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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중국과 인도, 두 거인 틈바구니에 낀 인구 80만 부탄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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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산악지대 도클람(중국명 둥랑·洞朗)에서 중국과 인도 양국의 군사 대치가 50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가운데 낀 인구 80만 소국 부탄은 고민이 크다. 두 아시아 패권국 사이에서 이러기도 저러기도 힘든 상황이다.

히말라야 정상 인근 해발 4800m 고원지대인 도클람은 서쪽으로 인도 시킴주, 동쪽으로 부탄과 접한다. 북쪽으로는 중국과 닿는다. 중국은 이 지역을 1890년 이래 실효 지배해온 중국땅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부탄은 아직 국경이 확정되지 않은 분쟁 지역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사실 이 지역 분쟁의 직접적인 당사국은 중국·인도가 아니라 중국·부탄이다. 인도는 중국에 맞서 이 지역에 군대를 파견하면서 “중국이 부탄 영토를 침범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인도는 부탄의 안보를 전적으로 책임지는 사실상의 ‘보호국’이다.

사건은 지난 6월16일 중국이 이 지역에 국경 도로를 확장한다며 건설인력과 병력을 보내면서 시작됐다. 인도는 건설을 막기 위해 자국 군대를 급파했다. 양국은 추가 병력을 파견하면서 지금까지 대치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자국 영토를 불법 침범한 인도군이 철군하면 문제는 해결된다는 입장이다. 인도는 양국 군대의 무조건 동시 철수를 주장한다. 양국 정부와 언론에선 험악한 ‘말 폭탄’이 오가고 있다. 두 나라가 국경 문제로 싸웠던 1962년 전쟁도 심심찮게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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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부탄의 입장이다. 부탄은 1949년 인도와 우호조약을 체결한 이후로 안보 분야에서 전적으로 인도에 의탁하고 있다. 외교에서도 인도와 노선을 함께 해왔다. 300~400명 가량 인도군 병력이 부탄에 주둔하고 있다. 인도는 1만명이 채 안되는 수준인 부탄왕립군 훈련을 책임지며, 임금까지 지불한다.

중국에 맞선다는 점에서 부탄과 인도는 이해관계가 맞았다. 인도는 중국과 지역 패권을 겨루는 경쟁국이다. 부탄은 이웃국 티베트가 1950년 중국군 침공으로 점령당하고 이듬해 강제병합당하는 것을 목격한 이후 계속해서 중국을 경계해왔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도 부탄은 아직까지 중국과 수교를 맺지 않았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나면서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부탄에서 중국에 병합될 지 모른다는 공포는 흐릿해졌다”고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경제대국 중국과 적극적인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중국에서도 유명 배우 량차오웨이와 류자링이 2008년 부탄에서 결혼식을 올린 이후로 이 나라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지난해 중국은 처음으로 인도를 제치고 가장 많은 관광객을 부탄에 보낸 나라가 됐다. 인도 국민은 비자 없이 부탄을 방문할 수 있다. 반면 중국인이 부탄을 여행 방문하려면 하루 250달러를 먼저 내야하는 상황인데도 역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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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는 부탄에서 인도 때문에 중국과 관계 개선이 어려워진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부탄 상공회의소 대표를 지낸 왕차상지는 뉴욕타임스에 “부탄은 주권 국가”라면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자유롭게 외교 관계를 맺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지금 진행 중인 도클람 분쟁을 두고도 부탄이 일방적으로 인도에 끌려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만영 연세대 중국연구원 객원교수는 16일 경향신문 통화에서 “지난 5월 중국이 베이징에서 개최한 일대일로 국제협력정상포럼에 인도가 불참하면서 그 영향력 아래에 있는 부탄도 참석하지 않았다”면서 “이번 분쟁도 그에 대한 보복의 성격으로 시작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인도와 중국의 싸움에 부탄이 휘말린 셈이다.

도클람을 둘러싼 이해관계는 부탄보다 인도가 훨씬 더 강하다. 도클람 지척에 인도가 ‘닭의 목’이라 부르는 전략적 요충지 실리구리 회랑이 있다. 중국이 이 지역을 장악하면 ‘닭 머리’에 해당하는 북동부 인도 영토와 몸통인 본토는 두 토막이 나고만다. 부탄은 다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외교전문지 더디플로맷은 14일 “부탄 내에서 인도보다 훨씬 투자 잠재력이 큰 중국과 관계 정상화를 위해 그다지 크지도 않은 땅(도클람)은 포기하는게 낫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2005년 부탄은 도클람을 중국에 내주고 다른 분쟁지역을 대가로 얻는 합의까지 고려했지만 인도의 반대로 포기하기도 했다.

물론 부탄이 당장 인도와 거리를 두고 중국을 새로운 외교 파트너로 택하기는 어렵다. 2015년 기준 부탄의 전체 수입액 11억 달러 중 78.6%가 인도에서 왔다. 수출액 5억 달러 중 90.3%가 인도로 갔다. 인도가 부탄에 끼치는 정치적 영향력도 막대하다. 2012년 부탄 총리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회의장에서 중국 대표와 만나자 인도는 부탄에 보내는 지원금을 삭감했다. 뉴욕타임스는 “인도의 움직임은 보복으로 보였다”면서 “(그 여파로) 부탄 집권당은 이듬해 총선에서 패했다”고 전했다.

지난 50여일간 부탄은 두 대국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 왔다. 지난 6월30일 인도 주재 부탄 대사가 중국 정부에 짧게 항의한 것 외에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분쟁 관련 국내 언론 보도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양국의 대치가 길어질 수록 부탄이 어떤 식으로든 선택을 해야 한다는 압박도 커진다. 더디플로맷은 “대치 기간 부탄의 선택이 향후 수십 년간 아시아에서 이 나라의 입지를 결정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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