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살충제 달걀’ 경고 수차례 있었지만…뒷짐 지고 있던 정부

댓글 5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안심해도 된다던 식약처장 ‘사과’

작년 국감때도 ‘살충제 달걀’ 논란

소비자연맹 4월에 “살충제 검출”

식약처·농식품부, 별 조치 안해

‘닭진드기’ 안이한 대응·전수조사도 부실

“농장서 거의 100% 진드기 생겨”

농가 오랜 골머리…정부는 손놓아


한겨레

국산 계란에서도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것과 관련해 대형마트와 슈퍼마켓 등이 계란 판매 중단에 들어간 15일 오전 서울 용산 이마트 계란판매대가 텅 비어 있다.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검역 당국이 국내 유통 달걀에 대해 살충제 성분 검사를 한 것은 이번 ‘살충제 계란’이 발견된 친환경 인증 농가에 대한 검사가 사실상 처음이었다. 농가 현장에서는 ‘닭 진드기’가 오랫동안 문제가 돼 허용되지 않은 살충제를 사용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정부는 사실상 무방비 상태였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산란계 닭에 대한 살충제 사용이 도마에 오른데 이어 올해 4월에도 시중에서 유통중인 달걀에서 피프로닐·비펜트린이 잔류 허용치 이상으로 검출된 사실이 시민단체를 통해 제기됐지만, 정부가 안일한 대응으로 일관해온 결과다.

‘살충제 계란’ 유통, 4월에 이미 알아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농식품부는 이미 지난 4월에 국내 유통중인 달걀에서 피프로닐과 비펜트린 성분이 검출된 사례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한국소비자연맹은 올해 4월6일 비공개로 개최한 ‘유통 계란의 농약 검출 실태 및 대책방안’ 토론회에서, 지난 1~3월 국내 유통 중인 달걀 51점에 대해 시료를 채취해 대학교 연구소 등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 2점에서 피프로닐과 비펜트린이 잔류 허용치를 초과해 검출됐다고 밝혔다. 당시 토론회에는 식약처와 농식품부 관계자들이 참석하고 있었다.

소비자연맹은 “당시 정부에서는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적절한 대응 체계를 강구하겠다고 했지만 이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0월 식약처 국정감사에서도 기동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산란계 농가에서 살충제가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며 ‘살충제 계란’의 유통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류영진 식약처장은 지난 10일 취임 기자간담회를 열어 최근 유럽에서 문제가 된 살충제가 검출된 달걀과 관련해 “국내는 문제가 없으니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고 밝혔다가, 살충제 달걀 파문이 일자 16일 사과했다.

구멍 뚫린 잔류농약 검사

정부는 농산물과 달리 축산물에 대한 잔류농약 검사는 전혀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축산업계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산란계 농가의 진드기 살충제 사용 문제가 오래된 문제라고 지적한다. 충북 보은의 한 농장주는 “지금 농장에서는 거의 100% 진드기가 발생하고 있다. ‘와구모’란 진드기는 워낙 확산속도가 빨라 1~2일 사이에 10만마리 정도의 닭장 한동을 전부 감염시킬 정도여서 살충제를 쓰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지난해 한국가금수의사회도 국내에서 닭의 진드기 감염률이 94%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와구모’라고 불리는 닭 진드기는 닭의 털과 피부에 붙어 흡혈을 하면서 체외 기생하는 생물로, 지구온난화로 국내 기후가 고온다습해지고, 공장식 밀집사육이 확산되면서 농가의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됐다.

한겨레

* 누르면 확대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농식품부는 “농장 내부로 닭 진드기를 들여오지 않도록 하라”는 내용의 두쪽자리 ‘닭 진드기 예방 및 관리 요령’ 만을 공지하고 있을 뿐이다. 송창선 건국대 교수(수의학)는 “생산 과정에서 농가 현장이 실제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정부가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러 차례 경고가 됐지만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통 단계에서도 축산물 잔류농약에 대한 정부의 사후 검사 체계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농산물의 경우에는 농산물품질관리원이 대규모 도매시장 현장에서 잔류농약에 대한 검사를 상시적으로 실시하지만, 달걀에 대한 잔류농약 검사는 지난해 9월에야 처음 실시됐다. 기동민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3년부터 2016년 9월까지 달걀에 대한 잔류농약 검사는 단 한번도 실시되지 않았다.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제기될 즈음 처음으로 달걀 잔류농약에 대한 검사가 실시됐지만, 60곳에 대한 표본검사가 고작이었다.

지난 5월 농식품부는 농가 157곳에 대한 표본 검사를 했지만 이 역시 적은 수의 표본 검사에 불과해 유해성분이 검출된 사례는 발견되지 못했다. 이달 초 시작된 친환경 인증농가 780곳에 대한 전수 검사와 일반 농장 200곳에 대한 정기검사가 사실상 처음으로 실시된 계란 잔류농약에 대한 체계적인 검사인 셈이었다.

전수조사마저 부실 논란

정부가 뒤늦게 전수조사에 나섰지만 이마저 부실하다는 지적이 현장에서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달걀 수급 대란 발생을 우려해 전국 모든 농가에 대해 17일까지 전수조사를 끝내겠다고 했지만, 너무 서두르다 보니 부실한 조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충북 보은의 한 농장주는 “농장마다 20~30개를 표본으로 뽑아 가는데 제대로 하려면 방역당국이 직접 농장에 와서 무작위로 달걀을 수거해 가야 하지만, 현재는 사실상 농장에서 건네주는 달걀을 가져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방역 담당자가 미리 농장에 연락해 표본 달걀을 준비시키거나, 담당자가 직접 오더라도 농가에서 “들어가서 가져가도 좋지만 이후에 당신들로 인해 전염병이 발병하면 책임은 당신들이 져라”라고 엄포를 놓으면 결국 농장에서 건네는 달걀 등을 들고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허승 방준호 김양중 보은/오윤주 기자 raison@hani.co.kr

◎ Weconomy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
◎ Weconomy 페이스북 바로가기: https://www.facebook.com/econohani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 페이스북] [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