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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올 장마는 ‘엑스맨’…뇌우 동반한 미국형 돌연변이 집중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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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미래&과학

한반도 여름의 특징인 긴 장마는

기단들 합종연횡이 빚어낸 결과

얕은 구름에 조용한 ‘온난형 호우’

올핸 높은 구름 ‘한랭형 호우’ 활개

청주 폭우 주범도 뾰족한 당근구름

최근엔 휴지기에도 많은 비 내려

“장마 대신 우기로” 주장 있지만

“우기·건기 나누기엔 아직 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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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을 쓴 시민들이 폭우가 쏟아지는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을 지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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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의 어원은 ‘한비’ ‘오란비’ ‘맣’ 등에서 찾아진다. 한자로는 ‘장마 림(霖)’ 자가 쓰였다. 장맛비는 민간에서 여름철에 오랫동안 내리는 비를 뜻하지만 기상청에선 장마전선에 의한 비로 정의한다. 올해 청주 등 중부지역에 쏟아진 장맛비는 오랫동안 보아온 호우와는 달라 기상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7월16일 충북 청주시에는 하늘에서 ‘물폭탄’이 쏟아지듯 시간당 91.8㎜의 폭우가 내렸다. 집중호우는 아침 7시께 시작돼 낮 12시까지 4~5시간 지속되면서 순식간에 청주 일대를 물바다로 만들었다. 청주에서 1967년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강수량(290.2㎜)이 기록됐다. 이날 내린 비는 “동아시아 여름 몬순(계절풍) 시스템의 일부로 열적 성질이 다른 기단이 만나 형성되는 정체전선, 곧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내린 강수”이다. 하지만 올 장마 때 중부지방에서 내린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를 가리켜 “오랫동안 비가 내리는 현상”을 뜻하는 장마와 어울러 장맛비라 하기는 왠지 어색하다.

장마는 장마전선, 곧 열대성 기단과 한대성 기단 사이에 형성된 정체전선의 영향으로 여름철에 많은 양의 비가 내리는 시기로 정의된다. 여름철 한반도 주변에는 북태평양 기단, 오호츠크해 기단, 양쯔강 기단, 대륙성 기단, 극기단 등이 합종연횡으로 영향을 끼친다. 이 틈바구니에서 생겨나는 정체전선으로 6월 중하순부터 7월 중하순까지 비가 지속해 내리는 현상이 반복된다. 이 과정에 집중호우가 종종 내리기도 한다. 올해 청주에서 기록된 시간당 강수량은 전남 진도에서 2004년 7월14일에 기록된 115.5㎜에 훨씬 못 미친다. 일일 강수량도 1987년 7월22일 충남 부여에서 측정된 517.6㎜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손병주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한국기상학회 회장)는 “집중호우는 대류가 불안하고 많은 빙정(얼음·눈)을 동반한 키 큰 구름에서 생성된다는 전통적인 통념과 달리 한반도의 장마철 호우는 대류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면서 수증기가 높은 습윤한 환경에서 주로 발생하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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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에 최악의 폭우가 내렸던 2017년 7월16일 오전 9시 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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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호우는 구름 키가 10~20㎞로 자라면 구름 꼭대기 온도(운정온도)가 낮아져 빙정이 생기고, 이 빙정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큰 빗방울을 만들어 발생한다(한랭형 강우). 그런데 한반도에서는 여름철 북태평양고기압 주변을 통해 공급되는 수증기가 5㎞ 이하의 거의 물로만 이뤄진 낮은 구름을 형성함에도 큰비가 쏟아진다(온난형 강우). 마치 물을 잔뜩 머금은 스펀지에 물을 더 부으면 주르륵 쏟아지듯이 ‘저절로’ 비가 내린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손 교수 연구팀이 위도가 비슷한 한국 남부지역과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15년 동안 여름철 강우를 비교해 미국 기상학회 <기상월보>에 보고한 논문을 보면, 한국의 시간당 40㎜ 이상의 큰비 가운데 구름 높이가 10㎞ 이상인 경우는 21%에 불과한 반면 미국은 71%에 이르렀다. 평균적으로 한국의 호우 구름 높이는 8.6㎞인 데 비해 미국은 11.4㎞였다. 평균 운정온도도 한국은 영하 55도인 반면 미국은 영하 103도에 이르렀다. 손 교수는 “우리나라 장마철 호우는 천둥·번개도 동반하지 않은 채 줄기차게 오는 형태가 많다. 장시간 내리다 보니 토양 속에 비가 흡수돼 더 큰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1년 우면산 산사태나 1990년 고양군 한강둑 붕괴 등이 온난형 호우 피해 사례다.

하지만 올해 중부지방 폭우는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비가 집중되는 한랭형 강우 특징을 보였다. 이용희 기상청 수치자료응용과장은 “높이가 작은 구름은 스스로 비를 만들지 못해 상승기류(바람)가 생기는 등 부력이 작동해야 비를 내린다. 상승 에너지의 생성과 해소가 반복되기 때문에 장마철에 비가 단속적으로 계속되는 특징을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 장마는 여느 해와 달리 한랭형 강우 구조를 보였다”고 말했다.

우선 대류가 스스로 자라 구름을 만들 수 있는 힘을 나타내는 ‘대류가용잠재에너지’(CAPE)를 백령도·오산·광주·포항 등지에서 측정한 결과 모든 지역에서 여느 해보다 월등하게 높았다. 대기 중 수증기도 평소보다 많았다. 구름은 스스로 자라다 더 크지 않고 평형을 이루는 지점(평형고도)이 있는데, 올해 평형고도는 굉장히 높아져 미국형(한랭형)과 비슷한 형태를 보였다. 대기 중 0도에 이르는 고도를 나타내는 결빙고도도 여느 해보다 높았다. 이는 장마 기간 대기가 다른 때보다 조금 더 데워져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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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올해 장맛비는 낙뢰를 동반한 경우가 두드러지게 많았다. 평년 장마철에 낙뢰를 동반한 비는 3~4%에 불과했는데 올해는 20% 이상이었다. 비가 다섯번 올 때 한번은 천둥·번개가 친 것이다. 시간당 50㎜ 이상의 장대비 때는 거의 100% 낙뢰가 관측됐다. 이용희 과장은 “보통 초여름 장마는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과 러시아 시베리아 동쪽의 차고 습윤한 오호츠크해 기단의 만남에서 생기는 현상이었는데, 올해는 몽골 동쪽 티베트 쪽에 키가 큰 대륙성 기단이 생겨 주기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이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한랭형 강우는 생성 시간이 짧은 경우가 많아 집중호우를 예측하기가 온난형 강우 때보다 상대적으로 어렵다. 이 과장은 올해 청주지역의 폭우는 ‘당근구름’(캐럿클라우드)에 의해 발생해 추적이 훨씬 까다로웠다고 설명했다. 당근 끝처럼 뾰족한 부분이 주변의 수증기를 빨아올려 팝콘이 튀듯 비를 쏟아내고는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최근 장마가 끝난 장마 휴지기에도 비가 많이 오는 일이 반복되는데다 올해처럼 평년과 다른 형태의 호우가 발생하는 등 장마기 구분이 모호해지자 일부에서는 “장마라 하지 말고 초여름 우기와 휴지기, 늦여름 우기로 구분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2007~2016년 10년 동안 여름철 장마기간 이전의 일평균 강수량은 2.5㎜인 데 비해 장마기간에는 15.0㎜, 장마 이후 8월 말까지는 8.7㎜로 여전히 장마기간에 비가 많이 오지만, 1994년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 보면 장마기간과 장마기간 이전의 강수량은 거의 변화가 없는 반면 장마 이후 기간에는 36.4%나 늘어났다. 하지만 손병주 교수는 “한국의 기후를 아열대 지역의 사바나기후처럼 건기와 우기로 뚜렷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최근 한반도 기후가 아열대화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열대 기후의 전형을 보인다고는 말할 수 없다. 기후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분명하지만, 단기간의 기상현상이 기후변화에 의한 것인지, 일회성으로 다시 원위치할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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