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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연합뉴스 기자들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이름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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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장충기 전 삼성그룹 차장 문자’ 비판하며

170여명 ‘박노황 사장 퇴진’ 성명 잇단 발표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 기자들이 “무너진 뉴스 공정성·신뢰도에 책임을 지라”며 박노황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기명 성명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최근 시사주간지 <시사인>이 공개한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의 문자 메시지에서 삼성과 연합뉴스 간부진의 유착이 드러나면서(▶관련기사 ‘언론인들, 무더기로 삼성 장충기 전 차장에 청탁 문자’), 내부 사장 퇴진 운동이 다시 불붙는 모양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연합뉴스지부(노조)에 따르면, 지난 14일부터 18일까지 연합뉴스 사내 게시판에 기수별 기명 성명이 9건 발표됐다. 2002년에 입사한 차장대우 기자부터 2015년도 입사한 기자까지, 성명에 이름을 올린 기자는 174명에 이른다.

2007년에 입사한 28기 기자 10명은 “국가기간뉴스통신사란 이름이 부끄럽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국민의 혈세를 받으며 누구보다 공정 보도에 앞장서야 할 연합뉴스가 부역 언론으로 지탄받고 있다. 연합뉴스가 걸어온 길을 보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박근혜) 정권 코드에 맞춘 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파업 관련 보복 인사, 부당 해고, '장충기 문자'까지 독선으로 가득찬 경영진의 행보에 연합뉴스는 휘청거렸다”고 했다. 이들은 이 같은 상황이 “참담하다'”며, “연합뉴스는 당신들만의 회사가 아니다. 밤낮없이 현장을 지키며 공정 보도를 위해 노력해온 구성원들과 국민의 언론사다. 박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해사 행위를 중단하고, 연합뉴스의 명예 회복을 위해 결단하라”고 촉구했다.

2002~2004년에 입사한 23~25기 차장대우 40명도 ‘국가기간통신사 위신 흔든 경영진은 책임지고 사퇴하라’는 성명을 통해 “일부 고위 인사의 황당한 언행과 이를 다룬 낯뜨거운 기사가 연일 보도돼 현장에서 묵묵히 일해온 우리 연합뉴스 구성원들의 자존감을 무참히 짓밟았다. 박노황 사장은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이홍기 전무와 조복래 상무, 이창섭 티브이 경영기획실장과 동반 사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박노황 사장이 취임 뒤 편집총국장제를 무력화하고 편집국장 직무대행이라는 ‘기형적’ 체제를 도입했을 때, 이러한 ‘참사’는 예고된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 ‘애국저널리즘’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기사를 망가뜨린 간부진의 책임이 크다고도 덧붙였다.

앞서, 지난 5월 25~26일 노조가 전체 조합원 549명을 대상으로 박노황 사장 퇴진 여부를 묻는 긴급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조사에 참여한 조합원 374명 가운데 75.67%(283명)가 ‘현 경영진과 연합뉴스의 앞날을 논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퇴진을 요구해야 한다’고 응답한 바 있다. 박노황 사장은 편집국장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축소 보도, 4대강 사업 ‘찬미’ 특집 기사 등 불공정보도를 지휘하며 지난 2012년 연합뉴스의 103일 파업을 촉발한 인사이나, 2015년 사장으로 선임됐다. 사장 취임 뒤 편집총국장이 아닌 편집국장 직무대행을 임명하는 등 보도 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제도를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아래 연합뉴스 구성원의 성명 일부를 부분 발췌해 공개한다.



[30기 성명] 자격 없는 '호박씨' 경영진, 더는 치욕스럽게 말고 물러나라

(…) 경영진은 삼성에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누워있는 이건희 회장을 소재로 돈을 뜯어내려는 자들이 있다'고 자못 탄식하고는 '나라와 국민, 기업을 지키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져 간다'고 짐짓 우려했다. 자본권력에 메시지를 보내며 도대체 누구에게서 무엇을, 무엇으로부터 누구를 지키고자 한 것일까.

[26∼27기 성명] 현 경영진의 침묵을 규탄한다

(…) 매번 국가기간통신사란 지위를 강조하고 회사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내부 구성원의 만류 속에 지방발령, 해고, 징계 등의 강경책을 반복한 경영진이었다. 그 놀라운 존재감은 지금 일순간에 사라졌다.

회사 명예에 금이 가고 '혈세를 받는 국가기간통신사가 재벌의 마름 역할을 했다'는 비난이 빗발치는 지금 조직의 지도부가 숨기에만 급급한 것이다.

우리는 요구한다. 경영진은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것은 결국 잘못에 대한 자정 능력이 없다는 것을 대외에 인정하는 것밖에 안 된다. 연합뉴스의 운명을 외부의 손에 떠넘기는 중대 해사 행위가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회사의 신뢰를 해치는 행위를 중단하고 합당한 책임을 져라.

[29기 성명] 경영진의 분명한 책임을 요구한다

(…) 우리 현장기자들도 반성한다. 사랑하는 일터가 이렇게 망가지는 것을 보면서도 더 가열차게 투쟁하지 못했다. 2012년 파업때 일으켜 세운 공정보도의 가치가 잠식당하는데도 모든 것을 걸고서 이를 막지 못했다. 이제는 과오를 반복하지 않겠다. 다시 한번 뼈를 깎는 노력으로 연합뉴스 바로세우기, 국민과 독자를 위한 '바른 언론' 만들기에 힘을 쏟을 것이다.

[33기 성명] 사과하고 사퇴하라

(…) 정부 구독료는 당근이 아니다. 한국 언론에서 이토록 중요한 역할을 제대로 하라고 받는 채찍이다. 수백 명의 땀방울을 자본과 권력이 아닌, 독자와 언론 노동자를 위해 흘리라는 국민의 명령이다. 우리는 짓밟힌 자부심과 잃어버린 국가기간통신사의 역할을 되찾을 것이다. 오로지 국민의 알 권리만을 생각하며 묵묵히 일할 것이다. 동시에 싸울 것이다. 박 사장과 경영진은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사퇴하라. 그것만이 한 때 기자였던 당신들이 바닥난 자존심을 수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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