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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이슈기획] 싸움소, "보이나요 나의 눈물이, 들리나요 나의 울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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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전북 정읍 내장산 자락에서 작은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수의사입니다. 지난해 가을 내장산 다녀오는 길에 하늘 높이 떠 있는 정읍 민속소싸움 대회 벌룬을 따라 우연히 들어가 보게 된 소싸움경기장의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사회자의 소개와 함께 천천히 입장하는 소들의 공포에 질린 커다란 눈, 싸움에서 패배해 퇴장하는 소의 목덜미에 흥건히 젖어있던 피, 소싸움 경기장 앞에 차려진 소머리 국밥 부스에서 후후 불어가며 소머리 국밥을 먹던 사람들의 무표정.

그때의 충격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지난봄, 정읍시가 소싸움 상설경기장을 짓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된 후였습니다. 현재 정읍시는 ‘축산테마파크’라는 이름의 사업을 진행 중인데, 테마파크의 주요 시설 가운데 하나가 소싸움경기가 주목적인 ‘다목적 공연장’입니다. 경기장이 지어지면, 지금처럼 임시 경기장에서 1년에 한 번 정도가 아니라 상시적으로 소싸움이 벌어지게 됩니다. 싸움소 육성비도 정읍시가 지원한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소싸움에 반대하는 일반 시민들과 정읍의 10여개 지역 시민단체들은 ‘동물학대 소싸움도박장 건설 반대 정읍 시민행동’을 구성하고 지금까지 정읍 시내에서 50회가 넘도록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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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송열’과 ‘고창증’을 아시나요

사실 저는 ‘먹는 동물’인 소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수의대에서 배웠던 소는 ‘반려동물’과 달리 산업적 목적에 의해 사육 후 도축되는 동물이었습니다. ‘산업동물’은 반려동물과 달리 질병 치료에 소요되는 비용이 사육 및 출하 비용을 넘어설 때 도태시키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소싸움에 대해 알게 되면서 수업 시간에 배웠던 몇 가지 소의 질병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수송열(shipping fever)’과 ‘고창증(bloat)’입니다.

‘수송열’은 동물을 수송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 요인들에 의해 발병하는 질병입니다. 운송 과정에서 폐쇄된 공간에 갇힌 채 외부로부터의 충격이 계속되면 면역력이 낮아져 폐렴과 패혈증이 발생합니다. 애초에 소는 태어난 곳에서 벗어나 멀리 이동할 일이 없습니다. 수송열은 사람의 목적을 위해 소를 수송시키는 사람이 만든 질병입니다. 원래 생태와 어긋나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얼마나 많은 소들이 죽어갔으면 ‘수송열’이란 이름이 수의대 교과서에까지 등장하게 되었을까요? 너른 풀밭에서 느긋하게 풀을 뜯어 되새김질하도록 태어난 소에게, 덜컹거리는 시끄러운 좁은 트럭 안에서 똥오줌을 싸며 긴 시간을 견디는 것은 아마도 생지옥의 체험이라고 짐작할 만 합니다.

‘고창증’은 소의 대표적인 질병으로 수의사 국가고시에도 단골로 등장합니다. 고창증에 걸린 소는 위에 가스가 가득 차서 주변 장기를 압박하고 심한 경우 사망하기도 합니다. 소가 고창증에 잘 걸리는 것은 사료 때문입니다. ‘마블링’을 만들기 위해 풀이 아니라 농후사료(옥수수, 콩 등의 곡류를 주원료로 한 사료)를 먹이면 위의 산도가 증가해 소의 4개 위 중 1, 2위에 가스가 찹니다. 고창증은 소라는 동물이 본래적으로 갖는 질병이 아닙니다.

■ 먹는 소, 억지 싸움까지 시켜야하나요?

어떤 사람들은 소싸움에 반대하는 저희에게 묻습니다. 소를 도축해서 먹는데, 그까짓 싸움 정도 못 시키겠느냐고. 반대로 묻겠습니다. 수송열과 고창증이라는 없던 질병까지 만들어 걸리게 하고, 도축해서 먹기까지 하는 동물에게 억지싸움까지 시켜야만 하겠느냐고 말입니다.

싸움소들은 보통 하루 전에 소싸움경기장에 도착합니다. 몸무게를 측정해 다음날부터 열릴 소싸움의 대진표를 작성하기 위해서입니다. 덜컹거리는 트럭의 소음과 진동을 버티며 장시간 트럭에서의 힘든 시간을 가까스로 버텨낸 소들은 계류장에서 하룻밤을 보냅니다. 낯선 소들의 냄새, 낯선 환경에서 소들은 불안하게 울면서 벽에 머리를 들이받는 등 이상 행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날이 밝으면, 소 주인들은 경기장에 입장하는 소들의 몸통에 스프레이로 이름을 표시합니다. 멀리서도 관중들이 자신이 응원하는 소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죠.

경기장 입장과 동시에 관중들의 환호소리와 더불어 해설자는 싸움소들의 승률과 주력 기술(뿔치기, 들치기, 옆치기 등)을 소리 높여 소개합니다. 흥을 돋우는 북소리와 징소리, 음악소리가 섞여 경기장의 흥분은 점점 높아집니다. 낯선 곳에서, 어마어마한 소음 속에서 입장하는 소들은 어떤 감정을 느낄까요? 상상할 수 없는 공포를 느낄 것이 분명합니다. 흥분한 소들은 침을 흘리며 거친 숨을 내쉬고, 어떤 소들은 입장을 거부하며 뒷다리로 끝까지 버텨 경기가 지연되는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징소리가 울립니다. 700㎏~1t가량 되는 거대한 몸무게를 실어 상대의 이마를 밀어붙이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두 소의 이마는 대부분 피로 물듭니다. 전력을 다해 버티는 소들은 침을 흘리고 똥오줌을 싸며 눈은 돌출되고 충혈됩니다. 날카롭게 다듬어놓은 뿔이 상대 소의 목덜미와 옆구리를 찌르면 피부는 찢기고 누런 털은 피로 물듭니다. 주춤하며 전력을 잃는 소들 옆에서 조련사들은 소 주변을 뛰어다니면서 소리를 질러 공격을 독려하지요. 승리한 소는 다시 계류장으로 이동해 다음 경기를 기다리고, 패배한 소는 차에 실려 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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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식동물에게 뱀탕이라니

싸움소는 오직 경기 승리를 목적으로 길러집니다. 싸움소 주인들은 생후 7개월이 되어 우시장에 나온 수송아지 중 싸움을 잘할 만한 소를 골라냅니다. 목이 길고 굵으며 가슴이 넓고, 다리는 짧고 엉덩이가 등보다 낮으며, 앞다리 사이가 넓은 소를 한눈에 골라내는 것이 소주인의 ‘능력’입니다.

15년 전만 해도 600㎏이 가장 상위 체급이었는데 최근에는 소의 품종개량이 이뤄지면서 1t 넘는 싸움소도 육성됩니다. 15년 전에 비해 2배 이상 커진 것이지요. 싸움소는 체구도 중요하지만 지구력을 위해 밀도 있는 적색근과 큰 폐활량이 요구됩니다. 싸움소에게 타이어 끌기, 산악 달리기, 비탈에 매달리기 등 혹독한 훈련을 시키는 이유입니다.

대회가 다가오면 싸움소에게 온갖 보양식을 먹이는 것이 업계의 상식입니다. 강장제, 십전대보탕, 미꾸라지, 뱀탕을 먹이는데, 그중에서도 ‘개소주’가 최고로 꼽히지요. 풀을 먹고 종일 되새김질하도록 진화한 초식동물에게 개소주와 뱀탕을 먹이는 것은 ‘사람도 먹기 어려운 비싼 보양식을 싸움소에게 먹이는 소주인의 극진한 배려’로 둔갑합니다.

싸움소로 이름이 나면 몸값이 껑충 뛰기 때문에 소주인에게 적지 않은 수익이 됩니다. 싸움소는 평균 5년간 경기에 출전합니다. 나이가 들어 전투력이 떨어지면 대부분 도축장으로 넘겨져 도살됩니다. 싸움소들은 운동을 많이 해서 ‘마블링’이 없기 때문에 육우와는 달리 수프용으로 쓰이며 가격도 낮게 책정됩니다.

■ 소싸움이 ‘전통’이라고요?

정읍시는 소싸움이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라고 주장합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우리 민족의 협동심과 단결을 제압하기 위해 강제 폐지한 소싸움이 광복과 함께 부활됐다는 점을 근거로 듭니다. 하지만 정읍시는 소싸움이 유신독재시대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부활한 것은 알지 못합니다. 한국전쟁 후 음성적 도박판으로 전락한 소싸움대회는 소싸움의 본고장인 경상남도 진주에서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의 남강댐 준공식 방문을 기념으로 처음으로 관이 주체가 되어 재개됩니다.

소는 농경사회에서 필수적인 자원이었기에 소를 매개로 한 놀이 역시 존재해 왔습니다. 소싸움은 망중한을 즐기는 농부들의 놀이기도 했고, 규모가 커져 부락의 세를 과시하는 경기의 형식을 띠기도 했겠지요.

사실 경남 진주를 중심으로 주로 영남지역에 국한되어 열렸던 소싸움대회가 전국적으로 열리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지방자치제의 시작과 더불어서였습니다. 지자체는 국고 지원을 받을 수 있고 관광객을 끌 수 있는 향토 축제 발굴에 집중했습니다. ‘싸움구경’이라는 짜릿함에 어렴풋한 ‘전통’이라는 이미지가 결합하여 탄생한 소싸움이라는 상품은 지자체를 홍보하기 좋은 아이템으로 이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전통이 소싸움대회를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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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도 마음이 있는데…

싸우는 소는 상대 소를 알지 못합니다. 왜 싸워야 하는지 이유도 모릅니다. 그저 자기에게 밥을 주고 자기가 사는 집(축사)의 분뇨를 치워주고, 오랜 시간 등을 쓰다듬어 주었던 익숙한 사람의 손길에 이끌려 경기장에 입장합니다. 그리고 낯선 소와 이유를 알 수 없는 싸움을 계속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소싸움은 투견, 투계처럼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은 아니기에 잔인함이 덜하다고. 싸움소 주인들은 소를 자식처럼 키운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소싸움장에서 소의 눈, 상대소와 싸움을 시작하기 전 주춤하는 몸짓, 상대소와 버티면서 큰 눈망울에 핏발이 서는 것에서 소가 느끼는 ‘공포’를 보았습니다. 반려동물을 진료하는 수의사로서 동물의 다양한 감정을 파악하는 것이 훈련된 제 직업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선 시대에 그 ‘공포’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저 혼자만의 감정은 아닐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소를 접하는 것은 대형마트 정육코너의 토막난 붉은 고기로서의 소입니다. 하지만 저는 소에게도 마음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경기장에 가는 흔들리는 트럭에서 두려움에 떠는 마음, 살을 찌우기 위해 농후사료를 먹여 위에 가스가 차 사망에 이르는 극심한 고통, 산악을 달리고 타이어를 끌며 만성적 관절염에 시달리는 통증, 낯선 소와 이유를 모른 채 머리를 맞대고 버텨야 하는 공포.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싸움소의 ‘마음’입니다.

도축해서 먹는 동물에게도 사육과정과 도축과정의 고통을 최소화해야 하며, 싸우지 않아도 될 동물에게 인간의 유희를 위해 억지 싸움을 시키는 일은 막아야 합니다.

<허은주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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