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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사유와 성찰]근대 일본불교로부터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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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종교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병들거나 늙어서 죽어가는 한계상황에 직면한 인간이 신에게 의지하거나 자신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신앙과 수행으로 위안받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한계상황마저 현대에 와서는 더욱 일그러지고 있다. 인간끼리의 갈등과 비타협에 의해 일어나는 전쟁 때문이다. 종교학자 강인철에 의하면, 지금도 지구상에는 국지적인 전쟁의 반 이상에 종교가 관여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 일본의 불교계 또한 이 부문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일본 최대세력을 가진 정토진종의 오타니(大谷)파는 한반도가 무대였던 1895년 청일전쟁 무렵 “황국에 태어나 명예의 전사로서 이름을 해외에 빛내는 것은 실로 기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라며 전쟁 참여를 부추겼다. 심지어 전쟁터에서 죽으면 극락왕생할 수 있다며 교의를 왜곡했다. 신앙은 진리에 대한 자신의 무한한 헌신을 기본으로 함에도 살생을 통해서도 그 신앙이 완성될 수 있다는 지침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약 50년쯤 뒤 태평양전쟁 때는 또 다른 파벌인 혼간지(本願寺)파의 종주이자 쇼와(昭和) 일왕의 이종사촌인 오타니 고쇼(大谷光照)는 “국가의 사변을 당해 앞장서서 신명을 전쟁터에 던지고, 황국을 위해 한 번 순직함은 참으로 의용(義勇)의 절정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여 국가를 위한 죽음을 미화하고 있다. 그 죽음으로 호국의 영령이 된다고 극구 칭찬하고, 자신의 신도들에게 자식을 전쟁터로 내보내는 일은 황국에서 살아가는 영예라고까지 하고 있다. 이 전쟁으로 젊은이들을 포함해 일본 국민만 약 300만명이 절규하며 죽어갔다.

선종계 또한 마찬가지였다. 전쟁선(戰爭禪), 즉 무사도야말로 선의 극치이자 전쟁터에서 죽는 일은 선의 정수를 발휘하는 것이라며 불교의 수행정신을 왜곡했다. 이 역사적 사실은 이미 브라이언 빅토리아의 <전쟁과 선>에 자세히 나와 있다. 일본은 국가와 종교가 한 몸이 되어 청일전쟁 이후, 러일전쟁, 제1차 세계대전,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전쟁 등 10년 단위의 전쟁터에 자신의 수많은 젊은이들을 사지에 밀어 넣었다. 전후에 뼈저린 반성을 한다고는 하지만 역사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1945년 항복한 일본은 맥아더 사령부의 감독하에 103조로 이루어진 소위 평화헌법을 2년 뒤에 시행하였다. 전문에 “우리나라 전 국토에 걸쳐 자유가 가져온 혜택을 확보하며, 정부의 행위에 의해 다시 전쟁의 참화가 일어나는 일이 없도록 결의하고, 여기에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선언하며, 이 헌법을 확정한다”고 하여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반성문을 써넣었으며, 그 다짐을 위해 평화라는 말을 4번이나 되풀이했다.

그런데 어떻게 종교가 자신을 부정하며 전쟁을 찬양하고 스스로 국가의 도구가 되었을까. 한 마디로 비굴했기 때문이다. 중생을 구하겠다는 일념은 사라지고, 그들을 방패 삼아 오직 자신의 교단을 수호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했던 것이다. 그 내용은 정토진종의 경우, 국가와 종교를 나눠보기는 했지만 유사시에는 국가의 명령에 따르도록 한 진속이제(眞俗二諦)의 교의였다. 결국 종교는 국가권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자신의 한계를 드러냈다. 그 외 종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해서 전쟁을 정당화한 것이 전시교학이다. 국가가 일으킨 전쟁을 위해서는 살생을 저질러도 좋다는 교의를 내세움으로써 권력의 억압으로부터 빠져나가고자 했다. 그 결과, 불교를 불교답게 하고, 불교인들의 삶을 가장 의미있게 하는 불살생의 계율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전시교학은 현실에서의 선과 악에 대한 판단을 정지시켰으며, 불교의 존재 의미마저 붕괴시켜 버렸다.

인류의 탄생 이래 약육강식을 평화와 상생의 삶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종교의 노력은 결국 국가이기주의에 의해 무너질 수밖에 없는가. 전쟁이라는 말이 일상의 대화를 점령하고 있는 지금의 한반도에서 불살생의 가르침은 무용지물인가. 만약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불교계 또한 어쩔 수 없이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는 전시교학을 만들 것인가. 과연 정의의 전쟁이라는 것이 있는가.

어떻게 보든 전쟁은 반문명이다. 어떤 의미에서 인류의 역사는 인간의 야만성에 대항해온 역사다. 모든 인문적 사고는 악을 억누르고, 선을 최고의 가치로 삼기 위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종교야말로 그 정수에 해당한다. 종교마저 무너지면, 인류는 공포와 야만의 원시시대로 회귀할지도 모른다. 수십만명을 희생시킨 히로시마 원폭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국내외 연대의식을 가진 종교인들은 일본의 과거를 타산지석 삼아 자신의 종교적 모순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원익선 원광대학교 정역원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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