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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서울은 궁궐의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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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 내 "세계서 보기 드물게 5대 宮 있어"

조선일보

/이재승 인턴기자


"요즘 나온 궁궐 관련 책들을 보면 '팔작지붕에 정면 측면이 몇 칸'이란 식으로 건물 구조 얘기만 하고 있어요.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그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겁니다. 창덕궁 선정전이라면 경연(經筵·임금이 대신과 함께 유교 경전을 공부하던 일)이 이뤄졌다는 걸 중요하게 썼지요."

1990년대 '문화유산 답사 붐'을 일으켰고 지금까지 380만권이 팔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창비)의 저자 유홍준(68·사진) 명지대 석좌교수가 이 책의 9~10권 서울편을 냈다. 일본편 4권을 포함해 모두 14권이 나왔고, 서울편은 예약 판매로만 8000권이 팔렸다. 그는 "일본 교토(京都)가 '사찰의 도시', 중국 쑤저우(蘇州)가 '정원의 도시'라면 서울은 '궁궐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세계 어느 도성에서도 보기 드문 5대 궁궐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울편 1권은 바로 이 '궁궐', 2권은 '한양도성과 그 주변'에 관한 것이다. 유 교수는 "서울 성곽은 전쟁을 대비한 것이 아니라 도성의 울타리일 뿐인데, 이걸 우리가 잘못 인식해서 세계유산 등재에 실패한 것"이라고 했다. 조선시대 지성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성균관, 한·중 관계의 상징과도 같은 동관왕묘(東關王廟·동묘)처럼 그 의미에 비해 사람들이 잘 모르는 문화유산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썼다. 그는 "동관왕묘처럼 멋진 관우(關羽) 조각상은 중국에도 없는데 잘 정비하면 중국 관광객 유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문화재청장(2004~2008)으로 3년 반 재직하면서 얻은 여러 정보도 책에 자세하게 썼다. 청장이 된 직후 노무현 대통령이 '구경시켜 줄 곳이 있다'더니 청와대 경호구역 안에 있던 부암동 백석동천으로 데려가 직접 안내하더라는 것이다. 대통령은 '탄핵당하고 헌재 판결을 받을 때까지 6개월 동안 사실상 청와대 안에 유배돼 있을 때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이런 곳이 있었다'고 했다. 이곳은 2008년 명승 36호가 됐다.

유 교수는 1993년 월간 '사회평론'에 원고료도 받지 못한 채 답사기를 연재하던 때를 회상하며 "책을 출간하고 나서 지금처럼 될 줄은 모르고 별생각 없이 아내 통장으로 인세를 받기 시작했는데, 그 뒤로 한 푼도 '삥땅'을 칠 수 없었다"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답사기 1권이 나오던 40대 때는 날카롭게 세상을 조지는 글을 썼지만, 지금은 흥선대원군 '석란도' 도장에 나오는 문구처럼 많이 유연해졌다"고 했다. 그 문구는 '유주학선(有酒學仙) 무주학불(無酒學佛)', '술이 있으면 신선을 배우고 술이 없으면 부처를 배운다'는 뜻이다.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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