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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남극 물고기는 온난화를 견딜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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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데브리스 美 일리노이대 교수 특별기고

매일경제

아서 데브리스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가 남극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


남극에 사는 물고기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다. 수온이 0도에 가까운 차가운 바닷물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일반 물고기와 전혀 다른 생리기작이 필요하다. 이를 돕는 것이 바로 '비동결단백질(AFP·Antifreezing protein)'이다. 이를 처음 발견한 과학자는 아서 데브리스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 그는 1964년 남극 물고기를 조사하던 중 AFP를 발견했고, 이후 관련 연구의 세계적 석학으로 불리게 됐다. 극지연구소는 올해 1월 남극에서 피가 투명한 물고기인 '남극 빙어'를 잡은 뒤 국내 실험실로 가져와 유전체를 연구하고 있다. 데브리스 교수는 지난 5월 극지연구소 방문 시 한국의 많은 독자가 남극 빙어와 관련된 기사를 읽고 큰 관심을 보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쓴 원고를 매일경제에 보내왔다. 그는 "한국 독자들에게 남극 물고기의 중요성과 연구가 갖고 있는 가치에 대해 알리고 싶다"고 전했다.

'큰 머리 남극 암치아목.' 이 특별한 그룹의 어류는 해수 온도가 빙점(영하 1.9도)에 이르는 남극해에 서식한다. 남극 암치아목에는 대략 120종의 물고기가 있으며 남극해 전체 어류 생물량 중 약 90%를 차지한다. 이들은 차가운 남극해에 생존하기 위해 특별한 진화를 이어왔다. 먼저 '부레'가 없다. 다른 물고기처럼 헤엄치기 위해 남극 암치아목은 뼈의 미네랄 함량을 줄여 가벼워지는 길을 택했다. 산소가 풍부한 차가운 물에 살다 보니 헤모글로빈도 필요없다. 적혈구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들은 투명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남극 빙어다.

모든 남극 암치아목은 차가운 바닷물에 노출돼 있는데, 생존을 위해서는 체액의 어는점이 해수 온도보다 낮아야 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AFP다. AFP는 비단 기초연구에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다. 북극해 인근 양식장에서는 차가운 물로 인해 어류가 폐사하면서 경제적인 피해를 입는 일이 많다. AFP 기작을 다른 물고기에게 적용할 수 있다면 양식·식품산업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AFP는 이미 아이스크림 산업에 활용되고 있다. 다국적 식품회사인 유니레버는 북극 등가시치에서 분리한 AFP를 대량 생산한 뒤 이를 아이스크림에 첨가해 판매한다. AFP는 아이스크림 안에 얼음이 생기는 것을 막아 아이스크림이 부드러운 맛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다. 이 아이스크림은 지방 함량도 낮다. 지방 함량을 낮추면 어는점이 높아지면서 얼음 알갱이가 많이 생기는데, AFP를 넣으면 지방이 적으면서도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을 만들 수 있다.

남극 암치아목 중 까다로운 종이 바로 큰 머리 남극 암치아목이다. 남극 암치아목종 물고기 대부분이 연약한 뼈대를 갖고 있어 포획 시 생존이 어려운 반면 큰 머리 남극 암치아목은 온몸이 비늘로 덮여 있어 튼튼한 성질을 보인다. 이 개체들은 상당히 강하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냉수가 반드시 필요하다. 만약 6도 이상 수온에 일주일 이상 머무르면 하나둘 목숨을 잃는다. 극지연구소는 남극에서 큰 머리 남극 암치아목 50여 마리를 잡은 뒤 아라온호를 이용해 무사히 한국에 있는 실험실까지 옮기는 데 성공했다. 특히 1㎏ 이상인 큰 남극 어류를 북반구에 있는 실험실로 옮긴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극지연구소가 설계한 냉장실 수조 덕분에 가능했다. 극지연구소가 향후 이 물고기로 연구하려는 주제는 상당히 중요하다. 지구온난화 시대에 남극의 차가운 바닷물에서 사는 어류의 생존 가능성 여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어류들은 수천만 년 동안 지속적으로 차가운 환경에 노출되어 온 만큼 따듯한 물에 대한 적응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남극의 수온이 올라가는 상황에서 남극 어류 생물량 중 90%를 차지하는 물고기의 생존능력을 사전에 파악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생존을 위한 마지노선인 6도 이상의 해수에 노출될 때 이들이 살아남지 못한다면 남극 생태계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큰 머리 남극 암치아목을 10도의 따듯한 물에 한 시간 정도 노출시킨 뒤 꼬리의 혈액에서 RNA를 분리해 조사할 수 있다. RNA가 온도 스트레스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거꾸로 살아남는다면 AFP는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또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큰 머리 남극 암치아목의 부화, 산란 과정 등도 파악할 수 있다. 이 같은 연구는 어류 서식 환경을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는 냉각 시스템을 구비한 극지연구소에서만 가능하다. 이들의 연구는 과학자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데 일조할 것이다.

※ 데브리스 교수의 원문은 매경인터넷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아서 데브리스 교수 / 정리 =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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