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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현장에서] 한국서 7시간 … 팝의 요정은 왜 ‘야마모토 그란데’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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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나, 공연 3시간 전에야 입국

일정 줄줄이 차질, 사과 한마디 없어

일본서와 달리 무성의 … 팬들 분통

중앙일보

아리아나 그란데. [사진 현대카드]


미국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24)가 첫 내한 공연을 마쳤다. 15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은 그녀를 보기 위한 2만명의 관객으로 가득 찼고, 100분 동안 CD를 삼킨 듯한 파워풀한 라이브가 이어졌다. 한데 공연이 끝나자 “한국은 경유지냐” “무성의가 지나치다”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한국 체류 7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팝의 요정’이 일본만 좋아한다는 뜻의 ‘야마모토 그란데’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을까.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공연 전날인 14일 오후 1시 입국한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그란데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공연에 차질이 생긴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한반도 정세 불안을 이유로 내한을 취소한 리차드 막스의 학습효과도 컸다. 물론 그란데는 처음부터 공연 당일 입국 예정이었다. 공연을 주최한 현대카드 측은 “아티스트가 보안 문제에 극도로 예민한 상태에서 핵이슈가 다시 불거지면서 한국 체류 시간을 최소화하고자 했다”며 “요청에 따라 일정을 비공개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란데의 심정이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난 5월 22일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공연 직후 공연장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22명이 사망하는 것을 목도한 상황에서 투어를 이어갔기 때문이다. 관객들 또한 이를 알고 있었기에 장우산·셀카봉·가방 등 소지품 반입 금지와 공항 검문을 방불케 하는 보안 검색대에도 별다른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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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첫 내한공연을 가진 아리아나 그란데. 보안을 이유로 서울 공연 사진 촬영을 허가하지 않았다. 3집 ‘댄저러스 우먼’발매 후 동명의 타이틀로 진행되고 있는 투어 모습. [사진 현대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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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아티스트와 관객 간의 신뢰 관계가 깨졌다는 데 있다. 65만원짜리 VIP 1 패키지를 구입한 관객들은 우선 입장·프리 쇼 백스테이지 투어·사진 촬영 등의 혜택을 기대했고, 일반 관객 역시 당대 최고의 팝스타라는 명성에 걸맞은 공연을 기대했다. 하지만 불과 공연 3시간 전인 오후 5시에 김포공항에 도착해 일정이 지연되면서 리허설은 간단한 사운드 체크로 대체됐고, 팬미팅(Meet and Greet) 시간은 축소됐으며, 그 사이 일반 관객 입장이 시작되면서 혼란을 빚었다. 결국 VIP 패키지를 판매한 그란데 측은 110여명의 관객에게 우선 입장에 해당하는 20만원을 부분 환불해주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 시간 그란데는 인스타그램에 화장실에서 목을 푸는 라이브 동영상을 올렸다. ‘구로성심병원’이라는 위치 태그에 팬들은 경악했다. 기상 사정으로 당초 예상보다 입국이 지연됐고, 장기 투어 중인 아티스트는 리허설을 별도로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쳐도 사과는 커녕 태연한 모습에 배신감을 느낀 것이다.

이후 100분 동안 내달린 24곡에서 뽑아내는 고음이 제아무리 완벽하다 해도 이미 돌아선 마음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돔 특성상 울리는 음향과 어두운 조명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해 공연을 제대로 관람하기도 힘들었다. 공연을 마친 그란데는 SNS에 “서울은 아름다웠다”는 멘션을 남긴 채 방콕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단 그란데뿐 아니라 대부분의 해외 아티스트들이 일본을 시작으로 동남아로 향하는 가운데 한국에 들른다. 업계에서도 상대적으로 낮은 개런티 때문에 아시아 투어 일정이 확정된 아티스트를 섭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평일 공연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과 단순 비교는 적절치 않다.

이에 공연만 좋으면 무슨 상관이냐는 측과 섭섭함을 토로하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일본은 공연 시장 규모가 한국의 2~3배에 달하고 음반이나 굿즈 판매량이 월등히 높기 때문에 해외 아티스트들이 별도의 아시아 투어가 없을 때부터 찾아 친밀도가 높은 곳”이라며 “최근 몇 년간 톱스타들의 내한공연이 많아지면서 기대치가 높아졌지만 정해진 투어 포맷을 갖춘 아티스트에게 별도의 특별 이벤트를 강요할 순 없는 노릇”이라고 밝혔다.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내한 공연이 아티스트에 대한 이미지 형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현대카드가 슈퍼스타 내한공연을 하나의 브랜드로 가져온 만큼 아티스트와 충분한 소통을 통해 보다 완벽한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다만 한국 팬들이 유독 잔정이 많고 예의에 민감하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공연 한번 가기 위해, 떼창 한번 하기 위해 몇달간 아티스트의 전곡을 예습하고 피켓팅 전투 끝에 살아남아야한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듣고 싶은 건 “한국 사랑해요” “김치 맛있어요”가 아니다. 굳이 레이디 가가처럼 공연 일주일 전에 한국을 찾아 서울 구석구석을 누비고, 콜드플레이처럼 세월호 추모 이벤트를 준비하지 않아도 아리아나 그란데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지 않았을까. “테러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외친 당찬 아티스트가 그토록 위험한 국가에 살고 있는 관객들을 위해서 전할 수 있는 메시지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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