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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벌써 25년…한중수교 때 대통령보다 먼저 텐안먼 앞길 달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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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광민 한중자동차문화교류협회장, 25년간 한중자동차교류에 기여

"중국 통해 자동차로 유라시아 대륙으로 뻗어나갈 수 있어"

연합뉴스

"자동차로 실크로드 횡단합니다"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현광민(61) 한중자동차문화교류협회 회장이 20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중국을 거쳐 자동차로 비단길(실크로드)을 횡단하는 경로를 지도에서 가리키고 있다. 2017.8.20.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베이징 들어가기 직전에 동행 취재하던 일본인 기자가 급히 오더니 '겐상(현선생), 태극기가 있나요?' 하고 물어요. 있다고 하니 얼른 차에 달라는 거예요. 그 기자 말이, 그날이 노태우 대통령 방중하는 날이라 지금 텐안먼(天安門)광장 앞 대로 좌우에 온통 태극기가 걸렸는데 시간을 따져보니 노 대통령보다 내가 먼저 지나가게 된다는 거예요."

'죽(竹)의 장막'으로 불렸던 중국의 벽을 자동차를 타고 가장 먼저 넘은 사람은 자동차 경주를 좋아했던 민간인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자동차를 좋아했던 현광민(61) 현 한중자동차문화교류협회 회장은 1980년대 말 자동차 동호회 서울레이스클럽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자동차 경주대회를 즐겼다.

경주할 공간이 없어 충남 태안 몽산포에서 썰물 때 폐타이어로 구간을 만들어놓고 달리거나, 당시만 해도 벌판이었던 인천 영종도에 배를 타고 들어가 경주를 즐겼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해외에라도 나가서 경주할 수 없을까 찾던 중 1992년 파리-모스크바-베이징 자동차 랠리 소식을 듣게 됐다.

이름 그대로 파리에서 모스크바를 거쳐 베이징까지 27일 만에 가는 1만6천㎞ 국제자동차경주대회였다. 하루 평균 600㎞씩 달려야 했다. 게다가 가는 도중 카라쿰·타클라마칸·고비 등 사막만 3개를 지나야 했다.

현 회장은 마침 국내 생산이 시작된 현대 갤로퍼를 대회 규격에 따라 개조해 참가하기로 했다.

현 회장이 운전대를 잡은 한국팀은 27일간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 1992년 9월 27일 드디어 '죽의 장막'이 걷힌 베이징에 입성했다.

첫 한중정상회담을 위해 같은 날 방중한 노태우 당시 대통령보다 먼저 도착했다. 노 대통령 환영의 뜻으로 걸어놓은 태극기 세례를 현 회장이 먼저 누렸다.

한국 신문에는 노 전 대통령의 한중수교와 함께 현 회장의 랠리 완주 소식이 나란히 실렸다.

연합뉴스

백두산에 갈 한라산 "통일의 물"
현광민(오른쪽) 현 한중자동차문화교류협회 회장이 '파리-모스크바-베이징 자동차 랠리' 참석을 앞둔 1992년 7월 9일 한라산 백록담에서 채취한 물을 들어보이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경주를 마치고 현 회장은 서울로 돌아오는 대신 지린(吉林)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옌지(延吉)시로 향했다.

사실 현 회장은 파리로 건너가기 전에 제주도에 먼저 들러 한라산에 올랐다. 등산용 물통 둘에 백록담 물을 담아 대회 내내 지니고 다녔다. 통일 기원 의식을 위해서였다.

옌지시에서 "한라산 물을 떠 왔는데 백두산 물과 합수하려 한다"고 하자 엄청난 화제가 됐다. 현지 방송국이 합수제를 동행 촬영했을 정도였다.

백두산 정상에 올라 두 물통 중 하나에 담긴 백록담 물을 천지에 붓고, 그 물통에 천지의 물을 가득 담았다.

"그렇게 뜬 천지 물 한 통과 백록담 물 한 통을 귀국해서 한강에 뿌렸습니다. 통일을 염원하는 저만의 의식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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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한라산 물 합수제
(서울=연합뉴스) 현광민 현 한중자동차문화교류협회 회장이 25년 전인 1992년 10월 6일 중국을 통해 백두산에 올라 한라산 백록담 물 합수제를 지낸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7.8.21 [한중자동차문화교류협회 제공]



자동차로 우연히 맺은 중국과의 인연은 그 후에도 계속됐다.

자신의 자동차로 중국을 여행하고 싶었던 그는 랠리 이후 친밀해진 중국 국가체육총국(우리의 문화체육관광부 체육 담당에 해당) 관계자 등의 도움으로 여유국(문체부 관광 담당에 해당)과 공안, 관세청 등 여러 부서의 협조를 얻어 중국으로 차량을 들여갈 수 있게 만들었다.

자동차를 실어 보낼 때 중국으로 들어가는 항구가 되는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시 부시장과는 절친한 친구가 됐다.

한국 기업에도 도움을 줬다. 신차 개발 때 혹한·혹서 상황에서 시험운행을 해야 하는 쌍용자동차가 현 회장 소문을 듣고 찾아와 중국에 신차를 보낼 수 있겠느냐고 하기에 주선해줬다.

쌍용차는 이전까지 배로 한 달씩 걸리는 사우디아라비아나 핀란드에서 혹한·혹서 시험주행을 했다. 돈도 돈이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것이 늘 아쉬움이었다.

그러던 것을 혹한·혹서 시험주행을 헤이룽장(黑龍江)성 헤이허(黑河)시와 신장웨이우얼 자치구 화염산에서 하게 되면서 시간이 크게 단축됐다고 한다.

현 회장이 '관시'(關係)를 통해 한국 기업을 위한 민간외교를 한 셈이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대중국 자동차 교류는 2007년부터 막혔다. 우리 세관에서 중국이 제네바 협약국이 아니므로 중국으로 차를 보낼 수 없다고 통보한 것이다. 자세히 알아보니 중국이 아니라 대만이 제네바 협약 가입국이었다는 것이다. 현 회장이 15년 동안 이룬 성과가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한때 포기하려다 6년만인 2013년 다시 방법을 찾아냈다.

중앙아시아의 제네바 협약국에 가면서 중국을 경유하겠다고 하면 자동차 국외 반출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이 아이디어로 그는 경북도와 경주시가 2013년 벌인 '실크로드 탐험대' 행사 당시 중국으로 차량을 보내는 데도 도움을 줬다.

현 회장은 다음 달에도 서울에서 출발해 중국 웨이하이(威海)·시안(西安)·둔황(敦煌),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조지아를 거쳐 이스탄불까지 횡단하는 '2017 서울-이스탄불 실크로드 익스퍼디션(비단길 탐험)'을 예정하고 있다.

지난 20일 연합뉴스와 인터뷰한 현 회장은 "이 동서남북 사통팔달로 도로를 다 깔아놨는데 우리는 아직도 자동차 쇄국정책을 펴 중국으로 자동차를 한번 보내기가 만만치 않다"며 "고시 하나만 고치면 중국이 제네바 비협약국이라고 해도 우리 필요에 따라 차를 보낼 수 있는데 오히려 우리가 손해를 자초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유라시아 물류 비전을 얘기할 때 시베리아 횡단 열차 등 철길만 생각하지 말고 더 자유롭게 다양한 물류가 오갈 수 있는 자동차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comm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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