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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비 후려치고, 저작권 독점…방송 외주 정책, 실제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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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질 높이려 91년 도입된 외주 제도

27년 지난 현재 방송사 비용 절감 수단으로 전락

독립제작자가 따낸 협찬비, 지원금, 상금 가져가

"피해자는 시청자, 외주 정책 개편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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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환성, 김광일 PD의 사고현장 근처에서 동료들이 절을 올리고 있다. [사진 한국독립PD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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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동물농장', KBS 'VJ특공대·인간극장', MBC '리얼스토리 눈', EBS '극한직업'. 이 프로그램들의 공통점은 뭘까. 첫째 수년째 방송하고 있는 각 방송사의 간판 프로그램이라는 점, 둘째 외주 제작자들이 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외주 제작이 한국 방송 시장에서 차지하는 지분이 적지 않음을 나타낸다.

그런데 이 외주 제작 시스템에 대한 문제 제기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EBS가 독립제작자들을 착취하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박환성 PD가 지난달 15일 남아공에서 EBS 다큐 촬영 중 교통사고로 숨지면서 관심이 집중됐다. 지난 10일 정부에서도 올해 11월까지 지상파와 종편 4개사, CJ E&M 등을 대상으로 전면적인 실태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외주 제작 의무 편성 비율이 정해지며 외주 제도가 도입된 건 1991년. 질 좋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확보하려는 목적이었지만 27년이 지난 지금, 외주 제작 제도는 목적을 잊은 채 왜곡돼 있다.

독립프로덕션의 팀장급인 18년 차 PD A씨는 2015년 기획안 공모를 거쳐 한 지상파의 교양 프로그램(주 1회)을 따냈다. 제작비는 편당 2500만원. 연출 PD와 카메라감독, 출연자가 7~10일간 해외에서 찍어야 해 사실상 부족했다. 이나마도 정규 편성이라는 당초 약속과 달리 파일럿 편성 후 반응을 본 뒤 결정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A씨는 '정규 편성 되면 제작비를 올려주겠지' 생각했지만 기대는 빗나갔다. 정규 편성 후 방송사는 오히려 제작비를 일방적으로 편당 2200만원으로 깎았고, A씨가 기획한 프로그램임에도 다른 제작사를 끼워 격주로 만들게 했다. A씨는 "못한다고 할 경우 앞으로 일 자체가 끊길까봐 손해보며 제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독립제작자들은 방송사가 제시하는 제작비가 턱없이 낮다고 주장한다. EBS '다큐프라임-야수의 방주(2부작)' 제작을 위해 박환성·김광일 PD가 EBS로부터 받은 제작비는 1억4000만원이었다. 송규학 한국독립PD협회장은 "맹수를 찍어야 하는 자연물 치고는 턱없이 부족한 제작비다. 자체 제작할 땐 보통 7~8억원에서 최대 10억원까지 제작비를 책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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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5일 남아공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김광일 PD와 박환성 PD [사진 한국독립PD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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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제작비에 협찬 따와도 뺏겨
부족한 제작비를 메우려 협찬이나 지원비를 따와도 방송사가 송출료 등 간접비 명목으로 상당 부분 가져간다. 독립PD인 B씨는 지난달 한 지상파 방송의 휴먼다큐 제작을 맡았다. 협찬금을 유치해 제작비로 충당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B씨는 협찬금 1500만원을 유치했지만 제작비로 받은 건 이중 600만원에 불과했다. B씨는 "방송국은 그저 송출 대가로 앉아서 900만원을 받고 프로그램 저작권까지 가져갔다"며 "방송국들이 독립제작자를 이용해 돈을 벌고 있다"고 말했다.

EBS의 경우 독립제작자가 협찬 혹은 정부기관 지원금을 따올 경우 각각 금액의 40%, 20%를 가져간다. 나머지 방송사는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KBS·SBS 관계자는 "프로그램에 따라 나누는 비율이 다 다르다. 협찬비를 일부 나누는 건 맞다"고 말했다. 독립제작자들은 "나머지 방송사도 사정은 비슷하다"고 말한다. 최근 KBS의 교양 프로그램 제작을 맡았다는 한 독립PD는 "계약서에 비밀유지조항이 강조돼 구체적 수치를 말할 순 없지만 협찬비 대부분을 가져간다고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상금도 가져간다. 독립PD C씨는 한 소수민족의 풍습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어 한 재단이 주최하는 시상식에서 상금 1000여만원을 받았지만 절반 가까이 방송사가 가져갔다.

이런 상황에서도 문제제기조차 섣불리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방송사가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MBN PD로부터 한 독립PD가 폭행 당한 사건이 있었다. 최선영 이화여대 특임교수(에코크리에이티브협동과정 대학원)가 당시 작성한 사례집에 따르면 방송사 PD의 강요로 메인작가의 하이힐에 술을 받아 먹거나, 폭언·폭행 당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송출만 해줘도 저작권 갖는 방송사

방송사가 제작비를 얼마나 주든 독립제작자 프로그램의 저작권은 대부분 방송사에 귀속된다. 이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한 독립 프로덕션 대표는 "제작비를 적게 주는 대신 저작권이라도 양보해준다면 2차 판권판매나 투자 유치를 통해 제작비를 벌충하고 양질의 콘텐트를 만들 수 있다"며 "지금은 투자해봤자 이익을 방송사가 다 가져가는데 누가 투자하겠느냐"고 말했다. 최영기 전 한국독립PD협회장은 "방송사는 결국 저작권을 독점해도 이를 활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대신 창고에 쌓아둔다"며 "촬영 원본 사용권이 방송사 측에 있다고 하면서 촬영 원본을 요구하지도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2009년 이례적으로 KBS가 저작권을 양보한 사례가 있다. KBS 대기획 '인간의 땅' 5부작 중 방글라데시의 폐선박 해체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철까마귀(Iron Crows·박봉남 감독)'다. 박봉남 감독은 방송 후 촬영 원본을 재편집해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에 출품했고, 2009년 한국 다큐멘터리 최초로 중편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최근에는 그래픽노블로까지 출판되며 다양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방송사에 저작권이 있었다면 이게 가능했을까.

영국에서 독립PD로 활동 중인 장정훈 PD는 "영국 BBC도 2003년 법 개정(Communication Act)을 통해 방송사는 제작비 제공 대가로 3~5년 사용권만 행사하고 그 기간에도 저작권 자체는 창작자에게 양도하고 있다"며 "이후 프로그램에 대한 투자가 급증하고 영국방송물의 수출 또한 급증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BBC는 제작비도 프로그램 장르, 방영 채널, 내용 등 여러 요소별로 물가상승률을 고려해 매년 표준제작비를 공개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 지상파 관계자는 "영국은 방송 시장이 영미 문화권 전체기 때문에 한국과 단순 비교할 수 없다. 방송사 수익이 줄면서 외주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제작비를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최선영 교수는 "의무편성비율만 정하고 있는 외주 정책을 전면 개편해 당초 목적에 맞도록 질적인 측면에서도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를 방치하면 프로그램의 질 하락으로 피해는 결국 시청자가 보게 된다"고 말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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