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육정책 가운데 가장 큰 비극은 ‘열린 교육’이었다. 획일적 입시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창의성을 고양시키고자 도입된 혁신적인 방안이었으나 정작 시민사회에 전달된 설득의 논리는 ‘한 과목만 잘해도 대학에 갈 수 있다’였다. 열린 교육을 주도한 장관조차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음에도 자극적인 헤드라인의 파급효과는 컸다. 학습 부담을 급감시킬 수 있다는 기대와 한국의 입시 현실과 맞지 않다는 우려가 맞서며 여론은 충돌을 거듭했다. 안타깝지만 우려는 현실화되었다. 자율학습 폐지는 학습 부담을 경감시키기는커녕 부모의 사교육비만 늘렸고, 쉽게 내겠다던 수능은 해마다 난이도 조절에 실패해 불신을 심화시켰다. 이런 실패가 일부 언론의 가짜뉴스에 의해 빚어진 것은 아니다. 정치인과 관료들이 성과에 집착, 영국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한 교육방법을 한국적 배양 기간 없이 들여온 성급함이 원인이었다.
입시 흑역사에 입학사정관제 역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학생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보고 선발한다는 도입 취지는 고액 캠프 활동, 자기소개서 미화를 위한 대필, 미신적인 입시 컨설팅 제도 등으로 이어졌다. 미국 대학 입시 모델을 단순 번역하다시피 들여온 이 제도는 아직도 학생부종합전형 어딘가에 숨어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출범 초기, “미국 갔더니 오렌지(orange)를 ‘아륀지’로 읽더라”는 인수위원장의 발언이 구설에 오른 정권다운 제도였다. 유럽식 글쓰기를 교과 과정과 연계 없이 들여와 사교육비 상승의 주범으로 몰린 논술전형이나, 미국 수능처럼 절대평가를 시도하는 현 정권의 입시 개편 방안 역시 선진국의 제도를 추종하는 퇴행적 사고가 낳은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과거와 큰 차이는 없다. 학생들에게 창의성을 요구하면서 어른들은 외국 제도를 급하게 베껴온 셈이다. 지난 실패들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선진국 입시라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육열이 높고 입시 경쟁이 치열한 한국 상황에 맞는 입시를 위해 우리만의 새로운 길을 걸어야 한다. 현실은 어렵다. 수능 난이도를 높여 변별력을 확보하라는 주장에 국민 70%가 동의한다. 이런 정서를 무시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다. 앞으로 나아가되 뒤에서 머뭇거리는 다수를 기다리는 신중함이 요구된다. 돌아가자는 이들에게 올바른 뜻으로 오라고 설득해 함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주현 | 논술 강사>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 [인기 무료만화 보기]
▶ [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