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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학교 우레탄트랙 "79% 교체 필요"...흙운동장으로 돌아가면 안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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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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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일산에서 아이를 네 살바기 아들을 키우고 있는 고모씨(34)는 새로 지어진 시댁 아파트에 들를 때마다 놀이터를 눈여겨 본다. 우레탄이 깔린 새 놀이터에선 뜨거운 여름엔 화학물질 냄새가 나는듯 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그 위를 뒹굴고 있었다. 고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는 오래 전에 지어져 ‘모래 놀이터’가 있다. 그는 “이럴 땐 차라리 오래된 아파트여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고 했다.

하지만 취학 이후부터가 걱정이다. 고씨는 “요새 학교들엔 운동장에 중금속 성분이 많은 우레탄 트랙이 많이 깔려있다는데, 거기서 마음껏 놀아도 될까, 아이가 점점 흙과 모래를 만질 기회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걱정스럽다”고 했다. 미세먼지를 비롯해 지역사회의 각종 환경오염 문제를 다루는 주민모임에 참여하는 그는 “곧 시의회 의원들과 만나 이 지역 학교들의 우레탄 트랙 문제에 대해 얘기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에 우레탄트랙이 등장한 것은 2006년 이후부터다. 2000년대 중·후반엔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 가며 운동장에 인조잔디·우레탄트랙을 설치할 것을 권장했다. 그러나 10년 후엔 정반대의 상황이 됐다. 정부는 이번엔 각 학교가 우레탄 트랙을 걷어내 교체케 하기 위해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우레탄 트랙이 깔린 전국 2763개 초·중·고교를 전수조사한 결과 납이 기준치를 초과해 검출된 곳이 64%에 달했다. 이후 환경부 등은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와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에 추가 정밀분석을 의뢰했다. 두 연구기관이 기존 조사결과를 토대로 선정한 표본 81개 학교의 우레탄 트랙을 정밀분석한 결과 79%가 교체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장기 어린이·청소년의 안전을 위해서는 10곳 중 8곳은 걷어내야 한다는 얘기다.

■언제부터 학교에 우레탄 트랙이 등장했을까

학교 운동장의 ‘우레탄 트랙’의 역사는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취지는 나쁘지 않았다다. 2003년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은 ‘매년 300여 곳의 학교운동장과 체육시설을 선진화된 체육시설로 조성해 방과 후엔 지역사회에 개방하겠다’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어 2005년 국무총리의 지휘 아래 관계부처가 TF팀을 꾸렸고 2006년부터 ‘인조잔디 운동장 조성’ 사업이 진행됐다.

인조잔디 운동장 설치를 원하는 학교가 지원을 하면 정부가 선정해 국가와 지자체 예산, 국민체육진흥공단의 기금을 투입했다. 인조잔디 운동장엔 대개 그 둘레에 우레탄 트랙도 함께 설치됐다. 극소수지만 운동장까지 우레탄으로 만든 학교도 있었다. 이 사업은 이후 ‘다양한 운동장 조성사업’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인조잔디와 우레탄 외에 천연잔디, 감람석 모래운동장 등의 선택지를 추가했을 뿐 내용은 비슷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 2708개의 초·중·고교에 우레탄 트랙이 있고 55개교엔 우레탄 운동장이 조성돼 있다. 인조잔디·우레탄 트랙 조성엔 5000억원의 정부·지자체 예산 및 체육진공단기금이 투입됐다.

“흙으로 된 땅은 푸른 잔디와 붉은 띠로 치장하였고 늦은 저녁시간임에도 환하게 켜진 불빛 아래서 축구시합을 하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은 멋진 사진 속의 주인공처럼 보였다. 인조잔디와 우레탄 트랙이 깔린 운동장은 지나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함께 뛰고픈 충동을 느끼게 했다”

2006년 12월 한국체육학보에 실린 기사의 한 대목이다. 인조잔디와 우레탄트랙은 멋진 체육시설을 갖고픈 시민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사회는 겉모습에 치중한 “운동장의 선진화”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다. 학교 운동장은 성인 체육인이 아닌 어린이·청소년이 주 사용자다. 인조잔디와 우레탄트랙은 점차 안전성 면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겉만 그럴듯 했던 ‘운동장의 선진화’

인조잔디의 주요성분인 고무분말에는 납·카드뮴·휘발성유기화합물 등의 유해 화학물질이 포함돼 있다. 정부는 각 화학물질이 기준치 이하로 포함돼 있어 안전하다는 입장이지만 환경단체에서는 유해성은 노출빈도를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해 왔다.

화상의 위험도 크다. 고무소재인 인조잔디가 열을 흡수하기 때문에 기온이 오르면 빨리 뜨거워진다. 미국 미주리대학교 Faurot 인조잔디경기장에서 실험한 결과를 보면 대기온도가 37도일 때 인조잔디 지표면은 78도까지 올랐고 인조잔디 머리높이에서는 59도였다.

저질의 인조잔디가 설치되면 유해성은 더 심각해진다. 2008년엔 수원 천천초등학교 인조잔디에서 기준치의 50여배에 달하는 납이 검출되기도 했다. 선명한 녹색을 띠게 만들기 위한 안료에 납이 첨가돼 있었던 것이다.

우레탄 트랙에 대한 안전성 논란은 지난해부터 뜨겁게 달아올랐다. 정부가 우레탄 트랙·운동장이 설치된 모든 학교를 조사해보니 납성분이 기준치를 초과한 곳이 64%였다. 이어 올 2월엔 학교 우레탄 트랙의 79%는 교체가 필요하다는 환경부 용역 연구결과가 나왔다.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은 지난해 환경부 등의 의뢰로 납이 비검출된 학교를 포함한 표본학교(81개교)의 우레탄 트랙을 정밀분석했다. 특히 아이들이 우레탄 트랙에서 뛰어논 후 바닥에 댔던 손을 입에 가져가는 등의 행동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에 대해서도 연구를 진행해 ‘노출계수’를 설정했다.

연구진은 “평가 결과 ‘납’에서는 어린이의 경우 노출횟수 및 시간이 많은 초등학교 (우레탄) 시설의 위해도는 비교적 높으며, 우레탄 관련 세부시설 중에선 납이 많이 함유된 육상트랙의 위해도가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들은 우레탄 트랙의 유해물질 함량·표면농도 등으로 바탕으로 위해도와 노출계수를 고려한 ‘위해점수’(80점 기준)와 ‘관리점수’(20점 기준)를 토대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가이드라인을 적용한 결과 10곳 중 8곳(79%)은 지금의 우레탄 트랙을 걷어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안전기준 없이 놀이터 점령한 우레탄 포장재

인조잔디와 우레탄 포장재(트랙·구장)는 학교를 넘어 공원, 산책로, 놀이터 등으로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의 227만2008/㎡ 규모의 땅에 인조잔디와 우레탄 포장재가 깔려 있다.

특히 유·아동이 자주 찾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 놀이터의 우레탄 바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시에 따르면 아파트(공동주택) 내 놀이터 바닥에 깔리는 우레탄 탄성 포장재에 관한 안전기준은 별도로 없다. 교육부가 전국 학교의 우레탄 트랙·우레탄 구장 전수조사를 실시한 것과 달리 서울시는 놀이터의 우레탄 포장재에 대한 유해성 조사도 실시한 적이 없다.

다만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아파트 사업자가 조성하는 놀이터와 달리 각 자치구에서 관리하는 어린이공원과 놀이터엔 되도록이면 우레탄보다는 모래포장을 권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조잔디·우레탄 포장 사업이 확대되다보니 관련 비리·비위행위도 심심찮게 확인된다. 2010년엔 인조잔디 원산지를 중국에서 호주로 속여 납품한 시공사를 봐 준 대가로 수백만원을 챙긴 교사와 공무원이 경찰에 적발됐다. 동작교육청은 한 중학교의 우레탄구장이 설계와 달리 시공됐음에도 정상시공된 것처럼 처리했다다가 민원을 통해 서울시교육청 조사로 부실시공이 밝혀졌다. 과다지급된 공사비 2100만원은 회수됐고 공무원 3명이 징계를 받았다. 올해 7월 감사원 감사에선 강원의 초등학교 세곳에서 유해화학물질인 프탈레이트가 포함된 우레탄을 교체하면서 다시 유해화학물질이 있는 우레탄을 깔아 또다시 교체해야할 처지에 놓였다. 이로 인해 2억2273만6000원의 예산을 다시 써야하는 상황이다.

■‘더 좋은’ 우레탄이 대안(?)

교육부는 지난해 납이 기준치를 초과해 검출된 학교를 중심으로 우레탄 교체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각 학교에 우레탄 트랙을 무엇으로 교체할지를 조사한 결과 대상 학교 1750개교 중 1459개교가 다시 우레탄을 원한다고 답했다. 납 등의 유해화학물질 기준치를 초과하지 않는 우레탄으로 다시 깔겠다는 것이다. 216개교는 마사토(흙), 69개교는 천연잔디, 6개교는 인조잔디를 쓰겠다고 했다.

애초 우레탄 트랙과 함께 인조잔디까지 걷어내 ‘흙 운동장’으로 되돌아가기를 권장했던 각 교육청도 학교들의 원성에 못이겨 ‘품질 좋은’ 우레탄을 교체대상으로 허용했다.

교육부는 지난해 우레탄트랙과 우레탄구장을 제거하는 데 2000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했으나 일단 국가시책특별교부금 170억원과 시·도 교육청의 예산 340억원부터 투입한 상태다.

학교들은 왜 우레탄 트랙을 제거하고 왜 다시 우레탄 트랙을 깔려고 하는 것일까.

경기도의 한 중학교 교장 이모씨(60)는 ‘학생들이 원해서’라는 답변을 내놨다. 그는 “우리학교에서도 납이 기준치 이상 검출돼 원래 흙운동장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학생들의 의견을 취합해보니 99.9%가 우레탄 트랙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마침 도교육청에서도 KS 기준에 부합하는 우레탄 트랙이 나왔다고 해서 지금의 트랙을 걷어내고 다시 우레탄 트랙을 깔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특히 “아이들이 축구와 농구를 좋아하는데 축구하기엔 인조잔디가 좋고, 체육관이 없다보니 농구하기엔 우레탄구장이 좋다고 한다”면서 “흙운동장은 먼지를 일으켜 미세먼지 흡입 면에서도 안좋을텐데, 안전기준에 부합하는 우레탄마저 모두 유해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일선 교사들이 접한 학부모들의 반응은 이씨의 말과는 달랐다.

경기지역의 한 초등학교 교사인 김모씨(35)는 “얼마 전까지 근무하던 학교에서도 우레탄 트랙이 문제가 돼 교체키로 했는데, 학부모들에게 선택지를 주고 조사를 해 보니 흙운동장을 원한다는 답이 많이 나와 우리탄트랙과 함께 트랙의 가운데에 위치해 있던 인조잔디까지 다 걷어내고 흙을 깔기로 했다”고 전했다. 2살 바기 아이를 키우고 있는 그는 “학부모 입장이 되어 생각해도 흙운동장이 있는 곳으로 아이가 진학을 했으면 좋겠다”면서 “학교에서는 우레탄이 ‘아이들에게 안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막연히 갖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편의성부터 생각하는 것 같다. 솔직히 환경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느낀다”고 했다.

서울에서 초등학교 5학년·2학년의 자녀를 키우고 있는 임모씨(36)는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도 우레탄 트랙을 교체하기로 했다는 통지를 받았는데 부모 입장에서는 아무리 더 좋은 것을 가져다 쓴다고 한들 일단 중금속이 나온이상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면서 “다시 흙운동장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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