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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農피아' 출신들이 친환경 인증 민간기관 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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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대란]

농산물품질관리원 출신들만 90명… 불신 낳는 생산·유통 시스템

- '친환경' 인증에 민·관 유착 의혹

살충제 농장 63% '친환경' 받아

- 'HACCP' 인증엔 정부 부실 검사

살충제 농장 59% '식품안전' 붙여… 유통 땐 아예 검사항목에도 없어

불량 계란 판매는 불법인데도 껍데기 손상 7억7000만개 유통

'살충제 계란' 사태를 계기로, 그동안 계란에 대한 식품안전 관리가 엉터리였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살충제 사용이 적발된 산란계 농장 59%가 '식품안전관리 인증기준(HACCP·해썹)'을 획득한 곳으로 드러났다. 이는 사전 예방 시스템부터 구멍이 나 있었다는 얘기다. 유통 과정에서 깨진 계란, 부패하거나 오염된 계란 등이 불법 거래돼 왔다는 점도 소비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살충제 계란이 속출한 친환경 농장 인증과 관련한 '관피아'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살충제 농장 59%에 '식품안전' 인증

본지 확인 결과, 살충제 오염이 드러난 49곳 농장 중 29곳(59%)이 HACCP 인증을 딴 곳이었다. 계란의 경우 HACCP은 크게 ①생산·출하 단계와 ②유통·소비 과정으로 각각 나뉘어 이뤄진다. 병원균인 살모넬라에 닭이 감염되지 않았는지, 사육 과정에서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았는지 등을 따져 생산·출하 단계에서 농장들이 기준을 만족하면 농장 입구에 HACCP 마크를 붙여준다. 작년 11월부터는 살충제 잔류 검사도 HACCP 인증 기준에 포함했다. 하지만 이번에 살충제 계란이 나온 농장 중 절반 이상이 HACCP을 획득한 것으로 나타나, 인증제도가 엉터리로 운영됐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식약처 관계자는 "AI(조류인플루엔자) 등 여파로 잔류 살충제 등에 대한 검사·관리 업무가 원활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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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의 유통·소비 과정에선 아예 살충제 잔류 검사가 실시되지 않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식약처 관계자는 "계란 포장지에 HACCP 인증을 붙일 땐 동물용 의약품이나 미생물 등과 같은 잔류 물질 검사는 하지만 살충제 검사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처럼 살충제 잔류 검사가 빠지거나 부실 관리되면서 '살충제 계란'으로 판명 난 계란을 생산한 농장들도 HACCP 인증을 받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HACCP 인증받은 전남의 한 농장에서 기준치 21배 수준의 살충제(비펜트린)가 검출된 것도 이런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HACCP 인증은 희망 농가에서 사전에 스스로 준비한 서류를 바탕으로 심사하는 경우가 많아 부실 심사 개연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종호 한국폴리텍대 교수는 "농장주가 살충제를 뿌렸더라도 그 사실을 기록하지 않으면 오염 계란인지 여부를 인증 당국에선 알 수가 없는 구조"라고 했다.

껍데기 손상 계란 연 7억7000만개 유통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작년 6월 '계란 유통 문제점과 대책' 보고서에서 "껍데기에 가늘게 금이 생긴 계란이 연간 7억7000만개(한 해 생산량의 4.2%) 유통·판매되고 있다"고 밝혔다. 껍데기가 손상되거나 부패·오염된 계란 등을 판매하는 건 불법이다.

그러나 식약처 조사 결과, 문제 있는 계란들이 정상 가격의 3분의 1에서 2분의 1 값에 팔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계란 용액이나 분말을 만드는 가공업체들이 주로 사들인다. 식약처 보고서는 "원료인 계란보다 계란 용액이 싸게 팔린다는 점에서 깨진 계란 등을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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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메추리알 살까 - ‘살충제 계란’파동이 지속되는 가운데 18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한 시민이 계란 대신 메추리알을 고르고 있다. /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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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엔 병아리 부화에 실패해 식용으로 쓸 수 없는 '부화 중지란' 450만개가 제빵공장, 김밥집, 고시원 등에 납품된 사건도 있었다. 빵으로 만들거나 조리를 하면 정상 계란과 구분할 수 없는 점을 악용한 범죄였다. 식약처는 이런 계란들이 질병의 주된 원인이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농식품부, 이제야 "인증기관 감독 강화"

이번에 살충제 계란이 적발된 산란계 농장 49곳 가운데 31곳(63%)이 친환경 농장이었다. 일반 농장(18곳 적발)에 비해 살충제 사용이 엄격하게 제약된 친환경 농장에서 살충제 검출이 훨씬 많았던 것이다. 이에 따라 친환경 농장 인증이 '엉터리'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민간 인증기관이 인증하고, 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이 이를 감독하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민간 인증기관 64곳의 대표 중 5명, 인증심사원 649명 중 85명이 농관원 출신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감독기관과 민간 인증기관 간에 유착과 봐주기 혐의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지난 2014년에도 농관원 퇴직자의 민간 인증기관 취업이 문제 된 바 있다. 당시 농관원은 "퇴직자가 설립 또는 취업한 인증기관이 부실 인증으로 인증기관 지정이 취소되거나 업무 정지된 바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김영록 농식품부 장관은 살충제 계란 재발 방지 대책을 밝히면서 "(농관원 출신의 민간 인증기관 취업에 따른) 유착 관계는 '없다'고 보고를 받았지만, 문제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점검해 보겠다"고 말했다.

[금원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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