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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CEO칼럼]교통사고, 예방투자가 더 경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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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장남식 손해보험협회장


[아시아경제]'돈이 문제다.' 어딜 가나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개인적 차원 뿐 아니라 사회ㆍ정책적 차원에서도 돈이 사안의 성패를 가르는 경우가 많다. 좋은 정책도 재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제로 추진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재원을 꼼꼼히 계산하고 예측하여 적절히 배분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런데 시민의 생명과 직결된 곳에 재원이 적절히 배분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우리나라의 교통안전수준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다. 교통사고는 경미한 교통법규 위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지만 미흡한 교통안전시설로 인해 일어나는 경우도 상당하다. 보도와 차도가 제대로 구분되지 않은 스쿨존에서 초등학생이 교통사고를 당한 경우도 있고 비 오는 날엔 오래된 차선이 잘 보이지 않아 사고가 나기도 한다. 충분히 예방할 수 있음에도 예산 부족으로 필요한 시설을 갖추지 못해 사람이 다친다니 안타깝다.

이렇게 교통안전시설을 개선해 달라는 신고가 최근 급증하고 있으나 정부의 교통안전환경개선사업 예산은 몇 년 전부터 큰 폭으로 감소해왔다. 교통안전시설은 한번 설치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보수해줘야 한다. 또 새롭게 필요한 곳에는 추가로 설치해야 한다. 예산이 부족하다지만 더 큰 비용을 초래하는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교통안전사업의 혜택은 온 국민에게 돌아가며, 그 혜택은 투입된 비용보다 클 것이다. 특히 어린이, 고령자, 이륜차 운전자 등 교통사고에 취약한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보호하는 길이기도 하다.

교통약자 보호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다. 문제는 언제나처럼 돈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교통법규위반 범칙금과 과태료를 교통안전사업에 사용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교통범칙금과 과태료는 교통질서를 해하는 범칙행위를 제재하고 장래 교통안전 확보 등을 위해 부과하는 벌금 성격의 돈이다. 현재는 사용처가 별도로 구분되지 않아 일반 세금처럼 교통안전과 무관한 곳에 쓰이고 있다. 이를 안전시설 설치ㆍ개선이나 사고 잦은 곳의 환경 개선 등 교통안전사업에 사용하는 것이 본래 취지에 맞다.

이렇게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한다면 장기적 안목에서 정책을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해외에 유사한 사례가 있다. 일본은 범칙금 수입 전체를 지방교통안전 공공기관에 교부하여 신호등, 도로표지, 횡단보도 등 도로교통 안전시설 설치와 관리에 활용하고 있다. 프랑스는 교통범칙금 수입 일부를 각종 교통안전 프로그램에 쓰고 있다. 그를 통해 교통ㆍ주차정책관리 시스템 현대화, 무인단속 등에 활용한다. 다양한 요인에 의한 결과겠지만 2014년 기준으로 자동차 1만 대당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일본, 프랑스가 각각 0.5명, 0.8명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2명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선례가 있다. 과거 1992년부터 2006년까지 한시적으로 교통범칙금과 과태료를 교통안전시설 확충, 관리 등에 사용하도록 한 적이 있다. 이러한 제도를 다시 살려 제대로 운영한다면 관련 예산문제 해결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작년 한해 약 7500억 원에 달한 범칙금과 과태료의 절반 정도만이라도 교통안전사업에 활용할 수 있다면 많은 국민들을 교통사고로부터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 고령자, 이륜차 운전자 등 교통사고에 취약한 집단을 생각하면 그 필요성이 더욱 커진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잦다. 외양간에 고칠 점이 보이면 소를 잃기 전에 미리 고쳐야 한다. 교통사고는 개인에게 예상치 못한 사고다. 그러나 시설 미비로 인한 교통사고는 사회적으로 예견된 사고다. 시민들이 일상에서 교통사고라는 재난을 맞닥뜨릴 위험성이 예견된다면 자원을 투입해 미리 손을 써야 한다. 시민들을 보호하는 일에 자원이 우선적으로 배분되어 돈이 문제가 되지 않길 바란다.

장남식 손해보험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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