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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사설] 노동 개혁 관심도 없이 '근로' 용어 바꾸자는 '쇼' 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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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의원이 모든 법률에서 '근로'란 용어를 '노동'으로 교체하는 12건의 법 개정안을 발의한다고 한다. 근로자는 노동자로, 근로시간, 근로 계약은 노동시간, 노동 계약 등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법 개정 이유로 "근로는 일제(日帝)의 유물"이라고 주장했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도 "(근로자 대신) 노동자라는 표현을 쓰겠다"고 했다.

'근로'를 '노동'으로 바꾸자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질은 '일'일 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는 '노동'이냐 '근로'냐가 아니라 '일'과 일자리를 어떻게 지키고 늘리느냐는 것이다. 용어를 백번 바꿔보았자 노동 개혁을 필두로 한 구조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는다.

지금 문제의 핵심은 시대에 뒤처진 노동시장과 노사 관계를 어떻게 개혁해 일자리를 늘리고 경제를 다시 성장시킬 것이냐는 과제다. 우리 노동 부문은 가장 낡고 후진적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은 한국 노동시장을 세계 52위, 노사 관계를 62위의 꼴찌권 순위에 올렸다.

대기업 정규직은 중소기업의 두 배 가까운 임금을 받고 철밥통 같은 고용 안정 장치와 복리후생, 심지어 고용 세습 혜택까지 누린다. 그런데도 대기업 노조가 주도하는 양대 노총은 매년 7~8%의 임금 인상 파업 투쟁을 반복하고 있다. 지난주에도 평균 연봉 9000여만원을 받는 현대차노조가 부분파업을 벌여 3000억원의 생산 차질을 빚었다. 경영난으로 철수설까지 나도는 한국GM의 노조마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는 지경이다,

새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둔다는 비정규직이나 청년 실업 문제 역시 노동 개혁 없이는 해결되지 않는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기득권을 깨야 청년층 일자리가 생기고 비정규직 처우도 개선될 수 있다. 그러나 새 정부는 노동 개혁을 위한 어떤 의지도, 어떤 청사진도 보이지 않고 있다. 개혁은커녕 그나마 전임 정부가 해놓은 약간의 개혁 조치마저 후퇴시키고 있다. 저(低)성과자 해고를 가능하게 하는 등의 '양대 지침'을 폐지하고 공공 부문 성과연봉제를 백지화하겠다고 한다. 이렇게 노동 개혁을 후퇴시키고 기업 부담을 늘리는 정책을 쏟아내면서 '일자리 정부'라고 주장한다.

노동운동의 대부 격인 주대환 전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은 주간조선 인터뷰에서 새 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말을 했다. 그는 정부가 조직화된 상층부 노동자의 철밥통을 깨는 핵심 과제를 방치하고 있다고 했다. 과보호받는 상위 10% 대기업 정규직과 소외된 90% 중소·하도급 업체 노동자 간의 이중 구조를 그대로 놔두고는 노동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부가 대기업 노조의 기득권을 건드리지 못한 채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 개혁이라는 본질은 놔둔 채 용어만 바꾸자는 것은 벌써 사람들에게서 잊힌 대통령 집무실의 일자리 현황판처럼 '보여주기'에 불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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