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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디테일추적>배구선수 김연경, 일제상품에 '대한독립만세' 테이핑 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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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선수 팬클럽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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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주년 광복절이었던 지난 15일, 배구선수 김연경(29)씨 팬클럽 인스타그램에 게시물 하나가 올라왔다. 이날 필리핀 알론테에서 열린 제19회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대회 8강에서 김 선수가 신고 나온 신발을 찍은 사진이었다. 신발에 붙은 테이프엔 ‘8·15 대한독립만세!’ 문구가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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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선수 김연경 팬클럽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게시물./인터넷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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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반응은 대개 호평이었지만, 일각에선 아쉽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사진에 잡힌 상품 대부분이 일본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양말엔 일본 스포츠 브랜드 아식스 상표가 박혀 있으며, 운동화 역시 일본 스포츠 브랜드인 미즈노에서 생산한 상품이다.

이는 후원사 때문에 피할 도리 없이 벌어진 문제라 한다. 김 선수가 소속된 매니지먼트사 PPAP 관계자는 “아식스는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후원사, 미즈노는 김연경 선수 개인 후원사기 때문에 이 복장을 입고 경기를 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아식스는 지난 2006년부터 대한배구협회를 후원하고 있으며, 김 선수는 2014년 5월 한국미즈노와 협약을 맺은 이래 쭉 스포츠화를 제공받아 오고 있다.

그래도 이날만큼은 국산 스포츠화를 신었다면 어땠을까. PPAP 관계자는 “김 선수를 비롯한 프로선수들은 자신의 체형과 가장 맞는 스포츠용품을 만들어 주는 업체와 스폰서쉽을 맺는 게 보통이며, 이 때문에 다른 회사 상품을 쓰면 실력발휘에 지장이 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국가를 대표해 경기장에 서는 선수 입장에선, 애국심을 표현한다는 명분으로 경기력을 포기하는 선택을 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이 날 김 선수는 1세트 14-14 동점 상황에서 연속 3득점을 내 기선을 제압하고, 3세트 9-15로 밀린 상황에서 16-16 동점 상황까지 이끌어내는 등 활약해 세트스코어 3-0 완승을 견인했다.

사실 경기력을 떠나서라도, 어떤 상황에서든 후원사 물품을 쓰는 건 프로 세계의 중요한 룰 중 하나다. 미국 광고업계에서 전설로 통하는 레오 버넷(1891~1971)은 저혈당으로 쓰러져 화급히 당분을 섭취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당시 광고주였던 ‘네슬레’(Nestlé) 제품만을 가져와 달라 고집했다 한다. 브라질 축구선수 호나우지뉴는 지난 2012년 기자회견 중 앞에 놓인 펩시 콜라를 무심코 딱 한 모금 마셨다가 당시 스폰서였던 코카콜라로부터 후원 계약을 파기 당해 100만 파운드(당시 환율 기준 약 18억원)를 잃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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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브라질 축구팀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에 입단하며 기자회견을 연 호나우지뉴. 탁자 위에 펩시콜라 캔이 놓여 있다./아틀레치쿠 미네이루


그렇다 한들 광복절 날 일본 상품을 대놓고 보여주는 것도 퍽 난감한 일이긴 하다. 김 선수는 신발에 있는 미즈노 마크 위에 테이핑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물론 앞서 말했듯 프로라면 어떤 상황에서건 후원사 물품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프로업계의 상식이지만, 이번만큼은 미즈노에 별도로 양해를 구했다 한다. PPAP 관계자는 “광복절 날이니만큼 그렇게 하겠다는 양해를 후원사에 미리 구해 두고 상표를 가린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에 나온 니콘 카메라 상표까지 지적하는 네티즌도 드물게 있는데, 저 사진은 관람객이 찍은 사진인데다 카메라 역시 그 관람객 소유물이기 때문에 김 선수와는 무관하다.

아무튼 이 날 배구경기에선 김 선수 신발만이 화제가 됐지만, 실제로는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선수단 전원이 광복절 맞이 세레머니를 했다 한다. 이들은 경기를 마친 뒤 한데 모여 ‘광복 72주년 8.15 그날의 함성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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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이 경기를 마친 뒤 광복절 기념 플래카드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PPAP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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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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