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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설영의 일본 속으로] 일본 제국주의 성지에 인도사람 칭송비, 그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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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기념일 앞둔 야스쿠니 가보니

태평양전쟁 후 전범 재판 참여

전원 무죄 판결 내린 인도 판사

일본 역사 왜곡의 나팔수로 이용

도쿄도 치요다(千代田)구 구단시타(九段下)의 빌딩 숲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靖?神社). 지난 11일 일본의 큰 명절인 오봉(お盆)연휴의 첫 날인 탓에 신사에는 평소보다 많은 참배객들로 북적거렸다. 조상의 위패가 모셔진 곳을 향해 절을 하며 복을 기원하는 모습은 일본의 여느 신사처럼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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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신사를 찾은 참배객들이 배전(?殿) 앞을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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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종전기념일(8월 15일)을 앞두고 신사 주변에는 경찰이 여럿 배치돼 있어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경내에는 “삐라나 팜플렛 배포, 집단 행동, 깃발을 흔드는 행위 등을 금지한다”는 경고문도 붙어 있었다. 신사 입구에는 근대 일본군의 창설자로 불리는 오무라 마스지로(大村益次?) 동상이 참배객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야스쿠니신사는 2019년 건립 150주년을 맞아 이 주변을 공원화하는 등 대규모 정비사업을 준비 중이다.

본전(本殿)에는 246만6000여명의 영혼이 합사돼 있다. 여기엔 전쟁에 희생된 군인, 군속 뿐 아니라 태평양전쟁을 주도했던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난징대학살의 주범 히로카 고키(?田弘毅)등 A급 전범 14명의 위패도 함께 있다. 한국인도 2만1000명이 포함돼 있다. 강제로 전쟁에 동원됐던 이들이 죽어서도 A급 전범들과 영혼이 묶인 채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현대식으로 지은 유리 건물도 있다. 유슈관(遊就館)으로 2005년 증축해 각종 전쟁 무기와 유품 약 10만점을 전시하고 있는 전쟁박물관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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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신사 내 전쟁기념관인 유슈관 1층에 전시 돼있는 제로센을 관람객들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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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신사 내 전쟁기념관인 유슈관에는 곳곳에 전쟁 유물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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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슈관 1층에 들어서자마자 일본의 상징 ‘히노마루(일본 국기에 그려져있는 붉은 원)’가 선명하게 새겨진 전투기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태평양전쟁 말기 자살특공대 즉, 가미카제(神風)로 이용됐던 ‘제로센(0식 함상전투기)’이다. 일왕을 위해 목숨을 바친 자살특공대가 마치 나라를 구한 영웅처럼 미화되고 있다.

본 전시관에 들어서자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구미 제국의 아시아 침략을 막기위한 결단”으로 포장하는 유물과 해설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는 역사왜곡의 시작에 불과했다. 전쟁이 필요했던 이유를 미화하고, 일왕에 의해 동원됐던 군인들을 영웅시 하는 것을 전시관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침략의 역사’를 성전(聖戰)으로 둔갑시킨 거대한 전시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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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신사에전시돼 있는 특공대원 상. "특공대원들이 적군의 함선 등에 돌입해 산화돼, 오늘날 평화와 번영의 일본의 초석이 되었다"고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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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전시실’에 들어서자 온몸에 소름이 확 끼쳤다. 비장한 분위기의 군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영상 속에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승장구 했던 일본군의 업적이 묘사되고 있었다. 우에노 공원에 세웠던 개선문의 모형과 군인들의 정복도 자랑스럽게 전시돼 있었다.

왜곡의 대상은 한국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한일강제병합’을 마치 양국간에 평화롭게 체결된 평등조약인 것처럼 묘사했다. 강제 징용이나 식민 지배, 수탈의 역사에 대한 기술은 찾아볼 수 없었다.

민간인 3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난징학살’은 일본군의 치안유지를 위한 활동으로 묘사돼있었다. “당시 민간인 복장을 한 패잔병 등에 의해 무질서했던 남경시를 일본군이 포위하자 평화가 왔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어디에도 민간인을 죽였다는 얘기는 없었다.

심지어 태평양전쟁 이후 아시아 각국의 독립에 대해서는 “일본군의 눈부신 승리 이후”였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전쟁이 아시아 해방을 위한 전쟁이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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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戰後) 극동도쿄재판에서 유일하게 전범 전원의 무죄를 주장한 인도인 '라다 비노드 팔' 판사를 칭송하는 현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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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역사 왜곡은 전시관 후반부, 전후(戰後) 도쿄에서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절정에 달했다. 도쿄재판에 참여한 11개국의 판사 중 유일하게 전범 전원에게 무죄 의견을 낸 인도의 라다 비노드 팔(Radha binod Pal) 판사의 발언을 크게 다뤘다.

“‘일본이 범죄를 저질렀다’, ‘일본이 침략의 폭거를 했다’는 등의 비뚤어진 죄악관을 짊어지고 비굴, 퇴폐로 흐르는 것을 나는 그냥 보고있을 수 없다. 잘못된 역사는 바뀌어 쓰여져야 한다”

A급 전범을 신으로 모시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와 그들을 칭송하는 유슈관의 의도가 이 두 문장으로 귀결되는 순간이었다. 이것도 모자라 유슈관 앞에는 그를 칭송하는 현창비도 설치돼 있었다. 비석에는 “도쿄재판이 연합국의 패전국 일본에 대한 야만적인 복수의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하고…(중략) 당시의 팔의 판단은 바야흐로 문명 세계 국제법학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쓰여져 있었다.

팔 판사는 일제의 ‘대동아공영권’에 찬동해 인도 내에서도 친일파로 비난받은 인물이다. 나카자토 나리아키(中里成章) 도쿄대 교수는 저서에서 "1960년대 이후 전범과 전쟁지도자의 복권을 위해 일본 사회가 팔 판사의 존재를 신화화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야스쿠니 신사 어디에도 전쟁과 침략의 역사에 대해 반성과 참회의 흔적은 없었다. 오히려 이를 정당화함으로써 아직도 주변국 국민들에게 ‘제2의 가해’를 계속하고 있었다. 전시관을 둘러본 한 캐나다인은 “역사를 통해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일본이 대체 알고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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