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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누구나 찍고 찍히는 2mm 몰카의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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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단추·자동차 키·모자형 ‘몰카’에 찍히는 여성들

판매 규제법, 영상삭제 비용 지원법 제정 시급


한겨레21

몰카 범죄 피해자 강지원(가명)씨는 매일 몰카 판매사이트에 들어가 새로운 변형 카메라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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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 2mm의 세계. 강지원(22·가명)씨는 석 달 전 극초소형 공간에 갇혔다. 일상이 하나씩 파괴됐다. 일상적인 장소가 공포로 다가왔다. 늘 가던 공중화장실도 들어가지 못하고, 카페에선 구석 자리만 찾았다.

급기야 강씨는 한 달 전 집을 떠났다. 멀리 떨어진 도시의 친구 집에서 지낸다. 낯선 공간도 그의 불안을 없애주지 못했다. 친구 집 천장에 달린 화재경보기, 카페 맞은편에 앉은 남자의 안경, 도서관 책상 위 볼펜에서 그는 습관처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지름 2mm짜리 극초소형 렌즈를 찾는다.

“옷걸이형 상체, USB형 하체 찍어”

지난 8월1일, 카페에서 만난 몰래카메라(몰카) 촬영 피해자 강씨는 “조금이라도 이상한 물체는 다 (몰카로) 의심한다”며 극심한 불안을 털어놨다. 그는 “몰카 판매 사이트에 들어가보는 버릇이 생겼다”고 했다. “며칠 전에도 물병형 몰카가 (판매 사이트에) 올라왔어요. 물병에 난 홈에 초소형 렌즈를 설치해 (상품) 포장지로 가린 몰카였어요.” 분노와 체념 섞인 표정이었다.

그를 찍은 몰카는 ‘옷걸이형’이었다. 까만 옷걸이로 위장한 고화질 캠코더는 그가 아르바이트하는 대구의 대형 패스트푸드점에 설치돼 있었다. 여직원 3명, 여자 아르바이트생 6명이 매일 이용하는 탈의실 옷장 안이었다.

지난 5월21일 오후, 카운터에서 일하는 그를 아르바이트생 박서우(가명)씨가 구석으로 불렀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내민 것은 옷걸이형 몰카였다. “언니, 몰카 같아요. 가희(가명)가 옷장에서 뭐가 툭 떨어져 뒤돌아보니 SD카드(데이터 저장기기)가 꽂혀 있었대요.” 박씨는 이틀 전 탈의실 옷장 안에서 ‘USB(이동식 저장장치)형 몰카’가 발견된 사실도 전했다.

강씨는 탈의실 옷장을 떠올렸다. 큰 옷장 안에 여직원 유니폼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몰카 1대로 모든 여직원·아르바이트생의 몸을 찍을 수 있는 구조였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르바이트 10개월차인 그는 평소와 달리 실수를 연발했다. 카운터에서 받은 손님의 주문을 깜빡하고, 기계에서 탄산음료를 받다 엎지르기도 했다. ‘내가 그동안 탈의실에서 뭘 했지.’ ‘언제부터 찍혔을까.’ ‘혼자만 봤을까.’

두 사건을 공유한 여자 아르바이트생들은 가해자 한 명을 공통적으로 지목했다. 근무 없는 날에도 매장에 자주 나오고, 여자 탈의실에서 나온 적도 있는 20대 남자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옷걸이형 몰카가 발견된 날에도 비번인 가해자는 매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강씨에게는 “평소 밖에서 따로 만나 밥 먹을 정도로 친한 동생”이었다.

여자 아르바이트생들은 가해자가 눈치채지 않게 옷걸이형 몰카를 매장 밖으로 빼돌린 뒤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사장과 점장은 오히려 “신고하기 전에 왜 알리지 않았냐”고 추궁하며 “밖에는 이야기를 안 했으면 좋겠다”고 입단속부터 했다. “새파랗게 젊은데 빨간 줄 생기면 부모 맘이 어떻겠냐”며 가해자를 두둔하기도 했다. 실망한 강씨는 곧바로 일을 그만뒀다.

가해자에 판사·목사·교사도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며칠 뒤 경찰서에서 확인한 옷걸이형 몰카에는 가해자가 20여 일간 찍은 영상 80개가 저장돼 있었다. 영상엔 강씨를 비롯한 여직원·아르바이트생 8명의 얼굴, 평상복이나 브래지어만 입은 몸, 유니폼, 명찰에 적힌 이름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경찰은 “옷걸이형 몰카로 (여자들의) 상체를 찍고, (밑에 둔) USB형 몰카로 하체를 찍은 것 같다”고 했다.

그 뒤로 강씨는 잠을 잘 수 없었다. 신경안정제와 수면유도제를 먹으며 버텼다. 공중화장실 문의 작은 틈새, 나사만 봐도 “빈속에 아메리카노를 연거푸 마신 것처럼” 속이 메슥거렸다.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취업 준비도 중단했다.

경찰도 강씨의 불안을 덜어주지 못했다. “(피의자가) 직접 몸에 손을 댄 게 아니라서 기껏해야 벌금형”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실제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받던 피의자는 지난 6월 말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으나 ‘옷걸이형 몰카로 80개 동영상을 촬영한 혐의’에 그쳤다. 사건 담당 경찰서의 여성청소년과 수사팀장은 “피의자를 추궁해 (USB형 몰카를) 제출받았지만 이미 SD카드가 망가져 (여죄를) 확인할 수 없었다. (제3의 장소에서 또 다른 범행이 있었는지는 수사가) 안 됐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 매장 사장·점장과 경찰의 무성의한 태도에 절망한 강씨는 지난 7월 “다른 피해자가 더 생기는 것만은 막고 싶다”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에 피해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몰카 촬영 범죄는 최근 급증하는 대표적인 사이버 성폭력 또는 디지털 성폭력이다. 카메라 등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타인의 성적자기결정권과 사생활보호권을 침해하는 악질 범죄다. 디지털성폭력근절단체 DSO(Digital Sexual Crime Out)가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몰카 촬영 범죄를 뜻하는 ‘카메라 등 이용 촬영 범죄’ 발생 건수는 2015년 7623건으로 2012년(2400건)보다 3배 이상 증가했다. 피해자가 자신이 ‘도촬’(도둑촬영)당한 사실을 인지하기 쉽지 않은 몰카 범죄의 특성을 고려할 때 통계에 잡히지 않는 피해 건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피해자의 98%가 여성이다. 공중화장실·수영장·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벌어지는 도촬 앞에선 불특정 다수의 여성이 피해자가 된다. 지난 7월17일 현역 국회의원 아들인 현직 판사가 서울 지하철 4호선에서 휴대전화로 여성의 치마 속을 촬영한 사건이 전형적 ‘공공장소 몰카’ 범죄다. 최근 휴가철을 맞아 천장 없는 노천탕이나 해수욕장 샤워실 위를 날아다니는 최신형 ‘드론 몰카’를 봤다는 피서객의 목격담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돌기도 한다.

친밀한 관계도 범죄 표적이 된다. 2015년 기준 몰카 범죄 피의자 3961명 가운데 3059명은 타인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렀지만 애인(262명), 지인(82명), 친구(71명), 직장동료(55명), 동거친족(15명) 등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7월 말~8월 초 자택 화장실 칫솔통에 만년필형 몰카를 설치해 20대 여성 신도를 찍은 목사, 교실의 분필 바구니 안에 몰카를 담아 여학생 제자들을 촬영한 남자 담임교사가 적발되기도 했다.

몰카는 몰래 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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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생활용품으로 위장한 변형 몰카들은 현재 아무런 제재 없이 온·오프라인에서 판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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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카 범죄는 더 심각한 강력범죄로 이어진다. 가해자들이 종종 여성의 신체 사진이나 영상, 심지어 성관계 동영상을 빌미로 성폭력, 강제추행, 협박, 폭행 등 2차 범죄를 저지르는 탓이다. 또 영상을 국내외 웹하드, P2P(개인 간 파일공유) 사이트, SNS에 유포해 평생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몰카 촬영 피해자 강지원씨는 다행히 ‘공식적으로’ 영상 유포 등 추가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 그래도 강씨는 마음 놓을 수 없다. “자꾸 (3년 전) 자살한 친구가 떠오른다.” 그 친구는 옛 연인의 누드 사진이나 성관계 동영상을 무차별 유포하는 ‘리벤지 포르노’(유출 성폭력) 피해자였다. 최근에는 몰카 피해자의 연령도 부쩍 낮아졌다. DSO에서 디지털 성폭력 영상물을 모니터링하는 전선미 팀장은 “지하철 몰카에 나오는 피해자가 예전에는 주로 치마 입은 20대 여성이었다면, 올해는 교복 입은 미성년자가 눈에 많이 띈다”고 설명했다.

몰카 범죄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방법은 범행에 악용될 소지가 많은 몰카의 판매와 유통을 규제하는 것이다. 현재 몰카는 몰래 팔리지 않는다. 전자상가는 물론 인터넷 사이트에서 누구나 ‘풀HD고해상도’ ‘암호 설정으로 타인 재생 불가’ ‘보이지 않는 렌즈’ ‘실시간 생중계’ 등 최첨단 기능이 탑재된 극초소형 몰카를 10만~40만원에 손쉽게 구할 수 있다. 보조배터리, 자동차 키, 단추, 손목시계, 스마트워치, 키홀더, 넥타이, 탁상시계, 야구모자, 텀블러, 안경 등 생활용품으로 위장한 ‘변형 몰카’가 대부분이다.

한때 경찰청도 몰카 판매 규제를 추진했다. 2015년 8월 국내 대표 워터파크의 여자 샤워실과 탈의실에서 몰래 촬영된 영상이 국내외 인터넷 사이트에 유포된 사건이 계기가 됐다. 곧바로 국회에서도 변형 몰카 판매 규제법이 발의됐다. 그러나 “관련 산업의 발전 측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당시 미래창조과학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에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는 총이나 화학류처럼 변형 카메라를 판매하려는 자는 경찰의 허가를 받고 이를 사려는 자도 등록하도록 하는 법안을 8월에 다시 발의할 예정이다.

특단의 대책 지시한 대통령

몰카 영상 등 광범위한 성폭력 촬영물 유포를 막는 대책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웹하드나 P2P 사이트 운영자가 성폭력 촬영물의 스크리닝 시스템을 의무적으로 갖추고, 피해자의 요청이 있으면 해당 게시물을 즉시 삭제하도록 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에 대해서도 성폭력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몸과 마음의 치료와 법률 상담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성폭력 영상의 채증·삭제 비용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높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권미혁·남인순·유승희 의원실에서 이런 내용이 포함된 법안 발의를 검토하고 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유포 영상을) 신고·고소하려면 피해자가 직접 추적·채증해야 하고, 영상 삭제 역시 피해자 몫이다. 그래서 피해자 대부분이 최소 3개월에 걸쳐 매달 200만~300만원을 들여 ‘사이버장의사’ 업체를 이용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고통이 가중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8월8일 국무회의에서 이례적으로 몰카 범죄에 대한 특단의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그러면서 몰카 영상 유통 사이트 규제, 영상물 유포자에게 기록물 삭제 비용 부과 등을 예로 들었다. 다만 핵심 대책인 몰카 판매 규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여성들의 ‘2mm 공포’를 없애줄 수 있을까.

글·사진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성추행과 논문’ 보도 반론보도문





<한겨레21>은 제1169호 ‘국회는 대나무숲’의 ‘성추행과 논문’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 정아무개 교수가 대학원생 이미혜(가명)씨를 성추행했고, 그 뒤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이씨가 조교에서 부당 해임됐으며, 지도교수 변경이 승인되지 않아 제적 처리됐다는 취지의 보도를 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사건 당일 동석한 다른 교수가 만취 상태에서 대학원생 이씨에게 부적절한 말을 하여 자신이 그 교수를 만류했을 뿐이고,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사건은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거쳐 현재까지 수사 중이라고 알려왔습니다. 아울러 정 교수는 이씨가 업무 불성실로 해임되자 성추행을 이유로 교내 양성평등센터에 신고하고 형사고소한 것이며, 자신은 이씨의 지도교수변경원을 승인했고 이후 이씨에 대한 학사 처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밝혀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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