 1700억원(약 1억7040만달러, 크리스티 뉴욕, 2015년 11월 9일 경매)이다. 이는 피카소의 작품(약 1억7940만달러에 낙찰)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경매 낙찰가 기록에 해당한다. 왜 그렇게까지 거액을 들여 이 작품을 샀을까? 1980년대 후반 이래 등락을 거듭하면서도 인상주의 회화를 위시한 일부 미술품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아왔다. 부자들의 전유물이라는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 형성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중국, 두바이 등 다양한 지역의 신흥 부자들은 고가 미술품의 공식적인 경매 낙찰을 통해서 문화자본과 명성 획득, 이미지 쇄신 등 여러 가지 장점을 누려왔다. 리우도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그가 기록적인 가격에 낙찰을 받자 곧 전 세계 언론매체들이 앞다퉈 리우와 그의 미술관을 소개했다. 대대적인 글로벌 마케팅 효과를 고려할 때 그가 지불한 금액이 터무니없다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리우처럼 부자가 아니라고 미술품 컬렉션을 단념할 필요는 없다. 전 세계 미술 시장의 규모가 대략 70조원에 육박하는 오늘날에도 100만원 미만 가격대의 작품이 전체 거래량의 40%, 1000만원 미만의 작품이 80%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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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아 크리스티 스페셜리스트]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18호 (2017.07.26~08.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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